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서비스 천국
< 에피소드 1 >
한국에서부터 충치를 항상 달고 살았던 둘째가 말했다.
엄마, 어금니 치료했던 게 떨어진 거 같아.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병원.
영어로 일상 얘기하는 것도 어려운데 병원을 어찌 가냐고, 우리 건강하게 살다오자고 아이들에게 다짐했건만,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 것인가.
선배 한국인 학부모들을 통해 영어가 가능하다는 치과를 추천받고 메일을 보내 예약을 잡았다. 날짜는 이틀 후. 지금 이 시간에도 충치는 계속 생길 테니 마음이 급했지만 이틀 후면 양호하다. 한국에서 상담받다가 폴란드행이 결정되는 바람에 뒤로 미뤘던 치아 교정도 물어볼 요량으로, 치아교정이 영어로 'orthodontic'이라는 것을 검색해 보고는 치과를 방문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으로 내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는 단어들의 효용성도 무시할 건 못된다. 어쨌거나 그 단어들의 나열 수준인 나의 영어로도 단순한 일상은 말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병원은 달랐다. 인플루엔자, 열, 휴식, 정도의 용어가 아니라, 마취, 잇몸, 신경 치료라는 용어가 마구 튀어나오는 의사와의 대화에서 내가 정신줄을 잡고 있었던 것은, 구글 번역기를 열고 키보드로 입력해 가며 모니터에 번역된 한글을 보여준 친절한 의사 덕분이었다.
한국에서였다면 하루, 또는 다음날 이틀 정도의 치료로 끝나곤 했던 치료가 여기선 간단하지 않았다. 임시 치료를 해두었으니, 교정전문의를 다시 예약해서 상담하란다. 신경치료가 필요한데, 교정전문의의 결정에 따라 발치가 필요한 경우 신경치료한 죽은 이빨을 발치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라고. (이 내용을 이해하게 해 준 번역기에게 이 모든 영광을 돌린다!) 그러나 교정전문의와 예약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짜는 3주 후였다.
3주 간 고민했다. 이 어려운 소통으로 치아 교정을 진행해야 할 것인가.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이후 한국에 돌아가서 교정을 하더라도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또래보다 생일도 늦고 몸집도 아직 조그만 중1 둘째는 전체적인 몸집이 아직 어린이라 아직 성장이 남았지만, 웃을 때마다 보이는 덧니 하나가 늘 해결해줘야 할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발치나 입천장을 뚫는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들을 주변에서 들은 데다 정작 본인이 무서워서 싫다고 하니, 우선 교정은 시작하지 않기로 하고, 교정 전문의에게 상담만 받은 후 다음 치료 날짜를 잡았다.
다음 치료 날짜는 그로부터 또 2주 후, 게다가 3번째 진료가 각각 다 다른 의사다. 물론 상담 기록이 남아있지만, 새로운 의사와 새로운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부담감은 방문할 때마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구글 번역기 화면을 열고 설명한 의사도 있지만, 그냥 영어로 설명해 대는 의사의 영어는 대충 어림짐작으로 알아들으려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제대로 물어볼 수가 없으니, 번역기가 있다고 하지만 동시 실시간 통역 수준이 아닌 이상 쉽지 않았다. 신경치료가 처음이었던 아이는 예상보다 길고 힘든 치료에 겁을 먹었고, 귀가 후 열이 나거나 하는 응급 상황이 생길 가능성을 들으니 까마득했다. 그렇게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4번의 진료 비용은 총 150만 원. 물론 보험을 제외한 비용이니 추후 보상받을 일이지만, 이 기간과 비용은 한국에 비하면 입이 떡 벌어지게 하게 하는 것이었다.
<에피소드 2>
한국에서 보낸 컨테이너 이삿짐이 3달 만에 도착했다. 다행히 친절한 집주인을 만난 덕에, 빌트인으로 설치되어 있던 작은 세탁기를 치우고 한국에서 가져온 대용량 내 세탁기를 설치할 수 있었다. 한국과 폴란드의 전기와 배수 방식 차이 때문에 설치와 사용이 어렵다고 들었는데, 나는 운이 좋구나 싶었다. 단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세탁기 겉표면에서 자르르 전기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저렴한 전기장판에서 가끔 느껴지는 종류의 약한 수준이었지만, 젖은 빨래를 꺼내려고 손을 집어넣은 순간 내부에서 더 찌릿한 전기를 느끼고는 다시 집주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어디서 수리공을 구할 수 있는지 찾기도 쉽지 않은 문제이니, 집주인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약속을 잡은 날, 마치 슈퍼마리오를 떠올리게 하는 폴란드인 두 명이 방문했다. 높은 콧대 아래에 갈색의 꼬부라진 수염이 있고, 배 나온 몸매에 마리오의 멜빵바지를 입은, 현장 작업을 하는 복장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영락없이 마리오와 루이지다. 폴란드어, 영어, 한국어 모두 무용지물이니, 표정을 살피며 구글 번역기 마이크를 들이대는 것으로 어렵게 소통을 이어갔다.
