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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방년 Feb 19. 2023

코 코 코

    "누가 주워 온 돌인지, 꼭 지 코처럼 생겼다." 

    공기놀이를 하려고 7살 짜리 네 명이 각자 주워 온 돌멩이를 땅바닥에 두르륵 쏟아놓고 앉자 그 중 한 명이 딱히 누구에게라 할 것 없이 한 소리다. 

    '누가 주워 온 돌'인지는 모두 알고 있었다. 모양새가 공기놀이에 마뜩찮게 납작했다. 


    나는 내 코가 납작코라는 것을 그날 알았다.


    화장을 안 하기 때문에 일부러 거울 앞에 앉는 일은 없다. 그러나 아침 저녁으로 세면대 거울을 마주하게 되고, 하필이면 신장이 부실해서 화장실 출입이 집 안팎을 가리지 않고 잦다. 그리고 모든 화장실에는 거울이 있다. 

    거울이 싫다. 거울 탓에 내 코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니까.

    "니 코가 뭐가 어때서?"라고 말하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내 코가 지 코가 아니라서 하는 속 편한 소리다.  




    깨어 있는 동안 사람들이 '섹스 생각'으로 보내는 시간이 엄청나다는 결과를 발표한 설문조사가 있었다. 몇 사람을 붙잡고 물어본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보통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사실을 번잡스럽게 설문까지 동원해서 조사 씩이나 해봐야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살아 가면서, 오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가 '코 생각'으로 보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섹스 생각'에 투자한 시간이 아무리 많다 한들 '코 생각'에 바친 시간에 비하랴. 

    물론, 허구한 날 일정 시간 양을 정해 놓고 '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 코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난 적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깨어 있는 동안 나라는 사람이 '코 생각'으로 보내온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항상 의식하고 있는 걸 어떻게 숫자로 환산하지? 감으로? 

    그래, 감으로.

    일곱 살에서 일흔 일곱살까지, 코 생각은 하루 24시간에서 2시간 플러스 마이너스.

    계산기, 계산기!


     (하루) 2시간 x (일주일) 7일 = 14시간

     (일주일) 14시간 x (한 달) 4주 = 56시간

     (한 달) 56시간 x (일 년) 12달 = 672시간

     (일 년 ) 672시간 x 70년 = 47,040시간 

     *(하루) 24시간 - (잠자는 시간) 8시간 = (하루 깨어 있는) 16시간, 그러므로

     (70년) 47,040시간 ÷ (하루 깨어 있는) 16시간 = 2,940일

     2,940일 ÷ (한 달) 30일 = 98개월

     98개월 ÷ (일년) 12달 = 8.16년 


     대충 8년이 '코 생각'으로 날아 갔구먼.




    얼굴에 어디 코만 있나? 눈, 눈도 있다. 

    대여섯 살? 잠자리 들기 전, 곧추 앉아 기도했다. 원하는 건 간단했다. 

    쌍꺼풀아, 쌍꺼풀아, 생겨라! (기적을 잘 만드시니 쌍꺼풀 쯤이야…)

    하느님하고는 지금까지도 서먹서먹한 사이다.


    중학생이 되어 안경이 필요했을 때 작은오빠가 한 마디 했다,

    "니 얼굴에 안경까지 쓰면…" 

    똑 부러지게 말을 끝내지 않은 까닭은 끝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야, 너, 여자가 그렇게 생겨서 어떡하냐?"를 툭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던 50년대 한국 성인 남자. 사려 깊은 작은오빠는 귀여운 막내가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게될 것을 앞질러 우려하고 있었나? 

    돌맹이 맞고 머리 터진 개구리가 언제 재미로 죽었나? 




    다시 코로 돌아가서. 


