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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는 게 기회가 되는 나이

나는 이제 넘어지면 뼈가 부러진다.

by 미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




대치동의 큰 뱡향성은
결국 입시를 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긴 길을 가는 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뭘까?



돌이켜보면 가장 순수하게 반짝이던 순간은 10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물안인줄도 모른 채 그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았다. 전학 가는 친구 때문에 며칠을 울기도 하고 학교 규율을 지키려고 작은 것에도 전전긍긍했었다. 시대가 많이 세련되어졌지만, 요즘도 간식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초등학생들을 볼 때면 반짝이는 10대를 겪는 학생들의 모습은 그대로인 것 같다.


이런 아이들이 나름의 인생 시련을 몇 번이나 겪어낸, 혹은 겪어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난 후로 아이들과 나 사이의 유대감은 한 층 농도가 짙어졌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세계, 하지만 대치 키즈로 살아가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그 안에서 나름의 크고 작은 산을 몇 번이고 넘어온 아이들을 난, 교실에서 맞이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영어 유치원, 수학 학원, 영어 학원 등을 통해 평가받는다. 5세 고시, 6세 고시, 7세 고시... 이미 대치동엔 일반적으로 불리고 있는 이름이다. 이 나이에 쌓아온 실력이 있을까 싶지만, 발달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온 영역별 척도를 지표 삼아 앞으로의 가능성을 가늠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와 같은 목적성은 상실한 지 오래다. 입학 테스트를 위한 학원과 과외로 4-5살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 몰리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매년 각기 다른 이른바 '고시'에 임해야 하는 실정이다.





7세 이후엔 과연 어떨까?

고시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 뿐, 누군가 정해 놓은 암묵적인 룰과 경쟁이 팽배하다. "초2에는 중등수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데 우리 아이가 늦은 건 아닐까요?"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입에서도 "우리 반에 벌써 6학년 꺼 푸는 학생이 있어요, 난 겨우 4학년 꺼 푸는데..."라는 푸념이 종종 터져 나오곤 한다.


수학 교재를 단순히 '풀었다'라는 기준으로는 학생의 진짜 수학 실력을 평가할 수 없다. 그 교재를 풀기 위한 연습을 통해 과정을 익혔을 뿐이다. 신유형으로 응용되고 발전된 수학 문제를 보면 희열이 느껴지고 팔을 걷어붙이게 된다. 마치 오랫동안 애정하던 피아노곡의 변주를 만난 것처럼.


하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르다. 이제야 겨우 해당 단원의 문제를 섭렵했다고 생각했는데, 신유형을 맞닥뜨리는 공포에 직면하는 것이다. 신이 나서 뛰어드는 게 아니라, 울상이 되어 패배감에 사로잡힌다. 확립된 개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유형을 접했다면 난이도 높은 문제를 통해 영역별 융합과 사고의 확장을 꾀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대게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이건 풀어본 적이 없어요."


나에게 오기 까지도 미리 예습하고, 어디선가 배우고, 연습으로 학습한 가짜 실력을 갖고 온다는 것이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 나는 아이들에게 더 많이 묻고 스스로 시도하게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또 다른 큰 산을 보인다. 나도 시험을 출제하고 평가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차치하고, 초등 저학년 시기에는 수학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 같다. 이를 증명하듯 우리나라 전체 초등학생들을 두고 치르는 나름 큰 수학 시험도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정말 찐 실력자들의 경쟁이 되어 간다. 하지만 초등 저학년이 응시 가능한 수학 시험은 너도나도 가능성을 무장한 채 뛰어든다. 아니, 떠밀려 뛰어 들어가는 아이들을 많이 본다. 1~2학년이 응시하는 시험은 실제로 '덤벼볼 수 있는' 시험 문제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학부모의 입장이겠지만.


강압적이지 않게 적절한 동기 부여를 이끌어낸 시험 응시 경험은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학생이 중심에 서길 바란다. 향상되는 실력을 보며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도저히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 좌절해 보는 것도 스스로 감당하며 탄탄해지는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 과정이 주는 성취감이 자아에 튼튼하게 심어진다면 이후에 따라오는 결과는 부가적인 보상일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단단한 지지자가 되어 바로 옆에서 본 그동안의 과정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아이는 넘어져도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는 뒤돌아서 걸어온 길을 보며 만족해할 줄 아는 아이가 된다. 또한 이를 동력 삼아 다음의 유사한 상황에서는 같은 길을 걷지 않고 뛰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입시를 향하고 있는 인생의 방향설정이 잘못된 건 아닐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학창 시절. 대가 없는 인간관계 속에서 단지 서로의 감정만으로 교류하는 시간들이 쌓이는 시간이다. 겨우 흙을 고르게 다지고 씨를 심을 준비를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20-30대의 혹독한 사회 경험들로 순수함의 우물벽이 깨져 버리면, 견고하게 버티던 벽이 자양분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





#대치동 #사교육 #7세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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