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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May 27. 2024

상담 기록 7. 며느리

나는 시댁에 대한 미운 마음이 사라졌다.

시누가 오빠인 남편에게 전화했다. 시댁 세탁기를 바꿀 때가 됐다는 것이다.


시누네랑 한 달에 십만 원씩 모으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 환갑 때문이었다. 환갑이 다가왔을 때 일정 돈을 서로가 냈다. 돈이 부족해 시누네보고 돈을 더 보태자고 이야기했더니 시누가 돈이 없단다. 그래서 그때 시댁에 대해 상한 맘을 많이 가지고 있던 터라 우리만 더 돈을 보태는 게 싫어서 부족한 대로 아버지 환갑을 진행했다. 그러고 나서 시누에게 제안했다. 매달 10만 원을 모아서 어머니 환갑 경비를 준비하자고, 그리고 그때 여행을 가자고 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 환갑이 되어 양가 어른들을 각각 모시고 두 번의 저녁 식사 대접을 했다. 남은 돈은 여행 경비라는 목으로 돈을 계속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이런저런 일정이 서로 맞지 않아 돈을 매달 모으기만 한 것이다. 나는 내심 여행은 물 건너갔고 나중에 부모님께 큰 목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쓰려고 맘을 먹었다. 그런데 시누는 내 생각과 달리 그 돈을 가지고 본인이 생각하는 효도를 하고자 했다. 아버지 건강 검진이나 세탁기 바꾸기 등에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길 원했다. 나는 돈은 같이 내나 본인이 주도해서 해주는 것처럼 보여, 생생은 본인이 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아마도 시누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한쪽으로 치우쳐 바라보게 했을 거라 생각된다.-그래서 시누에게 말했다.

  "나는 이 돈을 사사로이 쓰기보단 정말 큰돈이 필요할 때를 생각해서 건들지 않았으면 한다고."

 시누는 나와 생각이 달랐다. 부모 곁에 지내면서 필요한 게 보이고 그때그때 그 돈을 쓰기 원했다.

그래서 나는 서로의 돈을 모으는 목적이 다르니 그만 모으고 돈을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시누가 알아서 부모님 해 드리고 싶은 거 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일사철리로 내 돈으로 시댁의 세탁기는 바로 결제해서 보냈다. 그런데 내가 부모를 위해 한 일이면서도 나는 하나도 기쁘거나 즐겁지 않았다. 내 마음에서 우러난 것도 아니며 마치 시누의 효도를 대신해 준 기분이었다. 이 이야기를 상담해서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성격이 급한 편이세요. 그리고 불편한 걸 감수하지 못해요."

 "그 제안이 왔을 때, 우리 형편에 세탁기를 지금 바꾸는 건 쉽지 않으니 좀 미루자, 또는 부모님 생신이나 어버이날에 바꾸자고 말하며, 대화의 흐름을 자신이 주도하도록 할 수 있는데, 결국 시누의 뜻대로 이루어졌네요."


그랬다. 나는 조금의 불편함도 가지고 있지 않으려고 하고, 비난받거나 또는 도리에 어긋난다고 여기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원하지 않더라도 나는 나의 불편함을 누른 채 행동한 것이다.


 "다음부터는 선생님 마음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세요. 그리고 그 선택에서 나오는 불편함은 감수하셔야 해요. 왜 타인의 생각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거죠?"

 "인정 욕구요. 그런데 세탁기는 내 마음에서 우러나서 사 드린 게 아니고 시누의 뜻대로 움직인 것 같아 기분이 불쾌해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을 땐 뭐든 다 퍼줄 수 있는 사람인데......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조차 불편해요."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분노하며 울었다. 왜 분노를 하며, 울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그동안 내가 시댁에게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마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 때문에 차 안에서 남편에게 전화해 미친년처럼 퍼부었다. 그리고 한동안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남편에게 상담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앞으로 시누가 제안하는 건 바로 수락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선택은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거절의 불편함은 내가 감수하기로 했다. 남편은 내 말에 동의하며 지금까지 세탁기와 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효도는 각자의 몫이지 강요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내 마음이 닫힌 상태에서 요구하는 것은 폭력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아프셨다. 암진단을 받으시고 몇 기가 될지, 항암 치료를 해야 할지, 어떤 상황이 모른 채로 몇 날 며칠을 울며 지낸 날이었다. 암진단 소식을 받자마자 엄마를 보러 가고 싶었으나 남동생이 말렸다. 엄마가 너를 보면 마음이 약해져 무너질 것 같다고 오지 말아 달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울기만 해야 하는 때인데, 마침 어버이날 근처가 되어 시누가 뭘 해드릴지 물어보니 시아버지께서 시누에게 건강검진을 해 달라고 했나 보다. 그게 비용이 부담이 되었는지 시누는 남편에게 말하고 남편은 나에게 전달했다. 나는 지금 엄마 때문에 정신없는데 하필 이런 상황에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남보다 못하다며 미친년처럼 울었다. 당신이 시누에게 지금 내 상황이 이러니 네가 알아서 해라 하든, 미루자고 이야기했어야 했다며 나는 가슴 절절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건 깊은 상처로 남았고 시댁과 거리를 두는 데 한몫했다. 이런 이야기를 상담에서 같이 이야기했을 때 상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선생님 마음이 아프고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다른 식구들의 마음도 같을 수는 없어요. 그들의 행동과 생각은 그들이 선택하는 거죠. 그걸로 선생님이 내 뜻과 같지 않다고 힘들어할 필요는 없어요."


다행히 이 말을 듣고 그동안 나는 타인의 행동과 말도 짐작하고 기대하며 생각으로 통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마음 가는 대로, 표현하고 싶은 대로, 나의 마음을 지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지금은 시댁이 불편하지 않다. 그리고 내가 마음 내킬 때, 진심으로 챙기고 싶을 때 내 방식대로 챙기며, 시댁 식구들의 마음과 행동도 존중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시댁에 대한 미운 마음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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