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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Apr 22. 2024

시간을 파는 편의점(6화)

부모

왼쪽 볼에 작은 하트 모양의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오른쪽 손등에 작고 예쁜 고추잠자리를 보디 페인팅한 5살 소이가 엄마 손에 이끌려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거리엔 무섭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더러는 짓궂은 가면을 쓴 젊은이들이 즐비했다. 

그들에 비하면 얼굴에 작은 하트나 손등의 잠자리가 초라해 보였지만 마음만은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소이는 왼쪽 볼에 그려진 작고 귀여운 하트가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엄마 팔을 잡아당기며, '예뻐?' 하며 물었다. 

"응 예뻐" 소이의 성아에 잠시 뒤를 돌아보던 엄마가 조금은 성의 없는 답변을 하였지만 아이가 귀찮거나 싫어서라기보다 서둘러 인파 속에서 빠져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뒤쪽에서 "소이야~, 여보~"하며 머리에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반쪽짜리 가면을 머리 위로 올려놓은 사내가 따라오며 소리쳤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이가 아빠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지만, 앞서가던 엄마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 후로 몇 번을 더 불러 봤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주변 소음 때문에 가뜩이나 작은 음성이 묻혔다. 

앞만 보고 걷던 지민이 좀비 분장을 하고 있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을 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혹시 소이가 놀라진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 틈에 뒤따르던 서진이 간신히 일행과 합류할 수 있었다. 

"지민아! 무슨 걸음이 그렇게 빨라!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 "어! 여보! 먼저 간 거 아니었어? 난 먼저 간 줄 알고 빨리 따라가려고 그랬는데 하하하" 지민이 미안한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때 하늘에서 '펑, 퍼 펑펑'하며 불꽃이 하늘에 새겨졌다. 분주히 움직이던 시민들이 일제히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와~!' 하는 탄성을 질렀다. 빨간색 파란색 그리고 노란색의 아름다운 불꽃이 하늘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아름다운 불꽃이 마치 하늘의 별처럼 빛났다. 

"소이야! 저것 좀 봐 너무 이쁘지?" 지민이 하늘의 불꽃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와~ 저거 봐! 저거 꽃처럼 생겼다 그렇지?" 지민이 시선을 내리깔며 서진을 향해 말했다.

그러다 서진의 곁을 힐끗거리며 서진에게 물었다. "소이 어디 있어?" , "소이? 조금 전까지 당신이 데리고 있었잖아!" 서진이 당황한 듯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야 당신 만났을 때 당신 쪽으로 간다고 손을 뿌리쳤어!" , "뭐라는 거야? 내 쪽으론 오지 않았어!" 둘은 순간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머리털이 삐죽거렸으며 하늘의 불꽃도 웅성이던 시민의 함성도 느끼지 못했다. 

서둘러 주변을 찾아보았지만, 소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소이야~, 소이야~" 둘은 누가 먼 저랄 것 없이 소리치며 찾아봤지만, 어찌 된 일인지 소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 경찰에 신고부터 합시다." 서진이 뒷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며 말했다. 

그가 실종신고를 하는 동안 지민이 사방을 돌아다니며 소이를 불렀지만, 워낙 많은 인파 속에서 아이를 찾기란 녹록지 않았다. 

지민이 서럽게 울부짖자, 서진이 지민을 꼭 끌어안았다. 




"아이가 너무 작고 사람이 많다 보니 CCTV로도 확인이 쉽지 않습니다." 검은 피부에 곱슬머리를 하고 있던 경찰이 말했다. 

"그래도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봐 주세요." 서진이 의자를 잡아당겨 경찰 쪽으로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물론 그래야지요. 근처에 CCTV가 워낙 많아서 어딘가엔 잡혔을 겁니다. 다만 워낙 방대한 양이라 오늘은 들어가서 쉬세요. 찾는 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곱슬머리 경찰이 서진을 안심시키려는 듯 고개를 까닥거리며 이야기했지만, 그의 노력에도 서진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아래턱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당신은 밥이 넘어가?" 지민이 화가 난 목소리로 서진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잔뜩 예민해져 있어 서로의 감정을 건들지 않기로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지만 번번이 그런 규칙을 깨는 건 언제나 지민이 쪽이었다. 

"소이가 어디 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당신은 밥이 넘어가냐고?"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당신 왜? 또 그래? 난들 슬프지 않겠어? 난들 소이가 걱정되지 않겠냐고?" 서진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듣기 싫어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그날 거기만 가지 않았더라면…. 흑흑!" 원망을 쏟아내던 지민이 말을 채 잊지 못하고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흐느꼈다. 

지민이 하려던 말이 어떤 말인지 이미 짐작하고 있던 서진이 더는 대꾸하지 않고 불안한 공간에서 갇혀 숨조차 편히 쉬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벌써 일주일…. 일주일이 지났잖아! 우리 소이 어떻게 해!" 불안하게 떨리는 음성이 안타까웠지만 서진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치안센터 갔다 올게"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던 서진이 힘없이 일어서며 말했다. 

"같이 가!" 서진이 나간다는 말에 지민이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아냐! 당신은 그냥 있어 얼른 다녀올 테니" 서진이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그녀와 함께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감정에 지나치게 솔직한 그녀의 성품 때문에 이번에도 실신하거나 낙담해 서럽게 울부짖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니야 나도 갈래!" 지민이 결국 고집을 꺾지 않고 물러서지 않을 각오로 단호히 맞서며 말했다. 

지민 역시 자신이 간다고 한들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고 있기엔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불길한 생각 때문에 자칫 그 마음이 자신에게 향할지 두려워 고집을 부린 것이었다. 

치안센터까진 40분 거리였다. 불과 일주일 전 소이와 함께 그 길을 달릴 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던 것들이 지금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진이 운전하는 동안 시종일관 눈물을 훔치던 지민이 출발한 지 10분이 지날 무렵부터 조용해졌다. 

잠시 힐끗거리며 보았을 때 핸드폰을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지만 예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혼잣말로 '진짜 되려나?' ,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겠다.'와 같은 말을 속삭이듯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뭐 해?" 서진이 물었다. 

"시간을 판다고 하길래 읽어봤어!"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지민이 답했다

"시간을 판다고? 무슨 시답지 않은 말을 해!" 서진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당신 눈에는 내가 하찮지? 늘~ 이런 식이었어!" 화가 난 지민이 서진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좋은 대학 나왔다고 은근히 무시하고…. 당신은 늘 ~ 그랬어!" 기분 상한 지민이 격양된 목소리로 쏘아붙이며 말했다.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언제 무시했다고 그래! 생각해 봐 시간을 판다는 게 말이 되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 내 말이 틀려?" 서진이 말했다. 

옥신각신하는 사이 시간 구입신청을 마친 지민에게 편의점 쪽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안녕하세요. 편의점입니다. 한지민 님 연락처가 맞습니까?" , "예 맞습니다." 

"기타 주의 사항은 읽어보시고 신청하신 것 맞나요?" , "예 맞아요. 그런데 진짜로 시간을 살 수 있나요?" 

"예 맞습니다. 이미 읽어보셨겠지만 2시간 이내 어디든 가능하십니다. 사연은 어떻게 되나요?" 

"그보다 금액은 얼마나 되나요?" , "읽어보신 것 맞나요? 사연을 알아야 금액이 책정됩니다." 

"어떤 사연이고 어디로 가시고자 하시나요?" 점장의 말에 순간 지민이 고민에 잠겼다. 

소이를 읽어버리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갈지 요즘 들어 부쩍 미워진 남편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갈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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