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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Jun 30. 2024

'사생활의 천재들', 정혜윤 (진로독서)

이 사이에 깨문 그 희망 때문에,  

나는 그에게 왜 캐슈넛을 선물했는가?


맙소사. 후안은 수많은  내 친구들을, 이웃들을, 동료들을 닮았잖아. 일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창조적이기를 원했던 그런 사람들 말이야.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렸어. 우리는 점점 일의 노예처럼 되어가고 있어. 일을 한 점으로 삼아 자기 미래를 설계하기란 점점 어려워져만 가고 있어. 많은 사람에게 일은 자신을 확장시키는 경험이 되질 못하고 있어. 일을 마친 사람들이 밤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서나 마음을 털어놓으며 위로를 찾으려 하고 있지.


- 이 사실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현실주의자가 되길바랍니다. 이 사이에 깨문 그 희망 때문에, 끝없는 피로 한가운데서도 일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그 희망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도 악을 쓰면서 울부짖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이 사이에 희망을 물고 있는 사람은 형제든 자매든 존경받을 만합니다.(...) 이 사이에 깨문 이 희망들이 넝마인지 새것인지 중요치 않습니다. 밤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새로운 날을 꿈꾸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커피 좀 있나요?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존 버거


 그래 이 부분이야 이 사이에 깨문 희망. 나는 바로 그것 때문에 너에게 캐슈넛을 선물해. 네가 밤을 이겨내고 살아남길 바래.


 만약 내가 바쁘다면 평소의 한 순간을 영원처럼 빛나게 하느라 이것저것 하느라 바쁘고 싶어. 만약 내가 걸레라면 내가 닦은 부분을 살펴보고 자랑하고 싶어. 우리는 점점 한 가지 틀로 세상을 보고 있어. 그렇게 보는 한 결코 눈치채지 못해.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다는 것을.

 그래서 너에게 캐슈넛을 선물해. 캐슈넛을 씹으면서 희망을 깨물기를 바래.


 그래서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미래는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닮아가는 거야. 우리 자신이 보고 싶은 미래 자체가 되어가는 거지. 그래서 내가 '가장 아름다운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할 때 내 마음속의 생각은 우리가 변화해야만 그날이 온다는 것이었어. 우리가 변화해야만 세상이 아름답게 바뀐다는 말이었어. 이것이 희망을 이 사이에 넣어둔다는 말이야. 희망을 깨문다는 말이야. 희망은 별처럼 먼 곳에 있지만 그 별을 입으로 옮겨놓는 거야.


 나는 내 멋대로 "카페 람보"를 따귀로 잠을 깨우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고 생각하고 있어. 아주 많은 사람들이 깊히 잠들어있어. 한 사람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우 사람을 깨우기 위해서 아주 요란한 소리가 필요해. 잠들지 않고 버틴 사람들, 먼저 깬 사람은 빨리 옆 사람을 깨워야 해. 깨어있는 사람을 찾아 다녀야만 해. 다행히 우리에겐 본능이 있어. 결코 나 혼자 깨어있지 않으려는 본능. 흔들어 깨우고 나랑 같이 가자고 말하는 본능.


 그들은 자기 내면에 내일의 사과나무를 심는 데 천재다. 그들의 나무는 그들 내면에서 자란다. 그들에겐 세상이 내면이다. 사생활이 내면이다. 그들의 영혼은 피부에 묻어있다. 그들은 자기에게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는 데 천재적이다.

 

-박수용, 자기 삶의 천재가 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인생에서 이룬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인생 전체가 중요하다는 것, 매일매일 불행하다가 어느 한 순간 찬란하게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 나는 뼈 한 조각을 보면서 보람이란 것을 어떤 핵심적인 것, 본질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호랑이는 개체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자연의 법칙을 따릅니다. 호랑이는 욕구를 참을 줄 압니다. 오른발을 내딛었어도 뭔가 낌새가 이상하면 왼발을 든 채 정지 상태로 5분도 참습니다. 먹을 걸 포기하고 자기 자신을 지킵니다.
내겐 꽃 이름을 아는 것보다 어디선가 꽃이 피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비트는 호랑이를 보는 곳일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보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비트에서 기다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눈으로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기다리는 겁니다.


천재란 스스로의 절도를 창조해내는 반항이다.


 저는 자신의 한계에도 고통에도 행운에도 똑같은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 좋습니다.


-변영주,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저는 할머니 앞에선 웃고 떠들지만 그 순간에도 돈 생각을 합니다. 내 모든 이야기를 한 유일한 할머니였는데도 말입니다. 저에겐 당장 내일 촬영할 돈이 없었습니다. 스태프들 밥값과 차비를 줄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말기 암 환자   가족과도 똑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저는 지혜로워지고 싶었습니다. '내가 지혜롭지 못해서 남들을 괴롭히는구나.' 그때부터 남의 말을 듣는 게 중요해졌습니다.


