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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May 08. 2024

시간을 파는 편의점(9화)

마지막 통화

정음은 차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웃고 있었다. 

모처럼의 나들이에 남편과 아이들도 즐거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뒷좌석에 앉은 아들 준호와 딸 주어서의 해맑은 미소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사실 3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날이 오리란 걸 그조차도 믿지 못했다. 

준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과속으로 달려오던 차에 치이는 사고가 있었고 그 사고 때문에 양쪽 다리의 길이가 달라 장애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 사고로 준호가 마음마저 다쳐 한동안 웃음기 없는 삶을 살았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 준호 역시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였고 이후의 삶에도 변화가 생겨나 오늘날 이렇게 밝게 웃으며 나들이 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정음은 이런 행복을 주심에 감사했다. 

"얘들아~ 휴게실에서 뭐든 먹고 가자! 엄마, 아빠 커피도 한잔 마시고" , "예!" 3시간째 운전 중인 남편이 피곤했는지 휴게실에 차를 세우며 물었다. 

"당신 무슨 걱정 있어? 아까부터 낯빛이…. 왜? 무슨 일인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별일 아니야." 즐거운 분위기를 망칠까 애써 남편의 관심을 물리며 말했다. 

"왜? 뭔데? 혹시 장모님 때문이야?" 남편이 내 쪽으로 바짝 다가서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아까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엄마하고 통화했었거든 그런데 목소리에 힘이 없으시더라고 그래서 그래 별일 아닐 거야 신경 쓰지 마!" 내 쪽으로 바짝 다가선 남편의 얼굴을 밀어내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정음이가 그랬어! 그래서 그렇게 침울했구먼!" 남편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지 마! 내가 애도 아니고 왜! 자꾸만 머리를 쓰다듬어! 드라이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눈을 흘기며 말했다. 

"하하하 미안해! 오늘 모처럼 나왔으니, 오늘은 걱정 잠시 내려놓고 내일 아침 일찍 어머니에게 가자! 어머님도 손자, 손녀 보시면 좋아하실 거야! 됐지?" 

"알았어!" 남편의 웃는 모습 뒤로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자,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나직이 말했다.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는데?" , "몰라 딱히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 준비하느라 바빠서 나중에 다시 전화한다고 했는데 아직 못했어! 나중에 전화해 보지 뭐!" 정음은 어머니의 기운 없는 목소리가 신경 쓰였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피곤해서 그러는가 보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엄마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보, 우리 어디서 점심 먹을까?" 동해에 도착한 남편이 잠들어있던 나를 흔들어 깨우며 물었다. 

"어! 도착했어? 얘들아, 일어나 도착했다." 남편이 물었지만, 아이들을 먼저 깨우느라 답하지 못했다. 

"어떤 걸 먹고 싶냐고? 얘들아! 우리 뭐 먹을까?" 내 대답을 기다리던 남편이 또다시 같은 질문을 했지만, 이번엔 대상을 확장해 아이들을 포함시켰다

"난 아직 배 안 고픈데…. 우리 바닷가 좀 걷다가 괜찮은 곳 있으면 들어가자" 남편이 물었지만, 아이들에게 먼저 의견을 물었다. 

"좋아요!" , "준호는 힘들지 않겠어?" 표현하진 않지만, 이런 질문을 할 때면 늘 조심스럽다. 

혹시 준호가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나도 바다 보고 싶었어요." 준호가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바닷가 주변 산책로 쪽으로 공영주차장이 있어 모래사장까지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고 설사 멀다고 한들 걷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거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좁은 차 안에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몸이 찌뿌둥했었던 나는 차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제야 살겠다는 듯 기지개를 켜며 온몸의 관절을 쭉 늘어뜨렸다.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으아아~" 하고 신음했다. 

"아, 이제 좀 괜찮아지네, " 차에서 내린 내가 허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그때 아이들이 달려와 내 양팔을 잡아끌며" 엄마 우리 저기 가보자"하고 말했다. 

준서의 손끝에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노란색 건물이 올라앉아 있었다. 

"그래!" 말이 체 입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이미 준호는 걸음을 옮겼고 그 뒤로 준서와 나 그리고 남편이 뒤따랐다. 

"오빠! 같이 가~"준서가 당장이라도 준호를 따라갈 기세로 부르고 있었지만 내 팔은 놓지 않았다. 

옅은 어둠이 깔려서일까? 불빛이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준서의 손에 이끌려 노란색 건물로 들어설 때 손가방 안쪽에서 작은 울림을 느꼈다. 

