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시아버지와 백조 세탁기

# 코스母스 1화

by 서기선

제목 : 코스母스


목차

사나웠던 인생 1막

1. 치매 걸린 시아버지와 백조 세탁기

2. 잉글랜드 양화점

3. 할머님의 임종

4. 연이은 화재사고


사나웠던 인생 2막


5. 흔들리는 가정

6. 방황하는 남매

7. 매 맞는 엄마와 바람난 아빠

8. 2023년 겨울

9. 녹슬은 기찻길

10. 보살과 당돌한 상간녀

11. return to seoul

12. 인연 (relationship)

13. 달관자가 되신 어머니

14. 아들의 입대

15. 2023년 겨울 tow


사나웠던 인생3막


16. 어머님의 일기장 one

17. 어머님의 일기장 tow

18. a mother’s love story

19. 아버지와 불야시

20. 장모와 사위 그리고 아들

21. 제주도의 푸른 밤

22. 췌장암에 걸리신 어머니

23.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의료파업

24. 어머니와 코스母스

25. 코스모스 지던 날

26. 아버지와 나 (에피소드 1)

27. 아버지와 나 (에피소드 2)

28. 아버지와 나 (에피소드 3)

29. 아버지와 나 (에피소드 4)

30. 인사말




사나웠던 인생 1막


# 치매 걸린 시아버지와 백조세탁기


[야 이년아 밥 줘라 배고파죽겠다. 아이고 배고파라 아이고 배고파라.]

[노인네 또 시작이네...] 어머니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시아버님의 푸념에 지칠 법도 한대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치매노인의 푸념 따위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우리집엔 치매 걸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다.

두 분 모두 치매에 걸리셨지만, 할머님은 조용한 치매 할아버지는 요란한 치매를 앓고 계신다.

벌써 4년째 치매와 싸우고 계시는 어머니는 천사가 분명했다.

어머니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에게 효부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동내 주민센터에서 효부상을 주신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정중히 거부하셨다.

이 이야기는 하늘에 별이 되신 나의 어머니 변 영분 여사님의 이야기이며, 지금은 희미해져 몇 줄 남아있지 않는 기억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오래되어 냄새나는 이야기이다.

할아버지가 계시는 방에는 모든 벽이 비닐로 되어있다. 아니 벽지가 비닐인 셈이다.

할아버지가 변을 보시고 나면 벽에다 그림을 그리듯 닦아 됐기 때문에 아버지가 내리신 결단이었다.

처음 몇 번은 닦아냈는데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이제는 일상이 되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라 아버님께서 고생하는 어머님 때문에 손수 비닐을 붙이셨다.

할아버님의 식사시간엔 매번 힘겨루기 하신다.

등을 밀어 일어나 앉히면 간신히 앉아 바르르 떨리는 오른손으로 식사하신다.

국에 말아 드시는 할아버님을 위해 어머님은 식사하실 때면 곁에 앉아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시며 할아버지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곁을 지키셨다.

식사를 마친 할아버님은 꼭 밥상을 엎으신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매번 반복되는 일상이라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치매노인의 행동에는 이유란 없다. 그렇다고 평소 생활습관이 묻어나는 것도 아니다.

치매에 걸리기 전 할아버님의 모습은 너무나도 점잔은 선비의 모습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할아버님의 손이 밥상을 잡았지만, 어머니가 조금 더 빨랐다.

어머님은 자신의 힘으로 밥상을 부여잡고 양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야 이 년아 안 놔] 할아버님은 자신이 뜻대로 밥상을 엎지 못하자 어머님에게 화를 내고 있었지만, 어머님은 이번에는 자신이 이겼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재빨리 밥상을 멀리 치우셨다.

순간 가지고 계셨던 숟가락으로 어머니의 머리를 때리시며 할아버님의 분풀이가 시작되었다.

[고얀 년! 내놔라 어서] 하지만 어머님은 물러서지 않으셨다.

[아버님 식사 다 하셨으니 치울게요] 하시며 어머니가 일어나시며 할아버님을 다시 자리에 누이신다.

할아버님은 스스로 앉아계실 수 없다. 식사하실 때만 잠시 앉아계시는데 모서리 쪽으로만 앉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좌우로 언제 넘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앉아계신 체 자리를 비우면 어김없이 넘어지신다.

며칠 전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앉아계시던 할아버님께서 넘어지시며 머리를 바닥에 부딪혀 상처가 생겼다.

그날 어머님은 아버님에게 혼쭐이 나셨고 그날 이후 할아버님은 식사를 마치면 자리에 뉘어지셨다.

