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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탕아가 돌아오다

시행착오는 좋은 것

by 김글인 Jan 10. 2025

낯선 수영장 평영반에 첫 강습을 가는 날이었다. 기초반 첫 강습에 가던 날과 비슷한 어색함과 긴장이 느껴졌다. 이런 부담감을 다시 느끼게 한 수영장 운영 행정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물론 주 3회 수영 강습 5개월째인 능숙함도 장착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다시 적응해야 하는 부담감은 낯선 수영장 시설을 눈에 익혀놓겠다고 조금 더 여유 있게 서둘러 출발하는 부지런함으로 나타났다.


차로 10분 거리의 수영장 입구를 저 앞에 둔 시점,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주차장이 좀 좁아 보이긴 했었지. 5분을 기다려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혹시나 있으려나, 주차 자리를 찾아 수영장 뒤편으로 한 블록을 돌고, 또 돌았다. 몇 바퀴만에 간신히 주차를 하고 강습 시작 5분 전에 수영장 정문을 들어가는데, 아까의 주차 줄은 더 길어져 있었다. 체조도 이미 끝난 후 쭈뼛쭈뼛 들어가서 보니, 25명 정원이 거의 찼다는 평영 상급반에 10명이 채 안 되는 인원이 레인을 돌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배영 발차기 연습하는 사람, 평영을 제법 하는 사람, 각각의 진도가 천차만별이다. 분위기 파악, 선생님 파악하느라 못다 채운 50분이 지나고 보니, 그사이 20명이 되어있었다. 주차 전쟁 때문에 제시간에 못 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 것. 그러니 레벨이 천차만별인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첫날의 충격으로 조급해진 나는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주차문제로 골치 아픈 게 지속되면 수영을 계속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 되겠다. 수영장 문 닫더라도 한 달이라도 익숙한 곳에서 다니다가, 정 안되면 쉬었다가 내년에 다시 시작하지 뭐.'


이쯤 되니, 수영을 계속하겠다는 나의 의지가 이토록 강렬하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과거의 나는 분명, 운동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이었는데. 게다가 옮겨간 수영장을 하루 만에 환불받고 다시 돌아가서라도 수영을 하겠다는 '나'는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다. 뭐든지 신중하고, 실수를 최소화하고자 하며, 미숙한 나를 용납하기 어려운 완벽주의자가 바로 나 아니었던가. 새로운 영역에서의 경험은 낯선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이렇게 바꿔놓기도 하는 거구나.


브런치 글 이미지 1


부랴부랴 기존의 수영장 데스크에서 다시 등록을 하고 있자니, 강사 휴게실에 있던 선생님이 빼꼼 내다본다. "어? 왜 다시 오셨어요?" 한 달 먼저 옮겨간다는 소식에 "배신자!"를 외치던 선생님이었으니, 민망함을 슬쩍 감추며 상황 설명을 하는 나에게서 대한민국 아줌마의 뻔뻔함이 묻어나고 있음을 자각한다.  한편으로, 이런 시행착오를 겪고 나니, '수영을 계속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에서 '까짓 거, 여차하면 쉬었다가 내년에 다시 하지 뭐.' 하고 마음이 비워지는 것이었다. 아! 여기서도 깨닫는다. 고민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보다는,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우선 실행해 보는 것에서 얻는 것도 있구나. 수영장 선택 실수를 재빨리 인정하고 수습하는 동시에, 시행착오를 겪은 후 '안되면 말고'를 시전하는 이 유연성은 내가 새롭게 눈뜬 상황처리능력이 아닌가!


그리하여, 헤어진 수영 동기들과 재회의 반가움을 나누고 부지런히 헉헉거리며 레인을 돌았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음은 물론이다. 가출했다 돌아온 탕아가 다시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 이러할까. 그리고 이 과정에서 또 하나 얻은 게 있었으니, 헤어지는 아쉬움으로 만들어진 단톡방이었다. 수영장 운영 종료를 앞두고 다른 수영장 정보와 자유수영하러 수영장 답사를 함께하는 커뮤니티가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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