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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편의점

-마곡역에서

by 조희

꿈속의 편의점

-마곡역에서

조희


파도 끝에서 하얗게 메밀꽃이 필 때

꿈속의 편의점 문을 연다


장마당에서 어제 죽은 꽃제비가 주먹밥과 사발면을 먹고 있고 학교가 아닌 일터로 향하던 아이들도 노트와 연필을 손에 쥐고 새의 손을 잡고 뛰어나간다 북송되기 전 급행열차에서 목숨 걸고 뛰어내렸던 여자는 어린 아들을 위해 과자와 아이스크림 같은 미래를 사고

총 맞고 죽은 외화벌이 남편을 잃고 이끼가 된 여자가 들어온다 그녀의 주름치마가 파도를 뜨개질하며 감자 먹는 여인들을 짜낸다 여자로서 산다는 것이 뭔지를 모르고 살았던 여인들

사람도 물건처럼 팔고 사는 어둠 속을 탈출한 유령들의 긴 그림자가 편의점 바닥에 흥건하게 엎질러진다 귀퉁이에 있는 TV에선 편의점에서도 화장품을 판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오늘은 편의점에 찍힌 젖은 발자국들을 모아

꿈의 레시피를 만들어 진열대에 올려놓았다

배낭을 메고 기차를 타고 꿈속 국경을 넘어

죽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파도는 사라지지 않는다


파도 끝에서 하얗게 메밀꽃이 필 때

꿈속의 편의점은 불이 꺼지지 않는 등대

언제나 환하게 문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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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 시의 날 꿈속의 편의점 낭독.jpg
시의 날, 조희 시낭송, 꿈속의 편의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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