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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Apr 08. 2024

시간을 파는 편의점(4화)

사랑의 대가

가끔씩 찾아오던 통증의 간격이 제법 빨라졌다. 

그럴 때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의 고통도 밀려왔다. 

주기가 다가올수록 신경이 잔뜩 예민해졌지만, 표현하지 못했다. 

자신을 위해 편안한 잠 한번 자지 않고 곁을 지키는 남편을 생각하면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통증은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 만큼 아팠다. 

골반이 뒤틀리는듯한 아픔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남편이 자리를 비운 터라 마음껏 소리를 질렀다. 

어찌나 아프던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난소암 4기 진단을 받은 지 어느덧 3달이 지났지만, 조금의 차도도 보이지 않는다. 

하긴 의사 선생님께서 처음부터 그런 걸 기대하지 말라고 했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았던 모양이다. 

이제는 받아들일 만할 텐데…. 인간인지라 의학 드라마에서처럼 기적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 본다. 

하지만 그런 상상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미련…. 그래 이제는 그런 미련을 갖지 말자! 스스로에게 약속해 본다. 

얼마나 지켜질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어제처럼 마음을 다잡아 본다. 

고통이 잦아질 무렵 남편이 들어왔다. 

익숙하게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기 전 삐죽이 튀어나온 간이침대를 발로 툭툭 쳐 침대 밑으로 들여보낸 남편이 이불속으로 손을 쑥 넣어 내 오른손을 감싸 쥐며 물었다. 

"누가 다녀갔어?" , "당신 귀신이네! 어떻게 알았어? 조금 전 고모님 다녀가셨어!" 

"음~ 뭐 별말씀 없으셨지?" , "그렇지 뭐! 그냥 한숨만 쉬다 가셨어!" 

"오늘은 컨디션 어때? 밥은 먹었고?" , "맨날 똑같지 뭐! 아니다. 오늘은 조금 좋은 것도 같다." 

" 그래! 왜? 어떤데?" , "평소보다 주기가 줄었어! 그것보다 이제는 참을만하네! 익숙해져서인가? 하하하!"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면 나만큼이나 아파할 남편을 생각해 애써 거짓말을 했다.

"오늘은 집에 가서 쉬어 당신 옷도 갈아입어야겠더라. 냄새나! 사람들이 뭐라고 안 해?" 

"아니 별말 없던데 냄새 많이나? 이상하다 어제 갈아입은 옷인데…."의아해하는 남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지만 참았다. 

이곳에 오고 난 후 하루도 편히 잠을 자지 못하는 남편에게 어떻게든 편안한 잠자리를 주고 싶어 거짓말을 했지만, 매번 나의 거짓말은 10분도 지나지 않아 들키고 만다. 

통증을 목격하거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간호사에게 물어보는 철저한 성격이라 도무지 거짓말이 통하지 않았다. 

손을 잡고 있던 남편이 이번엔 내 다리 쪽으로 자리를 옮겨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팔다리에 부종이 생겨 힘들어했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처음 부종이 생기던 날 남편이 너무 놀라 의사 선생님에게 면담을 요청했었는데…. 난소암 환자에게 흔히 생기는 증상이라는 원론적인 말만 들었다며 하루 종일 투덜거렸고 그날부터 남편은 내 팔을 잡아 부종 여부를 확인하고 나면 다리까지 본인이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며 매일 주무르고 닦아 주었다. 

"그만해! 오늘은 진짜 컨디션 좋아 그러니 하루만이라도 좀 쉬었다 가와!" 

"알아서 할 게 신경 쓰지 마! 그나저나 밥 먹었냐는 질문에 아직 답하지 않았어!" 보통 암 환자들은 식욕이 없어진다고들 하던데 그래서인지 나 역시 식욕도 없고 소화도 안 된다. 

그 때문에 병원식을 먹지 않을 때가 많다. 

그것을 알고 있던 남편은 매일 나의 식사 여부를 묻지만,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늘 곤란해 얼버무렸는데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기세로 물었다. 

"입맛 없어 소화도 안 되고…." ,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당신 그러다 진짜 큰일 나 그럴수록 챙겨 먹어야지 건강해야 병을 이기지" 이미 가망이 없다는 걸 남편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아직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아직 미련이 남아있는데…. 저 사람이라고 다르겠는가. 

"당신 눈 충혈됐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실제로 남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집안의 편안한 침대를 놔두고 병원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생활하고 있다. 

더욱이 작은 소리에도 잠을 설칠 만큼 예민한 성격 탓에 수시로 지나다니는 간호사의 분주한 발걸음에 편히 쉬지 못했을 터였다. 

그럼에도 완강히 나의 곁을 지키려 했던 건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함께 나눈 추억 때문이었다. 

"신경 쓰지 말고 아프면 언제든 이야기해!" 뒷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든 계상이 처음 보는 팝업창의 메시지를 읽으며 말했다. 

"와~ 시간을 파는 편의점이라…. 이름 그럴듯한데 하하하!" 

"뭐? 시간을 판다고?" , "응 그렇다는데…. 어디 한번 들어가 볼까!" 

"그런 거 함부로 클릭하지 마! 보이스피싱일 거야" 집사람이 힘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이미 클릭한 뒤였다.

"그런가? 그리고 보니 절차도 무지 복잡하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나같이 시간이 금인 사람에겐 그 시간도 사치긴 하다." 내가 사이트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를 때 번쩍이는 팝업창이 하나 더 떠올랐다. 

'당신의 인생을 돌려드립니다. 과거든 미래든 선택만 하세요.' 짧지만 흥미로운 카피였다. 그리고 그 밑으로 전화번호 TEL: 1234-4321이 적혀 있었는데 한번 보면 잊힐 수 없을 만큼 그것 역시 강렬했다. 

