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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숙 Oct 22. 2023

쉼표가 필요했던 거야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

일을 하다가 알게 된 대표님이 있었다. 그분은 건축에 관련되어 오랜 시간 외국에서 활동을 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사업을 하고 있다. 일과 관련하여 자주 만나면서 그분의 생활패턴을 알게 되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현장 답사를 다녀오고 이후 미팅등 스케줄을 오후 4시 이전에 모두 마무리를 한다. 그리고 집에 일찍 들어가서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저녁을 가볍게 먹고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스케줄을 점검하며 일찍 하루를 마무리한다고 한다.


돈을 아 밤낮없이 약속을 잡고 움직이다가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난 이후 모든 스케줄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너무 바쁘게만 사는 사람들에게 충고를 해준다.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있어야 한다며 바쁘기만 한 것은 오히려 더디게 가는 방법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자신의 이름을 하나 더 만들어서, 그 이름으로 새 인생을 산다고 생각을 해봐." 모든 것을 새롭게 계획을 세우고  새로 시작한 삶이라 여겨 보라고 한다.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봤으니 이제 다른 이름으로 다른 인생도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자신도 본명이 따로 있으며 지금 쓰는 이름을 만들어 그 이름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의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다른 것이 보이더란다. 그래서 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노라며 내게도 이름을 하나 지어 주었다.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가 빨리 와닿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마음에 새겨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시간 속에 그 말이 생각이 났고 다른 삶을 산다는 의미에서 다른 이름으로 살아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지어준 이름을 떠 올려 보았다.

 '야니'...

참으로 어색하다. 몇 번을 되풀이해서 불러 보았다. "저 이름이 나라고?"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인터넷에 '야니'를 검색해 보았다. 여러 명이 있었는데 특히 생각나는 사람은 음악가였다.


그분은 내게 사진을 찍어서 아들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사진전을 해보라고 권유를 했다. 얼떨결에 해보겠다고 하고 사진을 찍었고 몇 장을 골라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부담 없이 카페에 전시를 했다. 그리고 간단하게 홍보도 했다. 날자를 정하고 몇몇 지인들을 모시고 다과를 준비해서 핑계로 얼굴을 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다른 이름으로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활동을 해본 것이다. 아마추어도 못 되는 실력으로 어쩌다 사진작가라는 타이틀을 훔치듯 일을 저질러보았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태권도협회에서 행사차 외부에 나가게 되면 모든 활동하는 모습을 찍어서 그 사진을 나누어 주게 되었다.


나름 재미도 있고 또 사진을 받는 분들은 생각지 않았던 선물을 받았다며 좋아하는 모습에 나도 즐거워졌다. 작은 나눔이 시작되었으며 내 마음에 쉼표가 찍혔다. 급하게 쫓기듯 움직이던 나의 모습에서 숨을 고르며 생각을 하게 되었고 별거 아니지만 작은 나눔에 흐뭇함을 느꼈다.


마음에 이렇게 쉼표를 갖게 된다는 것이 나를 여러 가지로 바꾸어 놓았다. 차분하게 앉아서 책을 읽게 했고, 책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만났다. 그 안에서 위로도 받고 꾸짖음을 받기도 하면서 마음에 공간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불안정하고 어설픈 나의  삶이 조금씩 자리가 잡힐 것이라는 확신도 생겼다.


생각의 전환은 쉽지 않다. 습관이라는 것이 나의 모든 것을 간섭하기 때문에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 보니  나의 생각을 바꾸는 것 또한 어렵다. 그런데 다른 이름으로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는 시도를 하면서 그동안 하지 않았던 생각을 해보고 다른 결과들을 만나게 되었다.


생각을 해본다.

"다른 여러 개의 지구에 살고 있는 여러 명의 내가 모두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면, 그래서 가끔 '데자뷔'가  느껴지는 것은 다른 지구의 다른 나를 보는 것은 아닐까...


