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편지 전당포

by 조희


편지 전당포


조희


보고 싶은 오빠에게 산수유가 손끝으로 노랗게 글씨를 쓰나 봐. 꽃에게 착해지지 않아도 돼 속삭일 때, 못에 찔린 진달래는 선홍빛 꽃망울을 터뜨리고


봄이 공포처럼 흩날려, 내가 우는 건가? 편지지에 떨어진 빛바랜 마음이 문장을 번지게 해. 내가 한 잎 개나리꽃 같다며 오빠가 별처럼 웃을 때 부드러운 동물이 빈틈으로 들어왔지, 기억 나? 그 동물? 바람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 검은 머리칼 한낱 티끌이 되는 빛들


오빠가 사준 곰인형, 발목이 시릴 때 곰 안으로 들어가면 따뜻해. 가끔 곰인형이 춥다고 날갯죽지 밑으로 파고 들기도 해. 곰곰이 생각해. 동굴에서 태어나는 곰의 언어를 신화의 언어를


곰은 몇 번의 봄을 지나고 곰이 되었을까 여린 잎에서 시작되는 숲에는 몇 개의 동굴이 있을까 나무는 몇 개의 꿈을 가지로 뻗어나가는 걸까 우리가 새의 둥지를 이해할 때쯤 오빠는 숲을 가로질러 새의 마을로 갔지 그곳에도 곰인형이 있을까


발아래 길어지는 그림자를 봐 오빠가 내 발바닥에 그림자를 심어두고 간 것이 분명해. 그림자가 오빠한테 달려가. 오빠, 무덤 속에서 무슨 생각해?


봄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알지? 편지 전당포.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 봄비 때문에 우산을 함께 썼던 곳. 우리만 아는 곳. 사람들은 편지 전당포가 어디 있냐고 말해. 낡은 계단 위 노란 레인코트 안에 편지를 넣어 둘게.


연두가 공포처럼 허공을 밀어낼 때 주머니를 뒤져봐 산수유가 진달래가 벚꽃이 그리고 내 마음이 흐드러지게 필 거야


-『시와시학』2024 가을호, 114~115쪽.


이미지 사진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Paintings_by_Federico_Zandomeneghi#/media/File:Young_woman_writing_a_letter_(1874),_by_Federico_Zandomeneghi.jpg






keyword
이전 13화어떤 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