어머님의 양볼은 언제나 빨갛다. 심지어 코끝도 그랬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버님께서는 언제나 크리스마스 같다면서 놀려 대곤 하셨지만, 마음은 편치 않으셨다.

자신의 미안한 마음을 오히려 놀리는 방법으로 미안함을 드러내고 계시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4년째 손빨래를 하고 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지금이야 세탁기가 있다지만 옛날엔 그마저도 없었다.

벌써 4년째 똥 묻은 의복과 싸우고 계시는 어머니가 불쌍해서 아버님은 당시 고가의 세탁기를 구매해 주셨다.

TV도 귀했던 시절이니 세탁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자 소리를 들을만했다.

우리 집 백조 세탁기는 왼쪽에서 빨래가 되면 오른쪽 짤순이가 마무리하는 2조 식이었다.

동내에 세탁기 있던 집은 우리 집 말고는 없었다.

어린 나는 어머니가 세탁기를 돌리실 때면 어김없이 구경하곤 했었다.

그런데 어머님은 세탁기가 있었지만 언제나 손빨래를 고집하셨다.

[엄마! 왜 세탁기 안 써?] [초벌은 손빨래해야 하는 거야] [초벌? 그게 뭐야?] [응 처음에 하는 거 세탁기에 돌리기 전에 먼저 큰 똥 덩어리 같은 걸. 제거하는 거야 그래야 빨래가 깨끗해지거든 만약 할아버지 똥이 세탁기에서 함께 돌아가면 똥물로 세탁하는 거잖아 그래서 미리 정리하는 거야] [아 ~ 그렇구나 똥물에 세탁하면 더럽지 히히히] 어린 꼬마는 마냥 웃기기만 했다.

세탁기 안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똥 덩어리를 생각하니 마냥 재미있고 웃겼다.

세탁이 다 되면 짤순이 쪽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것도 무게의 균형을 잘 맞춰야 했다.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짤순이가 도는 네네 시끄럽게 우당탕거렸기 때문에 어머님은 골고루 빨래를 정리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세탁기가 생기기 전 겨울철엔 빨래가 너무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동내 빨래터에 앉아 빨랫방망이를 쉴 새 없이 두들겨가며 빨래를 하셨는데 그때 어머님의 양 볼과 코끝에 동상이 걸려 지금까지도 빨갛게 변한 것이었다.

세탁기가 있었지만 언제나 차가운 물로 세탁하다 보니 겨울철 빨래는 힘들어하셨다.

어머님은 세탁기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깔끔히 세탁되지 않으니 늘 불만이셨다.

어머님의 전용 세탁기는 빨랫방망이다.

세탁을 다 하고서도 다시 방망이질을 한 번 더 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님은 짤순이만큼은 좋아하셨다.

짤순이가 없을 때엔 며칠씩 말려야 했지만, 짤순이가 생기고 난 후 그 시간이 조금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사방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작은 원통에 물이 축축이 묻은 빨래를 집어넣은 후 빨래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고무 뚜껑을 덮고 탈수다이얼을 돌리면 정해진 시간만큼 짤순이가 뱅글뱅글 돌아가며 빨랫감에 축축이 묻어있던 물기를 숭숭 뚫려있는 구멍으로 훌훌 날려 버린다.

돌려놓은 타이머가 제자리로 돌아오면 짤순이에 들어있던 빨래는 서둘러 빨랫줄에 자리하고 바짝 마를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세상 참 편해졌네... ] 어머님은 짤순이 속 빨래를 꺼낼 때면 새로 들어온 짤순이를 늘 신기해하시며 감탄하셨다.

더는 고무 대아에 무거운 빨래를 잔뜩 담아 빨래를 널지 않아도 되니 그것만이라도 충분히 만족해하셨다.

빨래를 널 때면 자주 어머님을 도왔는데 특히 겨울철 빨래를 널 때면 손 뜻이 아리다 못해 아팠다.

빨래를 널 때는 탈탈 털어야 펴진다는 어머님의 조언은 처음 몇 번만 적용될 뿐 몇 벌 널지도 못하고 손이 얼어 빨랫감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어머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척척 잘하셨는데 그때마다 엄마 손은 특별하다거나 어른이 되면 손이 강해질 거라 믿었었다.

[엄마! 엄마는 손 안 아파?] [응 괜찮아! 손 시리면 손 좀 녹이고 해] [예 이것만 널고요]

아버지는 3남 2년 중 넷째시다.