[마리오-번역기] 정상입니다. 전기가 흐르지 않아요.
[나-번역기] (세탁기 옆면을 손으로 만지며) 여기 약한 전기가 느껴집니다.
[마리오-번역기] (프로브로 검침해 보이며) 전기는 없어요.
[나-번역기] (고개를 갸웃하며) 아니요. 나는 지금 느껴요. 나의 남편도 느꼈어요.
답답할 노릇이지만, 번역기가 없던 시절에 비하면 천국이긴 하다. 외국인으로 3개월여 살다 보니 장착된 새로운 버릇이 있다면, 풍부한 표정언어를 장착했다는 점이다. 내 말이 백 프로 전달되지 않을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서인지 자동적으로 웃음이나, 시무룩한 표정이나, 찡그린 표정 등, 얼굴이 부족한 언어를 거들게 된 것이겠지. 두꺼비집에 가서 확인하는 것을 따라가서 같이 들여다보고, 세탁기에 와서 다시 확인하는 걸 쫓아다니면서 상황 파악하려니, 마리오가 웃으며 말한다. 갑자기 건네는 말이었으므로, 번역기 마이크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번역기 마이크를 눌러서 다시 한번 말하게끔 내밀었다.
[마리오-번역기] 너는 남편이랑 자면 안 돼. 전기가 느낄지도 모르니까.
들이댔던 스마트폰을 내 쪽으로 돌려와 한글로 번역된 걸 보고, 웃음 띄고 있던 내 표정은 눈썹부터 썩어 들어갔다. 세상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그 순간의 당황스러움이란. 24살 첫 직장에서 높으신 직급의 상사가, 옆에 앉아서 첨삭을 받고 있는 내 스커트 아래 무릎을 살며시 잡았던 그때, 만감이 교차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 순간의 내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한국의 여자라면 한 번쯤은 겪어봤음직한, 희롱을 당하는 그 순간에도 거부의 제스처가 나오지 않는, 왜 거부하지 않았냐는 말이 기가 막히도록 머릿속이 새하얘지던 그 순간.
그러나, 더 당황스러운 건 따로 있었다. 이 미친놈이 나를 희롱한 것 같다는 짐작이 있을 뿐, 번역기가 그들의 문장을 제대로 번역해 놓은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번역기가 항상 정확한 문장을 내어놓는 건 아니라서 대략적인 이해를 하는 정도만으로 쓰고 있기에, 번역기의 오류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 저들이 웃고 있는 표정이긴 하지만, 이게 성희롱을 한 건지, 그들 문화에선 그냥 우스갯소리 같은 농담인 건지 문화 차이도 있는 건 아닐까. 아무리 번역기가 있어 편리한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말로 주고받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의도와 뉘앙스는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상황 판단은 차치하고 내가 목소리를 높여 한방 먹이는 과감함을 가졌다고 한들, 나는 폴란드어로는 욕도 할 줄 모르는 것이었다. 아! 역시 또 뒤늦게 이불킥이 나오는구나. 가운데 손가락을 보란 듯이 들어줄걸.
벌렁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나는 그냥 고개를 갸웃거리는 제스처로 뒤돌아섰다. 마리오와 루이지는 아무 일도 없던 듯이 돌아갔지만, 나는 남편에게 내가 당한 일을 전하며 분개할 뿐이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하여 저들이 또 어떤 말을 했을지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눈뜬장님처럼 느껴졌다. 입이 있되 말하지 못하고, 귀가 있되 듣지 못하는 벙어리에 귀머거리로 살고 있는 나 자신이 기가 막혔다.
정착 초기에 겪게 되는 많은 일들이 나를 스치고 가면서, 나는 새삼스레 한국이 그리웠다. 전화 한 통화로 수리기사님이 자동 배정되고 이름과 사진까지 먼저 소개된 전문 기사님이 방문해서 처리해 주는 가전제품 서비스, 동네에서도 잘한다는 치과를 검색해서 전화 한 통으로 예약하고 하루이틀 내에 치료 가능한 편리함. 내가 살면서 이용하던 그 모든 서비스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뼈를 때렸다. 외국 나오면 애국자 된다더니, 그 당연했던 일상들이 가능했던 내 나라가 더 우러러 보이는 것이었다. 내 언어로 소통하는 편리함을 떠나와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나는 이곳이 유럽이라고 한들, 과거의 나를 포함해 아직도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을 유럽살이에 대한 환상이 다 부질없는 것임을 지독하게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