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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May 13. 2024

시간을 파는 편의점(시즌1 최종화)

에피소드 9-2

내가 시간을 구입했던 건 처음부터 할머니를 살리고 싶다는 목적보다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엄마의 모습이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우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 엄마의 슬픔이 마치 나의 슬픔처럼 느껴졌고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엄마의 흐느낌과 통곡 그리고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하나하나가 각인되는 듯했으며, 그런 엄마의 모습이 홀로 내팽개쳐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내가 엄마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가 엄마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이 기쁘기도 했다. 

3년 전 내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엄마가 웃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시간을 엄마에게 선물한다면 분명 엄마가 할머니를 살리실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시 행복해지겠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라이더 아저씨가 도착 전 알림을 주었기 때문에 곧 시간 배달이 된다는 것을 알았던 나는 서둘러 장례식장 엘리베이터 쪽에서 아저씨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정작 아저씨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비상계단으로 올라오셨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내가 있던 4층에 멈췄기 때문에 당연히 그곳에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막상 4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는 장례식장 관계자 말고는 아무도 타지 않았었다. 

나를 먼저 발견한 것은 라이더 아저씨였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나에게 다가선 아저씨가 "네가 준호니?"하고 물었고 나는 "예"하며 벌떡 일어섰다. 

"아직 사연이 접수되지 않았던데 혹시 무슨 사연인지 이야기해 주겠어요?" 아저씨가 존댓말로 물었다. 

어른에게 존댓말을 듣는다는 것이 낯설긴 했지만 나쁘진 않았다.

"그건 제가 사용할 시간이 아니에요. 엄마에게 줄 거예요." 갑자기 목이 매이고 눈물이 쏟아져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어!~ 울지 말아요!, 남들이 보면 오해한다고요. 일단 엄마부터 만나보자, 어머니는 어디 계세요?" 갑작스러운 나의 눈물에 당황한 아저씨가 물었다.




라이더 아저씨가 내가 구입한 시간은 양도할 수 없다고 어머니에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경우든 본인이 구입한 시간은 본인이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었지만 마치 내가 잘못 구입해서 생겨난 실수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준호야! 엄마 생각엔 말이야 네가 이 시간을 네가 사고 나기 이전으로 돌아가 사고를 막는 데 사용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할머니를 살릴 수 없는걸요." 

"알아! 엄마를 위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거 엄마도 잘 알아! 하지만 이건 네 시간이야 굳이 엄마를 위해 사용하기보다는 너의 미래를 위해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러지 말고 사고 전으로 쓰는 걸로 하자! 응!" 

"아니에요. 엄마! 나는 아무렇지 않아요. 불편하긴 해도 참을만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엄마가 슬퍼하는 것이 싫어요."

"고마워! 그런데 말이야. 네가 그런 선택을 한다 해도 엄마는 똑같이 슬플 거야." 

"왜요? 할머니가 살아났는데 그러면 좋은 거 아닌가요?" 

"맞아! 하지만! 그건 잠깐이야. 사람은 누구나 죽어 엄마가 슬퍼하는 건 아쉬움과 미련 때문이야. 자식의 미래를 내 아쉬운 마음과 미련을 해소하기 위해 바꾸려는 부모는 없어!" 

"하지만…."

"잘 생각해 봐! 네가 만약 할머니를 되살렸다고 하자! 과연 할머니가 고마워하실까? 조금 더 살기 위해 사랑하는 손자가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건 엄마도 할머니도 바라는 바가 아니야."




내가 시간 상자를 열기 위해 봉인을 해제했을 때 안쪽에서 하얀 연기가 스멀거리더니 이 네 상자를 열었을 땐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엄마에게 다가설 때 엄마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지만, 이전과는 다른 눈물이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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