위로 큰고모와 큰아버지 작은 고모 가 계시고 아래로는 막내 작은아버지가 계신다.

큰고모님은 흔하지 않은 여성목사님이시다. 말만 들었을 뿐 직접 보지는 못했다.

큰고모님은 제천에 살고 계시는데 몇 번 뵌 적도 없어 서먹서먹하다. 친구들과 함께 제천 큰 고모 댁을 찾은 적 있었는데 분명 가까운 친척이었지만 왕래가 많이 없으니 서로 불편해 하룻밤도 보내지 않고 돌아왔었다.

큰 아버님은 부산에 살고 계시는데 기독교 신자이시다.

큰집에 가면 누나가 두 명 여동생이 한 명 남동생이 두 명이 있는 대식구이다.

정이 많으신 큰 아버님은 장난꾸러기이시다.

나뿐 아니라 동내에서도 정 많고 사람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들으신다.

작은 고모님은 강원도에 살고 계셨는데 미용사를 하셨지만, 내림굿을 받아 무당이 되셨으며,

작은 아버님은 인천에 살고 계셨지만, 우리 집엔 가끔 들리셨다.

아버님은 형제들과 통화를 하실 때면 늘 [서울 한번 오세요.] 하셨지만 찾아오는 형제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멀리 사시는 작은 고모님이 가끔 들리셨는데 오실 때마다 순대를 사서 오셨다.

하루는 기별도 없이 고모님이 오셨는데 언제나 그렇듯 할아버님께서 [야 이 년아 밥 줘라 배고파죽겠다. 아이고 배고파라 아니고 배고파라.] 하시는 소리에 일하고 계시던 어머님을 불러놓고 훈계를 하셨다.

[올케 우리 아버지 밥 안 주셨어요? 노인네가 밥 좀 달라는데 어떻게 나 몰라라 하고 있어요?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네 진짜] 너무 억울하셨던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시며 울컥거리는 목소리로 고충을 토로하셨지만 믿으려 하지 않으셨다.

[식사하셨어요 내가 왜 아버님을 굶겨요 고모님이야 가끔 오시니 모르시겠지만 늘 저러셔요 어떻게 형제가 그리 많은데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지 너무들 하시네요]

그간 속이 많이 상하셨는지 평소 같지 않게 속상한 마음을 드러내고 계셨다.

[뭘 잘했다고 눈물을 보여요?] [고모님은 진짜로 내가 아버님 굶겼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배고프다고 하시잖아요, 그럼 식사를 하셨다는 분이 저 많은 순대를 다 드신다고요?]

서로 격한 언성이 오고 갔지만 정작 수습해야 할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높아진 언성을 잠재운건 할아버지였다.

[야 이 년아 밥 줘라 배고파죽겠다. 아이고 배고파라 아니고 배고파라.] 조금 전 작은 고모님이 드렸던 순대를 다 드신 할아버님께서 또다시 배고프다며 소리를 지르는 통에 그제야 고모님이 어머님에게 사과하셨다.

[어머 올케 미안해요] 고모님은 사과하셨지만, 어머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아이고 아빠 금방 드셨으면서 무슨 배가 고프다고 또 이러세요.] [야 이년아 언제 내가 밥을 먹어 배가 고파 죽을 것 같구먼] 고모가 연신 힐끗거리며 어머님의 눈치를 살폈지만, 일손이 바빴던 어머님은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잠시 후 돌아온 [어머님께서 커피 한잔 타 드릴까요? 식사는 하셨어요?] 하며 정식으로 고모님을 맞이하셨다.

[커피는 대봉이나 좋아하지 내가 어디 좋아하나?] [그런데 예는 어디 갔나?] 어색한 대화가 오고 갔지만, 아버님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버님은 저녁 늦게야 돌아오셨는데 아무래도 거래처에서 수금을 또 받지 못하신 듯 보였다.

씩씩대며 돌아오신 아버지가 고모님을 보고는 [언제 왔어?] 하며 퉁명스럽게 반겼고 고모가 살짝이 아버님을 따로 불러 조용히 타이르며 이야기를 하셨다.

[기선 엄마에게 잘해줘라 고생 만트라 일찍 일찍 좀 다니고] 하시며 오른팔을 꼬집으셨다.

[사람들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뭘 어떻게 잘해줘 고생은 저만 하나 나도 힘들어] 하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셨지만, 아버지는 표현이 서툴 뿐 그런 엄마가 안쓰러운 건 누구보다 아버지가 더욱 잘 알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