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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Apr 24. 2024

시간을 파는 편의점(7화)

반려견의 죽음

"확답을 드릴 순 없지만 길어야 1년 물론 그 이상일 수도 이하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지금의 진행 속도로 예측해 보면 길어야 1년 정도로 생각하시는 것이…."그가 뒷말을 잊지 못해 마지막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굳이 듣지 않아도 어떤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내게서 멀어진 눈물이 바닥을 적시고 있을 때 의사 선생님이 책상 모서리에 있던 각 티슈에서 휴지 2장을 뽑아 건네며 "괜찮으세요?" 하고 물었다. 

지금이 상황에 어울릴 만한 물음은 틀림없이 아니었지만, 당신의 물음은 적절치 않다고 따지지 않았다. 

평소 사소한 말실수에도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성격이었던 나였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실 '당신이라면 괜찮겠어요?'하고 따지고 싶었지만, 의미 없는 말장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죽는다.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이니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죽는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지만 살아남은 자의 미련 때문에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선생님! 방법이 전혀 없나요?" 나의 물음은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죄송합니다.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양손의 비닐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조금 일찍 알았다면 더 오래 살 수도 있었나요?"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이었고 이미 정해진 답 일 테지만 나의 무지를 자책이라도 할 마으로 물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은 내가 생각했던 것 과는 사뭇 달랐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설령 조금 더 일찍 알았다 한들 크게 달라질 것도 없을 거예요. 워낙 고령이라. 사람 나이로 대략 90은 넘을 거거든요."

선생님의 단호한 답변에 할 말을 잃어 한동안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꼬마 이 녀석도 보호자님께서 슬퍼하면 싫어할 겁니다. 그나저나 꼬마 이 녀석 참 고맙고 행복했겠어요. 이런 죽음 흔치 않거든요." 선생님이 뒤쪽 케이지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시선이 머문 곳에 힘없이 누워있는 꼬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취 상태의 꼬마가 배에 흰 천을 휘감고 늘어진 채 잠들어 있었는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 안쓰럽고 미안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그 작은 몸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수술이라는 큰일을 견뎌낸 우리 꼬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눈물이 일렁거려 앞을 가렸다. 

하지만 그런 모습 속에서도 조용히 숨을 쉬는 녀석의 모습이 어쩐지 평화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일주일 정도 회복 기간을 보내고 퇴원하시면 되겠어요." 게이지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시선이 내 쪽으로 빠르게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예 선생님! 그러면 우리 꼬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전히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꼬마를 뒤로하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늘 함께 걷던 거리를 홀로 걸으려니 꼬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녀석의 빈자리는 집에 도착하는 순간 한층 크게 느껴졌다. 

내 발소리를 알고 있던 꼬마는 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낑낑거리며 보이지도 않는 나를 향해 연신 꼬리를 흔들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내가 머리라도 쓰다듬으려 다가서면 발라당 넘어져 자신의 배를 드러내고 누워있던 녀석의 얼굴이 지금, 이 순간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화장실 옆 녀석이 머물던 빈 케이지가 오늘따라 쓸쓸해 보였다. 

소파에 널브러져 반쯤 넘어진 상태로 있을 때 소파 밑에서 내 쪽으로 꼬리를 흔들며 낮은 포복으로 다가오던 녀석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동영상 촬영을 했던 것이 생각나 핸드폰을 열어 갤러리에 있던 녀석과의 추억을 더듬고 있을 때였다. 

메일로 저장했던 사진이 생각나 접속을 시도하던 중 알 수 없는 팝업창이 시선을 끌었다.

'시간을 파는 편의점'이라는 상호의 팝업창이었는데 상호뿐 아니라 그들을 소개하는 짧은 카피가 눈을 사로잡았다. 

내가 그것에 홀려 잠시 꼬마와의 추억을 잊어갈 때쯤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려는 순간 신청이라는 빨간색 팝업이 먼저 화면을 덮고 있어 나도 모르게 신청 버튼을 클릭하였고 그것을 클릭하고 나서야 비로소 걸려 온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조금 전에 다녀가셨던 멍뭉이 동물병원입니다. 꼬마 보호자 전소민 님 맞나요?" "예 맞는데요. 무슨 일인가요?" , "죄송한데 조금 전 꼬마가 죽었습니다." 

"예!!! 뭐라고요? 조금 전엔 1년쯤 살 수 있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수술도 잘 됐다고 하셨는데…. 왜?" 너무 놀라 심장이 터질 것 같아 호흡 조절이 되지 않아 흥분상태를 유지하며 물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갑자기 쇼크가 오더니 그렇게 됐습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 1년은 함께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한 나로선 갑작스러운 꼬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더욱이 녀석이 퇴원하면 그간 소홀했기에 녀석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다짐했던 터라 충격이 더했다. 

내가 녀석을 만난 건 13살 때이다.

그때부터 16년을 함께 살았으니, 녀석은 내 동생이자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독립을 선언하고 집을 나왔을 때도 늘 내 곁에 남아있던 꼬마는 어떤 친구와도 바꿀 수 없는 가족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거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나의 분신과도 같았던 꼬마가 조금 전 생을 다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으니, 그때부터 나는 내 정신이 아닌 듯했다. 

판단력도 잃고 손발이 떨리기만 했으며 흐르는 눈물 말고는 달리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다 가까스로 생각난 게 엄마였다. 

꼬마가 수술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엄마와 가끔 통화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 꼬마가 죽었데. 이제 어떻게 해…. 엄마 나 어떻게 해…. 엉엉" 처음의 흐느낌이 통곡이 되어 하늘을 울릴 때 수화기 속 엄마가 말했다. 

"소민아! 엄마가 갈 테니 집에 있어 알았지! 집에 있어라.!" , "응 엄마, 빨리 와" 엄마와 통화를 마치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려 할 때 또다시 벨이 울렸다. 

어디선가 본 듯한 연락처였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편의점입니다. 전 소민 씨 맞나요?" 

"예 그런데요." , "시간 구입 신청하셨잖아요! 과거와 미래 어느 쪽을 희망하시나요?" 설마 했던 편의점의 전화에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미래의 시간으로 생을 연장할 것인가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꼬마의 곁을 지킬 것인가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굳이 가까운 시간을 양손에 들고 저울질했던 건 의사 선생님의 말 때문이었다. 

병이 없었다 한들 남은 생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고령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 말이다.

"미래요" , "죄송하지만 왜? 그런 선택을 하셨나요?" 

"꼬마에게 생을 정리할 시간을 주고 싶어요." , "훨씬 이전으로 돌아가시면 더 많은 기회가 있을 텐데 굳이 가까운 미래를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우리 꼬마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해할 것 없는 고령이에요. 병을 고치기 위해 오래전으로 돌아가면 나와 녀석의 추억도 사라지잖아요. 무엇보다 꼬마의 마지막이 케이지가 아닌 내 곁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나는 미래의 시간을 선택했고 꼬마에게 2시간을 선물하였지만 정작 위로받은 것은 나였다. 

서둘러 꼬마에게 달려가 녀석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꼬마야, 고마웠어. 이젠 편히 쉬렴. 잘 자~ 그리고 안녕!" 잠들어 있는 꼬마의 목덜미를 손끝으로 가볍게 긁으며 잘 자라는 인사과 함께 안녕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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