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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May 01. 2024

시간을 파는 편의점(8화)

미래로의 짧은 여행

13층에 위치한 석준의 사무실은 외부 엘리베이터와 연결되어 문이 열림과 동시에 사무실 로비로 연결되는 조금은 특이한 방식이다. 

사무실 이전 당시 13층 전체를 구입한 그가 불필요한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특별히 주문한 설계였기 때문이다.

이동시간마저 허투루 쓰지 않을 만큼 그는 자기 일에 진심인 사업가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왼쪽 끝에 있는 그의 집무엔 벌써 일주일째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오랜 시간 준비했던 글로벌 론칭을 앞두고 있었기에 그가 검토해야 할 분석자료와 결제 전 확인해야 할 서류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직원들이 자신을 일에 미쳐 사는 사람이라고 수군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의 집무실은 심플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책상 위에 쌓인 서류와 보고서 때문에 어수선해 보였다. 

큼지막한 창문을 통해 아침햇살이 스며들어 그의 집무실을 따스함으로 물들기 시작했지만, 석준은 피곤함에 지쳐 의자에 앉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사무실은 고층 건물의 상위층에 자리 잡고 있어, 창밖으로 탁 트인 도시의 전경이 내다보였다. 

거리에서는 바쁘게 움직이는 차량과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미니어처처럼 보였다. 

아침햇살이 집무실로 스멀스멀 자리 잡고 있을 때 집무실 문이 열리며 푸른 정장 차림에 짧은 단발의 지아가 들어서며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늘도 댁에 안 들어가셨어요?" 지아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석준이 양팔을 벌려 기지개를 켜며 그녀를 맞았다. 

"아, 지아 씨 반가워요~" 불편한 자세로 졸았던 탓에 목이 아팠는지 목덜미를 주무르며 말했다. 

"사장님 커피 한 잔 드릴까요?" , "좋지요! 지아 씨도 함께 마십시다." 

"아니에요. 저는 이미 한잔했어요. 그나저나 피곤하셔서 어떻게 해요!" , " 하하하 고마워요. 이번 일 마무리하면 가족들하고 여행이라도 가야겠어요. 멋쩍은 듯 애써 웃어 보이며 말했다. 

"예! 꼭! 그렇게 하세요. 사모님도 바라실 거예요." 방금 탄 커피를 내밀며 말했다.

커피를 받아 든 석준이 테이블에 있던 서류뭉치 중 까만색 표지에 결제함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가져와 읽기 시작했다. 

그는 밝은 회색 정장 바지에 흰색 드레스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등 뒤에서 비치는 햇살 때문에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그가 결재 서류를 넘길 때 삽시간에 무거운 공기가 발아래로 흐르는 듯했다. 

집중하는 그의 모습 때문에 지아는 어떤 말도 건네지 못한 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컴퓨터 전원을 컴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굳어있는 석준의 얼굴에서 무거운 책임감과 결정의 무게가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지만, 그녀는 지켜볼 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채 그가 별도의 업무지시를 내려주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석준이 책상에 앉아 한 장 한 장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고 있을 때 무거운 공기를 뚫고 전화벨이 울렸다. 

"응! 미안해 여보! 오늘도 안 되겠어. 내일은 꼭! 들어갈게, 걱정하지 마! 갈아입을 옷 있어! 알았어! 내일 봐!" 전화를 끊은 석준이 '후~'하고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고 그 모습에 지아가 물었다. 

"사장님! 일도 중요하지만, 가정이 먼저 아닌가요? 저 같으면 사장님 같은 사람 싫을 텐데…. 사모님도 대단하시다. 사모님에게 잘하세요." 

"하하하! 고마워요!" 고맙다는 말로 짧게 인사했지만, 그도 느끼고 있었다. 

글로벌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소원해졌든 관계를 몸소 느끼고 있었기에 딱히 반박할 수도 없어 그저 쓴웃음만 보였다. 

그때 문득 이번 일이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불길한 생각이 잠시 스쳤다. 

