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엄마에게 떼 부린 적이 있다. 미술을 전공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미술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며, 네가 소질이 있었다면 떡잎부터 남달랐을 거라며 보내주지 않으셨다. 그 무렵 사춘기가 시작되었고, 뿔이 나서 공부하지 않고, 시험을 봤다. 성적표를 가져가 엄마께 내밀었더니 그 자리에 머리를 싸매고 누우셨다. 그리고 아빠에겐 비밀로 하자며, 성적표를 숨기셨다. 얼마 뒤 엄마는 두툼한 돈봉투를 주며 너 하고 싶은 대로 미술학원을 다니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돈을 받지 않았고 미술학원을 다니지 못했다. 반항심에 공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 뜻을 꺾을 만큼의 배포는 없었다.
오늘 딸아이와 둘이 손잡고 미술학원을 갔다. 상담을 받고 난 후, 둘이 나란히 앉아 각자 그림을 그렸다. 배움에 대한 갈망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는가보다. 그림을 그리는 한 시간 반이 금방 지나갔으나, 그사이 번뇌가 왔다.
'초등, 중등 사이의 40대 아줌마라니.', '그림 실력이 너무 형편없는데 괜히 시작했나.', '내 뜻대로 그릴 수도 없고, 그려지지도 않아.' 오만가지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그림에 집중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과 그림 그린 시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거기서 '배움'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리고 그 배움이 나에겐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게 했고, 그 배움의 시작을 어려워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시작하는 것, 그 설렘을 두 자루의 연필과 두 개의 지우개에서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