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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by 조희

양파


조희



도마 위에 양파를 썬다

비스듬히 눕혀지는 동그라미들


확 퍼지는 매운 냄새

양파 속에서 어떤 울음이 새나왔고

오른손으로 두 눈을 훔쳤다

양파는 아주 작은 점에서 태어났어

네가 말했다


점이라는 말이 섬으로 들렸다

감정이 보글거리는 프라이팬에서 삼겹살을 뒤집으며

양파를 고기 옆에 올려놓았다

소금을 뿌리자

몇 개의 알갱이가 레코드판 튀는 소리를 냈다

양파조각이 젓가락에서 낮달처럼 미끄러졌다


냉장고에 저장해 둔

슬픔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너와 식탁에 마주앉았다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도래한다는 것은 달콤하지 않습니까?


육즙이 고인 삼겹살을 집어 먹으며

네가 농담처럼 말했다

나는 상추에 고기와 양파를 싸먹으며

깊은 대화라고 생각했다


문득 천정에서 내려온 거미가 우리를 보고 웃었다

긴 다리로 입을 막으며 분명히 웃었다

처음으로 우리가

거미줄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했다

세상이 코미디도 아닌데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휴지로 거미를 꾸욱 눌러서 버렸다

어쩌면 오해는 거미 항문에서 시작되었을지 몰라

상상했다


우리는 가끔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를 했다

트림을 하면 양파 냄새가 났고

히히힝 당나귀 울음소리가 솟구쳤다

우리가 점점 점이 돼 가는 거 맞지?


양파는 벗겨도 벗겨도 양파인데

우리는 우리를 벗겨도 우리를 모르고

누가 벗기는지도 모르고


양파 속에는 흰 당나귀가 산다

양파를 까도 까도 흰 당나귀가 산다




-『내일을여는작가』, 2023년 봄호(통권 82호), 310~311쪽.


이미지출처:https://blog.naver.com/trendylab94/22350351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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