불길한 생각을 날려버리기 위해 머리를 좌우로 빠르게 흔들던 석준이 다시 결재 서류로 시선을 옮겼고 또다시 사무실 공기가 무거워졌다. 

결재 서류검토를 마친 그가 이번엔 경쟁사 동향 및 시장분석 보고서라고 적힌 문서를 집어 들었고 그 시각 지아는 해외 사업팀에게 받은 메일을 읽고 있었다.

"사장님! 메일 확인 하셔야겠는데요." 지아가 조금 전 받은 메일을 석준의 모니터로 띄워 보이며 말했다. 

"휴~ 쉬운 일이 없구먼" 한숨을 크게 내쉬던 석준이 이미 식어버린 커피잔을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어쩌지요?" 지아가 물었다. 

"어쩌긴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머물기엔 너무 많이 와 버렸어! 이렇게 된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야겠지!"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큰 거 아닌가요?" , "하하하! 지아 씨 이제 어엿한 기업인 다 됐네.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나와 함께한 지 얼마나 됐지요?" 석준이 웃으며 물었다. 

"입사하고 결혼했으니까 올해 13년 차네요" 지아가 밝게 웃어 보이며 답했다. 

"와~ 벌써 그렇게 됐나…. 이젠 제법 대화가 되네요." , "감사합니다." 지아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인사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모니터에 팝업창 하나가 떠올랐다. 

"시간을 파는 편의점? 저건 또 뭐지?" 팝업창을 먼저 확인한 석준이 혼잣말로 나직이 말했다. 

"어머! 상호가 재미있네요." 지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꽤 그럴듯하네…. 아무튼 요즘 재미있는 상호가 참 많네요." 석준이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은 진짜 시간을 살 수 있다면 언제의 시간을 구입하고 싶으세요?" 지아가 물었다. 

"글쎄요! 지금 생각으로는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지 실패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니 미래로 가보고 싶네요. 하하하!" 석준이 웃으며 말했다….

"저 사장님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지아가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서둘러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아! 예 그러세요." 그녀가 나가고 난 후 석준은 편의점의 광고를 꼼꼼히 읽다 자신도 모르게 신청 버튼을 눌렀고 잠시 후 편의점 측에서 전화를 받아 반신반의했던 미래의 시간을 구입하겠다고 했다.




"이게 진짜 미래로 가는 시간 상자란 말인가요?" 석준이 라이더에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르게 미래의 시간은 확인하는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과거의 사건을 바꾸게 되면 미래에 지장을 주지만 미래의 시간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미래의 자신에게 빙의되어 구입하셨던 시간만큼 머물다 오는 것이지요." 라이더가 헬멧을 벗으며 말했다. 

"그 말인즉 미래의 나에게 영향을 주면 미래의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군요. 재미있네요. 그럼, 비용은…." 석준이  말을 흐리며 물었다. 

"어차피 선불이라고 하면 사기라고 생각하실 것 아닙니까! 그러니 다녀오시면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구입하신 시간도 1시간짜리라 커피 한잔 마시고 나면 오실 테니 오시면 주세요." 

"그러면 진짜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라이더의 당당한 태도에 석준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라이더가 석준에게 믿지 못하겠다면 상자를 열어보라고 손짓하며 뒤로 물러섰다.




"하~ 말도 안 돼" 석준이 미래의 모습을 보고 온 후 식은 탐을 흘리며 말했다. 

"왜? 뭐가 잘못됐나요?" 라이더가 물었다. 

"아닙니다. 사업은 성공했어요. 다만…." 그가 말을 잊지 못하고 깊은 상념에 잠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본 미래의 모습은 성공적인 사업가로 화려했지만, 가장 중요한 가족과의 관계는 파괴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의 이혼과 자녀들과의 소원한 관계는 그에게 큰 충격이었고 말할 수 없는 속앓이였기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뭘 보고 오셨건 그것은 당신의 미래가 맞습니다. 이제 그 미래를 향해 전진하실지 아니면 우회하실지는 당신의 몫입니다. 

당신의 현명한 선택을 응원하겠습니다. 라이더가 석준의 어깨를 가볍게 건들며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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