 왜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냐고요? 나를 불태울 수 있는 건 행복한 얼굴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다 같이 행진하는데, 한쪽 골목에서 '나는 무서워서 못 가겠다' 하고 웅크리고 있던 애가 한 걸음 내딛는데 그땐 그 아이는 패배할 것이 분명합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울먹울먹 걸어가는 아이들 얼굴을 그리고 싶습니다. 몇 년 전의 나였다면 그런 와중에도 변함없이 섹스를 나누는 아이들을 그렸을 겁니다. 이제 '탐닉'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 결단을 내리는 인간을 그리고 싶어진 겁니다.


 좋은 판단을 하도록 사력을 다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힐링이다.


 벌거벗은 몸이 그토록 허약하기 때문에, 그토록 추문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화차에 올라타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그런데 이 상황 속에서 나 혼자 힘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야만 한다는 절박함이 평범한 여인을 무서운 살인자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이 사회적 사건임을 드러내는 어떤 단서도 없습니다. 그저 한 여자는 죽이고 다른 여자는 죽을 뿐입니다.


 변영주 감독이 그저 사회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런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할 때(중략) 그녀는 결국 우리의 판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로 우리의 태도들을 만드는 판단력에 대해서요. 그리고 저는 이것이 그녀의 출사표라고 생각합니다.


-윤태호, 존재를 비추는 만남에 대해서

 펜촉을 잘 쓰는 데만도 수련 기간이 1년 넘게 걸립니다. 펜촉을 잘 쓰면 표현이 풍부해집니다. 공부할 게 너무나 많았습니다. 서른 명이 넘는 문하생들이 컷과 컷의 배치, 구성, 표정 연출 등을 그립니다. 만화에서 칸과 칸 사이 여백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 사이에 독자들은 무슨 생각인가를 합니다.

·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허영만 화백의 화실에서 데생을 하려면 나이 서른이 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스물다섯에 데뷔를 해야 하잖아요. 저는 맘이 급했습니다. 시위도 많이 했습니다. 밤새 그림을 그리고는 그것을 일부러 책상에 펼쳐둡니다. 아침에 허영만 선생님이 출근하면 제일 먼저 책상을 쭉 둘러보니까 바로 그때 눈에 띄게 일부러 펼쳐두는 거죠.


 데뷔작은 4개월 동안 연재되었는데,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만화에 그림만큼 스토리가 중요하단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죽자고 그림만 그리고 스토리를 무시했던 걸 반성했습니다.


 존재감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존재감을 얻기 위해 언제까지고 시시덕거리며 비위나 맞춰주고 있을 수만은 없단 걸요. 나도 내 말을 해야 하는구나. 그래야 상대방이 편안해하는구나. 내가 자존감을 갖고 있어야 사람들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진짜 기뻐하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겠구나. 저 역시도 제 친구가 대단히 훌륭할 때 어쩐지 저까지 존중받는 느낌이 들곤 했었으니까요.


 저는 '야후'로 잠시 이름이 알려졌지만 곧 또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끼'는 제 이름을 갖게 해줬습니다.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없었던 이름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도 작품이 끝날 때마다 불안합니다. 매번 내가 가진 것을 다 소진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는 매번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매번 빈털터리로 시작합니다. 저에겐 저 자신을 학대하느라 여유 없이 살아온 시간이 더 많습니다. 아직도 만화 말고 다른 일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수준에 대한 공포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통이니 본격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깜짝 놀랍니다.


 저를 학대하기만 했던 시절이지 타인을 위한 배려나 존중에 대해선 생각도 못했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만화로 생각해보면 어떤 컷이든 그 그림을 필요로 하는 이야기와 가치와 함께 갑니다. 저는 만화로 이제 뭔가에 기여하고 싶어집니다. 그것은 제가 잘 아는 마이너의 세계와 관련된 일일 겁니다.

 저는 거울을 앞에 두고 '난 왜 이런 몸으로 태어났을까?' 평생 궁금했고 지금도 궁금합니다. 이제 그 뉘앙스는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몸으로 태어나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뭔가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서로서로 상대를 위한 거울이다.


 '게니우스는 어떤 사람이 태어난 순간 그의 수호자가 되는 신(수호천사)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아감벤의 말에 따르면 게니우스는 우리의 기원인데,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게니우스랑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즉 인간은 자아이자 자아가 아닌 것과 늘 함께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비인격적인 것이 게니우스이고 우리는 이 낯선 존재와 떨어지지 못하고 가장 은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가끔 이 게니우스를 느낍니다. 바로 감동할 때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왜 감동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때 '게니우스를 불안이나 기쁨, 안심이나 동요로 경험'합니다. 감동하는 순간에 우리는 자신의 특성을 내려놓고, 상황과 처지도 내려 놓고 감동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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