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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May 13. 2024

교원상담기록 1. 학부모 민원 전화

다시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학부모의 갑질 민원 전화를 받은 후 내 몸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이틀 사이 2킬로가 빠졌으며, 공황 증상이 나타났고, 수시로 잠에서 깼다.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상담을 시작하며 나는 나의 학부모 민원 대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잘못한 건 없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나의 완벽하지 못한 대처에 대해서 자책했다. 상담 시간이 끝날 무렵 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다시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다시 돌아가도 저는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대응했을 것 같아요. 아마 완벽하게 대응하지 못하겠죠."

그렇다. 나는 거기에서 깨달았다. 상황이 다시 주어진다고 내 태도와 대응이 달라지지 않음을, 그리고 나는 지금 나의 부족한 부분만 계속 보고 반추하고 있었지 내가 잘 대처한 부분은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멈춰 있어서는 안 된다. 나는  금방 생각한 이것을 지워버리고 지금 나를 지키고자 애쓰는 나를 봤다. 그 와중에 나는 학부모의 말을 재진술하며 그 의도를 파악하고자 애쓴 나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수업하러 갔다. 교실엔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고, 칠판엔 국어 하트와 별표가 있다. 나는 아이들 속에서 웃으며 수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국어샘, 국어샘'하며 따르는 아이들과 나의 병가로 인해 걱정해 주며 공감해 주는 동료 선생님들을 생각을 한다.


수업이 다 끝나고 종례 시간 우리 반으로 향했다. 학년 부장님이 당분간 대신 종례를 하겠다며 배려해 주셨지만, 언젠간 마주해야 하는 일이라 굳이 피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 교실로 향했다. 민원 전화를 준 학부모의 자녀가 나를 바라본다. 나는 평소와 달리 그 학생을 제대로 바라보기가 어려워졌다. 숨이 턱 막히며 교실에 있는 상황이 버겁다고 생각됐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아이들 앞에서 연기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전달 사항을 전하고 돌아오는 연구실까지 나는 자괴감과 자책감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다. 교권보원위원회를 열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내 마음은 학부모에게 사과받아야 한다는 걸 아이 얼굴을 보며 알았다. 나는 학생들 사이 갈등이 생기면 갈등을 조정하고 서로 화해할 수 있도록 이끄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피했다. 그 피한 이유는 사건이 커지는 게 싫고, 이번 일로 평가 대상이 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리고 앞선 여러 사례를 통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이런저런 상황을 따지며 결과를 미리 재는  내 모습은 나답지 못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달걀로 바위를 쳐서 달걀이 부서지더라도 행동하는 사람이다. 나를 희생해서라도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교사가 아닌 기간제라는 신분이 저 밑바닥에서 내 발목을 잡았다. 관리자가 기간제라고 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그 신분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갈등 상황을 회피한 것이다. 나는 참 못났다. 나 자신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고 있으니, 나는 참 못났다. 자유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으니.,. 학부모의 민원 전화는 나의 근원적인 문제까지 끌어올리는 놀라운 일을 만들었다.

 


바위를 치지 못했으나 그래도 글을 쓴다. 그래도 병원을 가고, 상담을 받는다. 그래도 소극적으로 애쓰는 나를 다독이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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