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
그늘을 먹는 낮은 담장
빛이 미끄러지는 기와지붕
비탈에 선 커다란 돌배나무
돌배나무 꽃잎들이 물고기비늘처럼 외딴집을 감쌀 때
그 집은 외갓집의 자화상
그 외딴집에서 유령의 키스를 판다는 소문이 있어
집 모퉁이를 돌아가 보니 뒤뜰로 나 있는 부엌문이 삐그덕 열렸다 환생한 듯
외할머니는 무쇠솥이 걸려 있는 아궁이 앞에서 부지깽이로 불꽃을 듬성듬성 찌르다가 다시 검게 타는 그것을 자신의 머리인 양 바라보았다 그녀가 평생 닦던 돌이 항아리 뚜껑을 지그시 눌렀고 달빛은 그믐달을 그녀의 등에 새기고 있었다
문득 부뚜막에 찾아온 엄마가 백열전구처럼 환하게 켜졌다
엄마는 늙은 여자가 되어 있고
김이 나는 무쇠솥 위에 두 손으로 무언가를 그렸는데
유령처럼 흔들렸다
나를 유혹한 유령의 키스가 외할머니의 무쇠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굳이 외할머니와 겸상을 하지 않아도
아, 서쪽의 밥 냄새가 폴폴
간신히 외할머니의 무쇠솥을 열었다 밥주걱으로 흰 밥을 휘휘 젓다가 내가 돌배나무인 듯 나는 나를 끔뻑끔뻑 바라보았다
도대체 유령의 키스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몸에서 갈라진 두 다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이미 죽은 외할머니와 엄마를 다시 죽이기로 마음먹었을 땐 내가 여자 바깥에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을 유영하는
우리는 모두 외딴집 무쇠솥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를 일
유령의 키스를 받고 싶어하는
이미지사진 출처:https://blog.naver.com/namoo430/220068684442
내가 여자 바깥에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을 유영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