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양화점

# 코스母스 2화

by 서기선

# 잉글랜드 양화점


우리 집은 양화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생산에서 도매까지 하였는데 월곡동에서 미아리를 지나 돈암동까지 우리 집 신발을 취급하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규모도 컸다.

생산직 직원도 몇 있었는데 대부분 교도소에서 나와 교화 중인 범죄자들이었다.

아버님의 개끼 때문인지 아니면 교화 중인 사람들의 인건비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집엔 그런 형들이 많았다.

대부분 절도하고 소매치기가 많았는데 개중엔 살인자도 있었다.

용복이 형은 전직 소매치기였는데 갸름한 얼굴에 눈썹이 짙고 눈은 아주 작았다.

아버님은 용복이 형에게 와이셔츠 단춧구멍이라고 불렀다.

눈이 너무 작아 꼭 와이셔츠 단춧구멍 만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있어다.

용복이 형은 말이 많았지만 웃는 모습이 너무 해맑아 웃고 있는 모습만 봐도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용복이형하고 비슷한 또래 형 중에는 용식이 형도 있었다.

용식이 형은 통통 보다는 뚱뚱 쪽 같았는데 그렇다고 너무 뚱뚱하지도 않은 체구였는데 체구에 비해 춤을 아주 잘 췄다.

춤출 때 양손의 움직임이 마치 고무줄을 늘이는듯한 동작을 자주 해서 아버님이 고무줄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셨다.

이 형들 말고도 뒷주머니에 항상 도끼빛을 꽂고 다니는 도끼빛 형이랑 평소 말이 없는 나이 든 형은 노인네라고 불렀다.

노인네 형은 아버지보다 어렸지만 생김이 늙어 보여 붙여진 별명이었고 노인네형은 살인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너무 조용하고 말수가 없어서 존재감은 없었지만 개중에 나에게 자장 잘해주는 형이었다.


고모가 다시 강원도로 내려가기 전 아버지에게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길게 내쉬며 물었다, [넌 왜 제들을 고용했니?]

고모의 물음에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제들에게도 기회란 걸 줘야지 그리고 제들 꼼꼼하고 일도 잘해] [넌 무섭지도 않니?]

아버지는 걱정하는 고모의 얼굴을 잠시 보시더니 너털웃음을 지으시며 한참을 웃다가 이야기하셨다.

[내가 왜 제들을 무서워해 아마 제들이 날 더 무서워할걸 누나는 내가 누군지 몰라?]

[그놈의 허세는] [허세라고!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알았다 알았어]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가 형들이 사회에 나와 적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아버지 말씀처럼 형들은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정확히 일을 하고 있어서 불량도 거의 나오지 않았고 그런 상품성 때문에 우리 양화점은 소매점들에게 인기 있는 거래처였다.

구두를 만들기 위해한 절차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새로 들어온 가죽이 있으면 가죽 거래처에서 한 트럭씩 가죽을 사들이는데 그렇게 사들인 가죽들은 구두를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먼저 가죽을 넓게 펴고 다시 말리지 않도록 양쪽에 못질을 한 뒤 도안지를 올리고 완성되지 않은 구두의 조각들을 그리는데 이건 엄마가 담당하셨다.

넓고 가느다란 초크를 이용해 가죽에 도안을 그리고 나면 아버지는 어머니가 그려주신 도안대로 잘라낸 후 같은 것 끼로 모아둔다.

그러면 다시 용복이 형과 용식이 형이 조각들을 서로 붙이는 작업을 했는데 코바늘과 나일론 끈을 이용해 조각들을 하나의 큰 형태로 만들었다.

도끼빛 형이랑 노인네형은 주로 신발밑창을 만들었는데 기성품이 있었지만 맞춤상품은 크기별로 일일이 칼질해 가며 크기조절을 하였고 마지막단계인 신발밑창을 붙일 때면 본드를 이용해 초벌 접착을 한 뒤 프레스로 압착을 하고 밑창과 가죽을 코바늘로 꿰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공정하나하나가 기계처럼 맞아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춤추는 듯했고 신비로왔으며 경이롭기까지 했다.

우리 양화점은 도매를 전문으로 하고 있었지만 가끔씩 들리는 동내분들의 권유로 맞춤식 소매도 간혹 하였다.

특히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이 되면 신발을 맞추기 위해 찾아오시는 손님이 부쩍 많았다.

