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shutdown 사건
수영장의 여자 샤워실은 그야말로 전쟁터처럼 아수라장이다. 40대 초반인 나도 기가 죽을 정도로 아줌마들의 거침없는 행동 때문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여자 화장실 못지않게 줄이 늘어서있는 샤워실 내부는, 샤워실 밖 수영장까지 다 들릴 정도로 박장대소하며 샤워하는 무리도 있고, 샤워기만 줄지어 있는 그 아래 바닥에 앉아 때를 밀고 있는 할머니도 있다. 바로 머리맡에 붙어있는 '때 밀지 마세요'는 나에게만 보이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그 소란함 속에서도 귀중한 정보는 흘러나오는 법. 근처의 목청 높은 수다에서 귀 쫑긋 하게 되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선생님, 수영장 문 닫는다면서요?"
진위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샤워실에서 입수한 소식이 진짜라면 큰일이 아닌가. "어떻게 아셨어요?" 새파란 20대 남자 수영 선생님은 혼돈의 여자 샤워실을 상상도 못 하겠지. 아직은 논의 중인 사안인지, 선생님의 깜짝 놀라는 표정을 보며 근심이 짙어졌다.
4개월째 다니고 있는 수영장이 문을 닫는단다. 구립으로 운영되는 수영장은 3년마다 경쟁입찰이 진행되는데, 새로운 운영자가 정해지는 동안 수영장 운영도 중단되고, 보수 공사도 진행된다고 했다. 자유형, 배영, 평영까지 골고루 연습하는 경지(?)에 이르러 수영의 즐거움을 이제 막 알게 되었는데, 이 시점에 수영을 그만두면 내 인생에 과연 수영이 또 있을까? 중단하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 그동안 친해진 수린이 동기들과 '카더라' 소식을 쑥덕쑥덕 나누는 사이 정식 공고문이 붙었다. 이럴 수가! 다음 달까지 운영 후, 6개월 간 운영 중단. 6개월이라니!
발 빠른 한 분이 다른 수영장들 정보를 물어오셨다. 근처의 몇몇 수영장 대부분 교정, 연수반이고, 상급 평영반이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문 닫는 시기보다 한 달 먼저 발 빠르게 옮겨가 자리를 선점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동조하며, 낯선 수영장에 등록을 했다. 먼저 빠져나가는 민망함이 수영을 계속하겠다는 내 의지로 정당화되는 걸 보면, 수영을 계속하겠다는 나의 의욕이 새삼 뿌듯하다.
같이 수영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자니, 이게 이렇게 아쉬울 일인가. 이것저것 많이 배워봤지만, 헤어짐이 이렇게 섭섭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헐벗고 만나는 사이의 끈끈함인가, 아니면 미숙하고 적나라했던 초보 기간을 함께 한 사이여서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문 닫는 수영장에 의해 강제로 헤어지게 된 탓인가.
"우리 끝나고 커피라도 한 잔 같이 할까요?"
2번 주자였던 나는 1번 주자에게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선두에 있던 우리는 최근에서야 '발차기할 때 가라앉아 있는 기분, 나만 이래요?', '호흡할 때, 숨 참으시나요, 내뱉나요?' 등의 수영 팁들을 주고받으며 서로 동기부여가 되어왔더랬다. 휴대폰과 떨어져 물속에서 만나게 되는 탓에, 그간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4개월 만에 연락처를 주고받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 게 수영장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눈에 익은 사람들이 하나둘 서로 초대하고 추가되어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8명이 첫 모임이자 내 송별회를 가지기로 한 날, 강습이 끝나고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락커룸에서 나오시는 몇 안 되는 남자인 어르신께 함께 가시자고 했으나, 고개를 내저으며 웃으셨다. 수영모 대신 다양한 머리 스타일이, 살색이 더 많이 보이는 수영복 차림 대신 개인의 스타일이 엿보이는 평상복 차림의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 3회 만나는 사람들을,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한 박자 늦게 알아보고는 눈이 딱 마주침과 동시에 웃음이 터지는 그때, 비로소 정상적인 아우라의 상대방을 만나는 이 상황이 어이없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수영이라는 도전에서 미숙함과 고군분투를 함께한 동지애 같은 것이 느껴진달까,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다 같이 모일 용기를 낸 서로가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로 수다삼매경이 이어졌다. 그리고, 각자 다른 수영장에 가더라도 내년에 수영장이 다시 오픈하면 꼭 다시 만나자고, 열정적인 동지애를 나누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섭섭함으로 가졌던 그 회합이 끝인 줄 알았다. 한 달 먼저 옮겨가는 아쉬움에 옆 사람에게 제안한 '커피 한 잔'이 나를 수영에 미친 수친자로 만들어주게 될 줄은 몰랐으니, 전화위복이란 말을 수영장 셧다운 사건에도 붙일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