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전환점
기차나 버스를 타면 정류장과 종착역이 있다. 정류장은 잠깐 멈추는 곳이고, 종착역은 끝이다. 인생도 이와 같다. 어느 정류장에서 잠시 멈추어야 하는지는 자신이 결정하지만, 종착역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나에게 인생의 종착역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 사람이 있었다. 나의 언니였다.
어릴 적, 언니는 늘 나의 우상이었다.
초등학교를 막 입학했을 때 나는 언니와 오빠가 다니는 학교를 다니기 위해 버스를 타고 다녔다. 엄마는 잃어버리지 말라며 양말목에 종이돈으로 동전을 싸서 넣어 주셨다. 그것은 집에 올 때 차비였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한참을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보면 그 돈은 어느새 발바닥으로 들어가게 된다. 집에 올 때 차비를 양말바닥에서 꺼내 주면 차장언니가 인상을 찌푸렸던 기억이 난다.
나와는 세 살 차이가 나는 작은 언니 교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언니가 끝나면 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함께 오던 시간이 참 좋았다.
언니는 정말 예뻤다. 책받침 그림에 나오는 눈과 코 입과 같았다. 언니를 보면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없었다. 반드시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학교에서도 언니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남학생들이 많았다. 언니는 전교 부회장이었기에 늘 선생님의 잔 심부름이 많았다. 난 언니가 자랑스럽고 무척이나 좋았다.
언니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못 다루는 악기가 없었고, 공부, 운동 등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언니와 나는 추억을 공유하며 세상의 모든 아픔과 기쁨을 함께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언니의 인생에도 예기치 않은 '정류장'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입술에 작은 뾰루지가 생겼는데, 그것이 피부암이었다.
조직검사의 결과를 듣고 언니는 끝내 병원치료를 거부했다.
그것은 언니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고, 잠시 숨을 고르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을 때, 나는 그것을 언니의 '정류장'이라 이해했다.
정류장이 인생의 잠시 멈춤을 의미하는 것처럼, 언니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을 단련하며 다음 여정을 준비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리고, 바로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고, 암 투병 중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암과의 투병을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혼자 묵묵히 해왔다.
언니는 마지막까지 배움을 놓지 않으려 했다. 2년만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던 언니의 바램처럼 2년간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죽음을 직면한 상태에서 언니가 선택했던 것은 공부였다. 아마도 두려움을 잊고자 매달렸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식구들에게도 고통과 두려움을 내색하지 않고, 죽기 전까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던 언니의 모습은 내게 침묵의 교훈을 남겼다.
인생의 종착역은 정해져 있지만, 잠시 멈추는 정류장에서는 하염없이 멈춰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내가 겪었던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언니가 보여준 강한 생명력과 의지가 나에게 잠재적인 등불 같은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다.
정류장은 잠깐 멈추는 곳이지, 그곳에 주저앉아 있을 곳이 아니다. 나는 언니가 남긴 삶의 교훈으로, 내 삶의 남은 정류장들을 지나 힘껏 나아갈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감사하며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온전히 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