    지금 지구 상에서 숨 쉬고 있는 80억을 웃도는 사람들 얼굴에는 코가 하나씩 붙어 있다. 예외란 없다.     1836년, 아침에 일어나 보니 코 있던 자리가 판판하고 밋밋해서 놀라 자빠진 코발료프는 <코>를 찾아 하루종일 고생 고루고루 한다. 다음날 아침, 고골은 코발료프 코를 제자리에 붙여 놓는다. 

    고골은 '코 생각'을 몇 시간 정도 했을려나?




    수술 전, 원장선생님과 간단한 상담 세션이 있었다. 쌍꺼풀은 눈에 띄지 않도록 '속 쌍꺼풀'로, 코에는 안경이 얹힐 수 있을 정도의 '콧대'를.  

    수술대에 누운 나를, 내 코를 내려다보면서 원장선생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상담에서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던가, 콧대 좀 넣어 주십사고. 그런데 처분만 바라면서 벌러덩 누워 있는 시점에서 뜬금없이 "어떻게 해 드릴까" 보냐니.

    "예쁘게 해 주세요,"라고 애걸하기를 바라는 의례적인 질문이었나? 

    갑자기 화가 났다. 씨~팔, 때려칠까?

    그러고는 수치심이 꿈틀했다. 그리고 오기. 이 얼굴에 코만 예쁘면 이상하다는 걸 내가 모를까봐? 

    "어떻게 하시든 예쁘게는 하지 말아 주세요."


    붓기가 가신 눈에는 속쌍꺼풀이 생겼고 두 눈 사이에는 작은 둔덕이 생겼다. 

    내 코의 변화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남편도 자신의 부재 중에 자기 아내 코가 달라졌다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코 성형수술을 했다고 하자, 씨익 웃었다, 별 싱거운 소리를 다 듣는다는 듯이. 

    원장선생님은 손님의 주문을 존중해주셨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벌건 대낮에 내 코가 벼락을 맞았다. 

    복도식 아파트 대문은 철문이었다. 반쯤 열린 문이 닫히기 전에 뛰쳐나가다가 철문 모서리에 코를 들이받았다. 툭! 머릿속에서 둔탁한 소리가 퍼져울렸다. 

    콧대가 분리되는 소리였다. 통증은 없었다, 내 뼈가 아니니까. 그러나 손가락 끝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콧대가 좌우로 흔들거렸다. 코도 풀 수 없고 세수도 불가능했다. 

    재수술을 받았다. 덜 과격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흔들렸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이대 입구가 아니라 명동으로 갔다. 

    두 번씩이나 성형수술을 했다는 '코 모양'에 도전을 느끼셨나? 

    콧구멍 조절을 해야 한다, 연골은 귀에서 뽑는다, 하루 입원이 필요하다,등 수술절차 제반과정을 설명받았다. 설레었다. 납작코를 정리하시겠다는 말씀 아닌가!


    교정에서 마주치는 교수들도 학생들도 내 코의 변화에 무감했다. 하긴, 남의 콧구멍 사이즈를 주시하며 생활하는 사람이 보통사람 중에 몇이나 있을까? 

    중요한 건, 거울이 싫지 않았다. 


    그러던 또 어느 날.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귓속에서 흐릿한 톡! 소리가 났다. 

    뭐지?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그냥 넘어갔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콧구멍이 원래 사이즈로 돌아와 있었다. 

    톡! 연골이 풀어지는 소리였다. 


    통해, 통해, 물어, 물어, 강남에서 그중 어떻다는 원장선생님을 찾아갔다. 내 코 스토리를 듣고 난 원장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두 달에 코수술 세 번? 

    또 손을 대면 코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포기하시라,고 했다.

    포기했다.  그리고 어기적어기적 35년이 어디인지 모를 곳으로 가버렸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말 같기도 하고 말 같지 않기도 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남을 사랑하지 않는 까닭이, 혹시,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인가?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

    납작코 때문에?

    외양 때문에?

    껍질 때문에? 


    지난 35년 동안 한국 성형수술 기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죽기 전에 덕이나 좀 봐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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