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무 Feb 26. 2024

상담기록 2. 가정은 또 다른 일터

생각을 멈추세요.

우리의 싸움은 늘 나의 '화'로부터 시작했다. 나의 '화'는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기분에 따라 달랐다. 그래서 가족은 나의 눈치를 보느라, 나의 감정을 받느라 힘든 상황을 종종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몰려오는 자괴감과 자책감은 나를 깊은 수렁에 넣어 나를 흡수해 버렸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 상황에 지쳐가고 내 가족이 나에게 물들어 병들어가려는 그 시점에 나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싶다고 바라고 또 바랐다.


 "화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 중 나는 언제 화를 냈는지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가정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가정은 또 다른 일터죠."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환경, 직장에서 늘 바쁜 남편, 직장일과 가정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나.

남편은 회사에서 자기 나름의 위치가 있으며 성장 중이다. 나와 다르게 아이들 학원을 어디에 보내야 하는지, 아침, 저녁은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아이들  학교에서 보내는 가정통신문이나 숙제, 가정의 경제적 사정이나 기타 등등의 문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문제제기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것은 나만 희생한다는 생각이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바라보지 못하고 현재의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을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생각의 생각을 거듭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리고 나만 바라보고 있었지 가족이 각자 위치에서 희생하며 노력하는 것들을 보지 못했다.

 

 "생각을 멈추세요."


이게 가능한 것인가, 말은 쉽다.라는 생각이 솟구쳤지만, 나는 상담 간 날 받은 말들을 메모하며, 일주일을 말씀을 실천하듯 살았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내 가정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생각을 멈추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나의 상담 과정을 가족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여기서 가족은 남편과 나의 어린 자녀들과 함께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오은영 박사의 '금쪽같은 내 새끼'가 있다. 나는 거기서 금쪽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종종 보곤 한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가족들에게 말했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금쪽이는 혼자서 바뀔 수 없어. 온 가족이 노력해야 바뀔 수 있어."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예민한 나를 내 가족들은 나를 받아주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나는 우리 가족에게

 시한폭탄, 문제 덩어리, 사회생활을 잘하지 못할 아이, 성격이 지랄 맞은 가시나, 우리 집 골칫덩어리, 까칠한 아이, 원만하지 못한, 자기주장이 강한, 자기 생각대로 하고자 하는,

그 가족의 프레임에서 나는 벗어나고자 노력해보기도 했지만, 번번이 좌절되고, 여전히 나는 뿌리가 되는 가족에게 인정받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음에 가슴 아파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알았다. 내가 예민한 기질을 가지고 있으나, 그 예민함이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며, 심미적 가치를 추구하며, 타인에게 섬세하게 표현하며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이를 키우면서 알았다. 이런 나의 기질을 본 가족들이 알아줬다면, 나의 삶이 좀 더 쉽지 않았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알았다.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본 가족의 모습을 답습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는 것을.

   


훗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안다.

생각을 멈추는 일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간단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이 넘칠 때면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말의 사고과정을 관찰한 남편은 사고가 넘치는 것을 막아주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나를 제삼자 보듯이 사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이 내가 되지 않는 법, 나의 감정이 내가 되지 않는 법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이전 01화 상담기록 1. 인생은 고(苦)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