맞춤신발은 가공되어 만들어지는데 최소 2~3일은 걸려야 했지만 사전에 주문하지 못한 어른들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납품용 신발을 사가기도 했다.

추석이 몇 시간 남지 않은 늦은 저녁이었다.

몇 분의 어른들이 들어와서 신발을 만들어달라고 하셨지만 본인들도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는듯 머리를 극적 거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던져보았고 돌아올 답변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우격다짐으로 납품을 위해 쌓아둔 신발을 달라며 때를 써댔다.

그분들을 시작으로 통금전까지 판매하기 시작한 신발이 99켤레가 되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된 이상 100켤레를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가계에서 잠을 자야 하는 노인네형의 피곤함을 누구보다 잘하시는 아버지는 자신의 욕심을 접으셨다.

명절이 되면 대부분의 형들은 고향에 내려가거나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양화점을 나선다 하지만 노인네 형만은 언제나 가계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형을 위해 아버님은 명절에도 양화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럴 때면 언제나 막걸리 신부름을 시키시곤 하셨다.

나는 막걸리 신부름이 너무너무 싫었다.

주전자에 막걸리 한 되 받아오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막걸리와 함께 곤계란을 사가지고 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곤계란을 몰랐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실물을 확인한 후엔 너무너무 징그럽고 그런 걸 먹는 아버지나 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곤계란이란 아직 부화하지 못한 어린 병아리를 이야기하는데 걷 모습은 일반계란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껍질을 벗기는 순간 알 속에서 움츠려있는 형태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 병아리를 말한다.

곤계란집에서 막걸리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가마솥만큼이나 큰 솥에 곤계란을 넣고 계란 삶듯이 삶아낸 삶은 계란과 같은 모습을 한 계란이었다.

특위의 냄새가 콤콤 하면서 삼계탕냄새 같기도 했으며 가계 안에서 계란을 찌다 보니 가계 안은 언제나 눅눅하고 습기가 많아 찝찝했다.

가계에 들어서면 서둘러 막걸리만 한 되 받아서 도망치듯 벗어나려 했지만 아저씨는 양화점 아들 이라며 곤계란 몇 알을 함께 주셨고 나는 그건 것이 너무너무 싫었다.

곤계란을 드시는 아버님이나 형의 모습은 마치 야만인 같아 보여 심부름 후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양화점문을 닫는 건 언제나 노인네형의 몫이었다.

나무로 만든 틀에 회색철판으로 마무리한 쑈윈도 가림막을 순서대로 밀어 넣어야 한다.

회색철판에는 빨간색 페인트로 1,2,3,4의 번화가 있었고 재일 오른쪽부터 4,3,2,1 순으로 문을 닫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뒤틀린 틈 사이로 쇼윈도가 보여 혹시 돌이라도 맞으면 유리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철판을 번쩍번쩍 들어오리는 노인네형은 철판문을 닫은 후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교화 중인 형들과 생활하다 보니 우리 가계에는 경찰관아저씨들도 자주 들락거렸다.

주위에 범죄라도 생기면 언제나 우리 집 형들의 근항을 묻기 위해 오셨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훌륭한 알리바이가 되어주셨다.

점심식사 후 모두 모여 잡담을 하며 소화시키고 있었는데 자그마한 체구에 날렵해 보이는 형사님께서 가계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익숙한 2층의 나무계단을 빠르게 올라오신 형사님께서 한참 무르익은 농담들 사이를 비집고 건조한 질문 몇 가지를 하셨다.


[어제 점심때쯤 어디 있었어?] [어디 있긴요 일 하고 있었지요] [확실해?] [사장님에게 물어보세요] [맞아요 계속 함께 일하고 있었어요.] [이 녀석들 잘하고 있습니까?] [예 그럼요 열심히 하고 있어요 착해요 예들 열심히 안 하면 내가 가만있겠습니까] [하긴 사장님 무서워서라도 사고 치기 힘들긴 하겠네요] [하하하 그럼요] [그래도 모르니 언제나 주의하세요] [예 걱정하지 마세요, 또 무슨 사고라도 났나요?] [자주 있는 일 이잖아요]


자주 있는 일이라 아버님은 형사들의 방문에도 그다지 마음을 두지 않았지만 형들은 달랐다.

자신들이 의심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나빠했고 그렇게 형사님이 다녀갈 때면 그날은 하루종일 어두운 침묵 속에 본드칠 하는 소리와 구두 골격에 못질하는 소리만이 2층 작업장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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