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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숙 Oct 22. 2023

마음의 향기

살아낸 시간이 주는 선물

아침 4시에 눈을 뜨고 시간을 보며 계산을 한다. 출발해서 한 두 번 휴게소를 들러 도착을 하는 시간을 따져보니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11시 전에 도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둔해진 몸을 일으켜 준비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빠진 것이 있는지 가방 속을 다시 살핀다. 다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이 되어 집을 나서려는데 잠자고 있던 딸이 방문을 열고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해준다. 조용히 나가려고 했는데 아마도 내가 준비하는 소리가 잠을 깨웠던 모양이다.


전국체전이 있어서 선수들은 며칠 전 출정식을 하고 훈련차 먼저 시합장 근처 준비된 장소로 이동을 하였다. 몇 년 전 우리는 기세등등하게 1등을 3 연속하며 그야말로 잘 나갔었다. 지금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3등 안에 들어가면 다행이다 싶다.


요즘은 울산이 우세인듯하다. 아무래도 좋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우리의 할 일을 한다고 위로를 한다. 그런데 그 최선을 정말 다 하는 것일까 의문이 생기면서 다시 한번 지난날과 지금을 떠 올려 비교를 해 본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우리는 말로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싶다.


거리는 멀지만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막히는 길은 없었다. 가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나무들은 형형색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중이다. 벼는 잘 익어 노란색으로 잔뜩 뽐내고 있다. 일부는 추수를 했고 일부는 아직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역시나 아름다운 계절이다.


출발을 할 때는 춥다는 느낌이 들어 옷을 껴 입었는데 가다 보니 어느새 햇살이 따뜻하게 비춰 껴 입었던 옷을 벗었다. 오랜 시간을 달려야 할 때가 많다 보니 나는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운전을 한다. 요즘에는 주로 소설을 듣는데 내용에서 사람들의 심리를 간접으로 느끼며 지루함 없이 도착지에 이르게 된다. 귀로 오디오북의 내용을 듣고 눈으로 밖의 풍경을 보며 머리로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채우다 보면 나의 목적을 잠시 잊기도 한다.     


경기장에 도착을 해서 사람들과 합류를 하고 나서야 나의 목적을 상기한다. 우리 선수들의 컨디션은 어떤지 예상대로의 매달을 기대할 수 있는지 살피며 응원을 한다.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가 되었고 우리는 1시간 거리에 자리 잡게 된 숙소로 이동을 했다. 아름다운 계절이라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다. 결과는 뒤로한 채 일단 마음이 즐거운 것은 눈이 즐겁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몇명의 임원들과 함께 차 한잔을 마시며 준비된 노트를 들고 앉아서 생각나는 것을 적어본다. 낙서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상대의 말을 받아 적기도 하고 나의 생각을 적기도 하고 그저 습관이라 적는 것이다. 그렇게 적다 보니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의 성격이라고 해야 하나 말에서 풍기는 뭔가가 다름을 확연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은 태권도라는 큰 틀에서 그들과 함께하고 있어서 별다른 생각 없이 마주했던 기억밖에 없었는데 한동안 소설을 들어서인지 그들에게서 서로 다름을 유난히도 많이 느꼈다. 태권도를 지우고 그 사람들을 보게 된 것이다.



저마다 색깔이 다르고 모든 것이 다 달랐는데 나는 그동안 그 오랜 시간을 태권도라는 프레임 안에서의 사람들을 보아왔고 그래서 특별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없었던 것 같다. 심판은 심판으로만 보아왔고 경기부는 경기부로만 보아왔다. 저마다 맡은 것이 다 달랐지만 모두 태권도를 위한 일원으로만 보아왔다. 나 역시 태권도의 일원으로만 생각을 했다.  


태권도협회가 아닌 경기장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의 만남일지라도 태권도가 이유가 되어 만나지는 만남이었기에 언제나 태권도라는 글자가 머릿속에 크게 자리하고 그 아래에 모두가 있을 뿐이었다. 그 안에서 사람들에 대한 판단도 주로 회장님과 뜻이 같은지에 따라 달라졌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향기가 있었다. 나무의 향기가 다 다르듯 그들에게서 풍겨지는 향기도 모두 달랐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 문득 어느 시인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글을 쓰다가 잠시 마당으로 나와 쉬려는데 갑자기 소나무 향이 진하게 나더란다. 그 향기로 소나무가 있었음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갑자기 향이 이렇게 진하게 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래서 소나무를 바라보게 되었는데 간밤에 태풍으로 가지가 부러져 있었고 그 상처로 향이 그렇게 진하게 나는 것이었다고 한다.


"소나무는 상처가 나니 저렇게 짙은 향기를 뿜어 내는구나. 그런데 사람은 상처가 나도 저런 향기는 나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고 곪으면 냄새가 나는데.. 하지만 영혼이 다치고 그 상처가 아물면 사람에게서는 더 멀리 퍼지는 향기가 난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고 산다. 그리고 그 상처의 크기와 상관없이 아팠던 것만큼 성숙되고 그 성숙된 것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게 된다. 그것에 의해 그 사람의 생각의 깊이가 모두 다르며 그 마음이 또한 다르기에 거기에서 풍겨지는 향기 또한 모두가 다르다.


아마도 그 향기는 그 사람이 살아온 경륜에 맞게 어울리는 향이 날것이다. 우아하고 기품이 있거나 가식 없는 순수함이 있지만 지혜가 있는 냉철함으로 누구든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향을 지니기도 한다.  중후한 멋이 느껴 지가까지 겪어냈어야 하는 많은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항상 고개를 숙여 상대를 세우지만 그에게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뭔가가 있다.


말과 행동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담겨있어 기분이 좋아진다. 진심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이런 모두에는 각자 그들이 살아낸 세월이 묻어 있으며 그 세월 안에 만들어진 각자의 향기가 되었으리라.


"그런 것 때문에  존경이라는 감정이 생겼던 거구나.  이래서 살 맛이 나는 것이었나 봐."라는 생각을 했다.


"내게도 어떤 종류의 향이 있겠지? 그 향기는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은은히 풍기며 사람들 마음에 깃들 수 있는 그런 향기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은 다른 이 들의 향기에  조금씩 취해들며 그들의 마음에 담긴 것들 중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조심히  훔치고 있다.


그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어 즐기고 있다.  잘 살아낸 그들의 시간들을 내가 살아낸 시간과 섞어 내 마음에 품어 본다. 모두의 향기를 사랑하는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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