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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 증후군

공감해 주세요.

by 미묘




나무에 새순이 돋아 나고 꽃을 시샘하는 추위가 밤낮을 괴롭히는 계절. 새로운 시작에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낯선 시작이 두려운 사람들도 있다.


새 학년이 되어 많은 것들이 바뀌고 새로워진 학교와 다르게 학원은 변화가 거의 없다. 새 학기에 학원 시간표를 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이전에 봐오던 학생들과 수업을 이어간다.


3월의 교실엔 유난히 아픈 아이들이 많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엄마와 아빠 입에서 꾀병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 꾀병은 진짜 병이 되어 버린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수업에 집중하던 학생이었다. 3월이 시작하고 한 두 주가 지나자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평상시 쌓아 왔던 데이터가 있기에 그 학생을 나무라지 않았다. 모두가 문제를 푸는 시간에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 "그동안 방학이라고 늦잠 자다가, 아침 일찍 학교 가니까 피곤하지?"하고 물으면, "겨울 방학 때는 방학 특강 때문에 어차피 일찍 일어났어요."라고 대답했다. 졸지 말라고 꾸중을 하는 대신 요즘 학교 가느라 피곤한 것 같다는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자각하고 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학생이었다.


물론 단호하게 이름 석자를 부르며 똑바로 자세 고쳐 앉아서 수업에 집중하라고 혼내는 학생도 있다. 이런 학생은 3월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그동안 자주 지적받아오는 경우이다. 역치가 높아진 아이들한테는 그에 걸맞게 더 단호한 어조와 눈빛으로 말한다.


종종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다는 아이들도 있다. 배가 아프다고 할 땐 화장실에 가야 할지 약을 먹어야 할지 충분히 의사를 묻는다. 3월에는 많은 아이들이 집에 가서 쉬면 배 아픈 게 나아질 것 같은데 엄마한테 말하면 혼날 것 같다고 주저한다. 그럴 땐 쉬는 시간을 조절해 준다. 그럼 언제 그랬냐는 듯 챙겨 온 간식을 열심히 먹고 친구들과 신나게 떠든다. 그럼 안도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곤 한다.


머리가 아픈 아이한테도 우선적으로 체크하는 건 당장 병원을 가야 할 만큼 아픈지 체크하는 것이다. 열이 나는지, 다른 증상은 없는지 체크한 후 조치를 취한다. 대게 많은 경우가 학부모에게 연락하는 대신 좀 지켜보는 걸로 결론을 내린다.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봐. 머리가 아픈데도 이렇게 집중하려고 노력했던 거야? "라고 칭찬을 처방하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곤 한다.



이 모든 경우에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건 공감이다.

꾀병이라고 치부하며 오히려 꾸중을 듣는 아이들이 많다. 남들도 다 똑같은데 왜 너만 유난이냐는 핀잔도 많았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 꾀병은 새학기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을 만큼 일반적이다.


아이들이 하원한 뒤 두통, 복통을 호소했던 아이들의 부모와 통화를 하면 공통된 반응이 있다. 안 그래도 요즘 아프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서 꾀병이라 치부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정에서도 공감해 주고 아이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 봐 주길 당부드린다.


학기 초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증후군이라고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새 학기 증후군이 악화되었을 땐 불안장애나 학습 부진, 강박증, 사회성 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아이의 마음을 잘 관찰하고 들여다봐준다면, 대부분의 경우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쯤 증상이 완화된다.








오늘도 학원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묻는다. 학교 수업은 너무 쉽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급식에 나온 맛있는 반찬을 자랑하기도 한다. 부러워하며 학교 급식실에 초대해 달라고 부탁하면 사뭇 진지하게 고민하는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참 귀엽다.


새로운 시작의 설렘과 긴장으로 봄을 맞이하는 아이들이 부럽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다시 작심삼일을 시작하는 시간이 아닐까. 1월 1일 급하게 계획했던 것들이 흐지부지되면 진짜 시작은 구정이라며 두 번째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그마저도 실패하면, 진짜 시작은 3월부터 라며 약한 의지를 위로한다.


나에겐 그저 올해 세 번째 기회처럼 느껴지는 3월, 꽃샘추위 속에서 덜덜 떨면서도 푸르게 피워낼 새싹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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