다른 지구에서의 나는 어쩌면 유명한 무용수가 되어있을 수도 있겠지? 어쩌면 여군으로 별을 달았을 수도 있어. 큰 사업가가 되어 엄청난 유명인으로 많은 곳에 후원을 하고 있을 거야. 진짜 사진작가가 되어 나의 사진을 잡지책에 올린다거나 큰 전시장에서 내 사진을 전시하고 있을지도 몰라. 여러 명의 내가 있는데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겠지. 설마 지금 나랑 똑같이 살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우리 엄마, 아버지도 살아계실 거야..."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왠지 즐거워진다. 상상 속에서 실제 여러 명의 나를 만나보게 되니까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모습을 찾아서 그렇게 살아야지 하며 웃는다.


야간대학을 다닐 때 나보다 9살 적은 친구가 있었다. 내차로 이동을 하며 나눈 이야기 중 "내비게이션을 본다고 앞으로 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앞으로 잘 가려면 앞도 보아야 하지만 양 옆도 보고 때로는 뒤도 보아야 해요. 그래야 사고 없이 잘 갈 수가 있어요."


나보다 9살이나 적은데 이런 말을 하다니 그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대답을 했다. "응 그래, 그 말은 결국 마음에 쉼표를 가지고 보아야 할 것을 보면서 가라는 거구나." 나의 말을 듣고 웃으며 "네,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나는 실제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쉼표가 필요해. 너무 내 달리기만 하면 놓치는 것이 많아. 가족을 위해 함께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놓치고, 자신의 건강이 얼마나 나빠지고 있는지도 놓치고, 준비를 하며 계획하에 움직여야 하는 중요한 일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여 놓치고, 옆에 있는 사람이 나의 무관심으로 힘들어하는 줄도 모르고 그런 그 사람의 마음도 놓치고..."



지난 학창 시절이 떠 오른다. 가을로 접어들어 날씨는 한참 좋았다. 국어시간 점심을 먹고 난 후 왜 이리 졸려운 지 간신히 눈을 뜨고 있었다.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눈이 희번덕해지고 앞에서 보면 무서웠을 것이다. 아마도 선생님께 그러한 모습을 들켰으리라...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오랜만에 선생님의 지목을 받고 일어섰다.


졸지 말고 책을 읽으라고 하셨다. 소리 내어 읽는 목소리는 떨리고 숨 가쁨에 숨을 몰아 쉬면서 읽자니 힘들게 느껴졌다. "천천히 읽어라. 누가 쫓아오냐. 숨은 쉬어야지."  졸다가 들켜 나도 모르게 급하게 읽었던 것 같다. 선생님의 지적으로 쉼표와 마침표를 보며 숨을 고르면서 읽었다. 훨씬 수월했다.


늦잠을 자는 것도 아닌데 늘 학교에 갈 때면 뛰어야만 지각을 면했다. 늘 아슬하게 도착을 했다. 등굣길에 잠시 비가 오는 날 그날은 여느 때보다 차가 더디게 운행이 되었다. 열심히 뛰어도 지각을 면하기 힘들었다. 벌칙으로 운동장을 몇 바퀴 뛰고 점심시간 교무실 선생님 책상을 청소하는 것이다. 여느 점심시간은 느긋하게 밥을 먹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놀았는데, 그날은 선생님 책상을 청소해야 해서 밥을 급하게 먹었다. 부랴부랴 먹고 선생님 책상을 청소하고 나가서 놀 생각이었다. 빠르게 모든 것을 마치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막 놀려고 하는데 다시 호출을 받고 교무실로 갔다. 청소가 미흡하다고 다시 하라고 하셨다. 나가서 놀아야 하는데 그 시간을 뺏긴 것이 화가 나서 속으로 씨근덕거렸다.


그런데 그날 나는 급하게 먹었던 것 때문인지 체해서 다음날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고생을 했다. 역시 아프면 먹는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책을 읽을 때 쉼표에 맞춰 읽으면 숨 가쁨도 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모든 음악의 악보에도 빠짐없이 있는 쉼표,  체 했을 때도 위가 부담되지 않게 먹는 것을 멈추고 위를 쉬게 해주어야 한다.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모든 것에는 어쩌면 쉼표가 필요하다.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나를 재 점검할 수 있어야 했다. 주변을 살필 수 있어야 했다. 가족을 돌아보고 나의 소홀함으로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살폈어야 했다. 나를 살피고 나의 마음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 가고자 하는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하려면  내게는 바로 '쉼표'가 필요했던 거야. 그것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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