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동시 육아휴직의 계획과 반전
우리는 우리 가족만의 6개월짜리 플랜을 짰다. 맞벌이 부부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쓰고, 아기와 함께 매일을 온전히 보내는 시간. 처음에는 너무 멋진 우리의 모습과 그 시간을 알차고 행복하게 쓰고 있을 우리의 미래만을 상상했다. 나름 준비도 철저히 했다. 시간, 돈, 커리어, 아기와의 활동까지 계획했다.
근데 그 철저한 계획 속에 우리는 한 가지를 빼놓고 있었다. 우리의 계획들과, 계획의 배신을 기록했다.
우리의 성장플랜 짜기
동시 육아휴직을 하기로 한 첫 번째 목적은 어디까지나 아이와 가족이 모두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함이었지만, 분명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이전의 1년 육아휴직을 겪으며 내 새로운 정체성과 타협하는 과정을 겪었고, 내 신변의 변화와 같이 갈 수 있는 커리어 방향성이나 은퇴 후를 조금씩 그려보고 있었다. 남편도 육아휴직을 통해서 그런 기회를 갖기를 바랐다.
그래서 우리는 와인 한 병을 사이에 두고, 이 시간에 대한 의미부여를 시작했다. 개인 커리어, 자산, 아이 교육이라는 세 개의 축을 잡고 우리의 10년 장기 계획을 먼저 구상했다. 그리고 올해 각자 단기 목표를 정리해 'THE PLAN 2025'라는 이름도 붙였다. 이렇게 정리해보고 나니 이 시간이 우리의 성장에도 터닝포인트가 되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가족 활동 설계하기
가뜩이나 집돌이인 남편과 뭐라도 계획해두지 않으면 아기랑 셋이 집에서 천장만 쳐다보고 있을 것 같았다. 인생에 다시는 올지 모르는 이 시간을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막 시작하려던 무렵, 우리 아기는 막 돌을 지나던 때, 김보경 박사의 <0~5세 골든브레인 육아법> 책을 읽고 있었다. 4장의 '놀이'파트에서는 놀이의 중요성, 특히 자유놀이, 신체놀이, 자연놀이를 강조한다. 이를 참고해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 어린이집에서 조기 하원하고 숲, 어린이미술관, 박물관 등을 돌아보는 일정을 짰다. 평일에 방문한 시설들은 대부분 사람이 없고, 저렴하기까지 하다. 아이를 제지시키는 것도 비교적 덜 해도 된다.
이외에 주말 하루는 '아빠와 요리하는 날'로 정했고 여름 오기 전 6월의 제주 한달살이도 계획했다.
모든 일정이 제법 그럴듯했다.
자금 계획하기
우리가 둘 다 임시 백수를 결심할 수 있었던 건 6+6 육아휴직 제도 덕분이었다. 통상임금 기준 엄마 아빠가 각각 최대 45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기본급 외에도 살림을 꾸리는데 큰 부분이었던 인센티브가 양쪽 모두에게 없을 예정이니 목돈이 필요하거나 큰 지출이 나가야 하는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6개월 예상 수입
✔️예상 월평균 지출
✔️예상목돈 (명절, 경조사, 제주도 한달살이 등)
지난 가계부를 뒤져 위와 같이 항목을 나누어 예산을 짰다.
우리의 목표는 계산된 예산 안에서 어떤 적금도 깨지 않고 살기.
여기서 반전. 우리가 계획하지 못했던 것
지난 3월, 이렇게 야심 차게 준비를 마치고 우리의 부부 육아휴직 라이프의 문을 열었다. 계획은 완벽했고, 아이도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해 여유도 있었다.
그러나, 반전은 여기서부터. 우리가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으니,
"둘이 함께 24시간을 산다는 것. 그것은 갈등의 예고였다."
이전에도 함께 여행을 다니며 2~3주 내내 붙어있어도 크게 싸운 적 없는 우리 부부였지만, 육아는 여행이 아니었다.
양육을 하는 현실에서의 24시간은 완전 다른 이야기였다.
나는 주양육자로서 내가 해오던 것을 자연스레 이어가려 했고, 남편은 이제 막 시작한 육아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과 속도를 찾고 있었다. 대화를 할수록 의견은 대립되고 감정의 골도 깊어져 계획했던 것들을 못하기 일쑤였다. 격렬히 싸운 날에는 단란한 평일 나들이도 무너졌고, 집에서 조차 아이가 있을 때도 찬바람이 불기도 했다. 어떤 완벽한 계획을 세웠어도 일어날 일이었다.
우리는 너무 예쁜 그림만 그려놨던 거다.
아니 내가 혼자 그려 놓은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남편은 몇 번 '해보면서 맞춰가자'라고 얘기했던 걸 내가 "아니! 대비해놔야 해!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어!" 하며 묵살했었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어떤 계획보다도 잘 맞추어 가 보려는 현실적 합의와 감정의 리허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걸 깨닫고 갈등을 부추기는 빡센 계획은 다 던져버렸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씩 다시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갈등상황은 이후 글에서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