"준서야 잠깐만 엄마 전화 왔나 봐!" 절대 늦지 않을 것처럼 잡고 있던 내 손을 그제야 내어주던 준서의 손에서 축축한 땀이 흘렀지만 싫지 않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이윤경 님 보호자분 이시지요?, 여기 신라병원입니다." 순간, 정음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예…. 무슨 일이시지요?" 

"이윤경 님이 위급한 상태라 연락드렸습니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여인의 말에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으며, 의식도 흐려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눈물이 흐르라기 시작했다. 

"아빠! 엄마 울어"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당황한 준서가 남편을 불러들였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정음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엄마…. 미안해…. 미안해요."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과 마지막 통화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말했던 그 목소리, 그리고 자신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순간이 마음이 걸려 괴로웠다. 정음은 엄마의 손을 잡고 울었다. 

"엄마, 죄송해요…. 이럴 줄 알았다면…. 제발 한 번만 더 말을 걸어 줬으면…."

죄책감과 후회, 그리고 슬픔이 정음의 마음을 짓눌렀다. 누군가 사람이 죽으면 그녀는 그동안 엄마에게 소홀했던 것들을 되새기며, 이제는 바로잡을 수 없는 현실에 절망했다. 

"엄마, 내가 더 잘할게요. 진짜로…. 다시 돌아와 주세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아들 준호가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엄마! 이거! 내가 신청했어!" 준호가 내민 휴대전화에는 '시간 구입을 완료하였습니다'라는 문구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뭐야?" , "이거! 엄마 가져 내가 생각해 봤는데 할머니가 다시 살았으면 좋겠어!" 

준호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할머니가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공감하며 또다시 눈물이 났다.

장례 절차를 위해 남편과 의논하고 있을 때였다. 

복도 끝에서 우리 쪽으로 두리번거리며 걸어오는 검은 복장의 라이더가 남편의 등 뒤로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라이더가 준호와 무언가 이야기를 하더니 우리 쪽으로 걸어왔고 우리는 아직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전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틀림없이 조문객은 아닐 것이라 확신했다. 

"누구세요?" , "편의점에서 왔습니다. 아드님이 시간을 구입하셨거든요." 

"시간이요?" 사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내가 다시 한번 반문했다. 

"예! 그런데 아드님이 엄마에게 드리고 싶다고 하셔서요." 

"준호야! 이게 무슨 말이야? 시간이 뭐야? 뭘 샀다는 거야?" 

"역시 모르고 계셨군요. 저는 시간을 파는 편의점에서 왔습니다. 아드님이 1시간 전 시간 구입신청을 해 주셨는데 사연 접수가 안 됐거든요. 보통은 배달 전 전화 통화를 먼저 하는데 배달 주소와 이름만 있고 연락처가 없어서 현장 접수 도와드려도 합니다." 준호에게 물었지만 사내가 답을 했고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시계를 구입했다고요? 얼마예요? 보시다시피 상황이 이런지라 길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시계를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시계값을 치르기 위해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내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시계가 아니라 시간입니다. 그리고 사연이 접수돼야 가격이 정해지는데 아직 사연이 접수되지 않아 가격이 없어요. 과거의 시간을 구입하실지 미래의 시간을 구입하실지 먼저 정하시고 돌아가고 싶은 시간과 무슨 이유로 그때를 원하시는지까지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그렇다면 진짜 과거의 시간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말씀 중에 과거의 시간을 선택하신 거 같은데…. 그렇다면 날짜와 시간은 언제로 정할까요? 아! 그리고 보니 신청인이 아드님이네요. 그렇다면 아드님께서 가셔야 합니다. 양도는 안 되거든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준호의 말처럼 어머니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준호가 사고 나기 전으로 돌아가 사고를 막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머리가 복잡해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늦가을 바람이 은행나무 잎을, 하나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힘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이 마치 엄마의 마지막 모습 같아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언제까지 슬퍼하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쪽이든 당장 결정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양도할 수 없다던 라이더의 말이 생각난 정음의 눈빛이 사방으로 빠르게 떨리다 멈췄다. 

"나는 엄마야! 이건 처음부터 고민할 것이 못 돼서 그래! 다리를 고치자! 엄마도 이해하실 거야!" 준호의 다리를 고쳐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멈추자, 이후에 드는 생각들을 설득하게 되었고 결국 어머니의 죽음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제 생각을 합리화해 버렸다. 

하지만 선택은 준호의 몫이라 그녀는 서둘러 준호를 설득해야만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두 갈래 길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또다시 갈등하는 자신이 미웠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엄마, 미안해요…." 정음의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라도 나를 위해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그렇지 엄마!"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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