내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 집사람의 통증이 시작되었다. 

"악!" 짧은 신음과 함께 옆구리를 움켜쥔 집사람 몸을 둥그렇게 말더니 얕은 호흡으로 짧고 빠르게 호흡하다 마치 추임새처럼 '악', '후~', 아~' 하는 소리를 질러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가 밖으로 뛰어나가 간호사를 불러들였고 뒤이어 들어온 간호사와 집사람의 대치 시간이 이어졌다. 집사람이 아파할 때 간호사가 온다 한들 딱히 방법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나였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나오면서 나에게 말했다. 

"진통제 드렸고요. 지금 환자분 주무시니까 아침까지 별일 없을 거예요. 보호자님도 좀 주무세요."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심해 보여 걱정이었다.

머리도 식힐 겸 밖을 나와 밤공기를 마실 때 길 건너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무엇에 홀린 듯 시간을 판다던 편의점에 전화를 걸었다. 

"예! 편의점입니다." 

"거기가 시간을 판다는 편의점 맞나요?" 

"예 맞습니다. 과거든 미래든 맥스 2시간 이내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진짜 시간인가요? 거짓말 아니지요?" 

"예 그렇습니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100% 환불도 가능하십니다." 

"그렇다면 금액이…." 사실 이런 질문을 할 때 마음이 편치 못했다. 내 사람의 목숨값을 물어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죄를 짓는 일 이겠지만 아내의 병원비로 그간 많은 돈이 들었던 터라 현실적인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연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실 건가요? 과거인가요. 미래인가요?" 

"과거. 과거로 가고 싶어요." 

"죄송합니다만 어떤 과거 말씀인가요? 정확히 말씀해 주셔야 금액이 책정됩니다." 

"집사람이 난소암 4기입니다. 언제부터 병을 앓고 있었는지 알지 못하니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의 과거쯤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럼, 집사람의 병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 물론 가능하십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함께 하셨던 추억은 모두 사라지십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집사람만 살릴 수 있다면 저는 좋습니다. 다만 안식구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고객님 죄송하지만, 이런 경우는 두 분 모두 동의하셔야 합니다. 상의하시고 다시 한번 전화 주시겠어요?"

전화를 끊고 나서 집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서둘러 병원으로 갔지만 효진이는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동안은 고통을 느끼지 않겠지! 하는 생각에 차마 깨우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간이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효진이를 살릴 수 있겠다는 희망 때문일까 몹시 설레어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3시가 넘어서야 잠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했을 때가 2시 50분이었기 때문에 3시라고 단정 지을 수 있었다. 

늦게 잠이 든 탓에 평소보다 40분이 지난 후에야 일어났다. 

출근 시간 때문에 간밤에 나를 설치게 했던 일들을 잠시 잊었다. 

서둘러 옷을 입고 출근길에 오른 나는 점심시간이 다 돼서야 간밤의 일이 생각났다.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자, 갑자기 밤새워 고민하던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시간을 판매한다는 그 편의점의 제안이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나의 간절함을 이용한 상술에 놀아난 건지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나 효진이를 살릴 어떤 가능성이라 할지라도 확인 절차 없이 그들의 말을 모두 믿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때문에 점심시간, 동료들과 함께 식당으로 향하는 대신, 나는 조용한 공원 벤치에 앉아 다시 편의점에 전화를 걸기로 했다. 

전화기를 꺼내 들고 번호를 누르는 손이 몹시 떨렸다. 

"뚜르르~ 뚜르르, 예 편의점입니다." 전화를 받은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고, 어제 나와 대화했던 것을 기억하는 듯했다. 

"어제 전화 주셨던 윤계상 씨 맞나요? 사모님과 상의하셨고요?"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말했다. 

"아직 병원에서 깨어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결정했습니다. 저 혼자의 결정이라도 이 방법을 시도해 보고 싶어요."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고객님,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객님과 사모님 두 분 모두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사모님이 깨어났을 때, 이 결정을 함께할 수 있도록 기다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만약 그렇게 결정하신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선생님을 돕겠습니다." 순간 마음은 복잡했다. 이성적으로는 그들의 조언이 옳았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감사의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공원 벤치에서 일어나 몸을 털고 회사로 돌아갔다. 오후 내내 마음이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효진이의 상태가 더 악화하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 그리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 때문이었다.

퇴근 후, 나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에 가까워질 때 효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복도를 날아와 심장에 박혔다.

간호사의 분주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들의 표정에서 응급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병실을 빠져나오던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진통제 드렸고요. 지금 환자분 주무시니까 한동안 별일 없을 거예요. 보호자님도 좀 쉬세요."

아침까지 에서 한동안으로…. 주무세요 에서 쉬세요! 로만 바꿔가며 앵무새처럼 떠드는 모습이 건조하다 못해 당장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만 같았다.

병실로 들어가 잠들어 있는 효진의 손을 잡고 기도했다.

그녀가 이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기를, 그리고 시간을 되돌릴 그 놀라운 기회가 정말로 우리에게 일어나길 간절히 빌었다.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졌고 병실은 조용했다. 효진이의 숨소리만이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그러다 새벽 4시쯤, 효진이가 눈을 떴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단번에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곧 나를 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

"일어났어? 기분은 어때?" , "또! 같은 질문을 하네…." 매번 같은 질문을 하는 나에게 그녀가 웃으며 말했지만, 그녀의 말에서 조금 전 간호사의 건조했던 미소가 지금 내 모습과 같음을 깨달았다.

그 때문일까 당황한 내가 두서없는 말을 마구 쏟아냈다.

그리고 그 말 중에는 편의점의 이야기도 있었다.

시간을 판매하는 편의점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그녀를 구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하고 싶어 한다는 마음까지 고스란히 드러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예상과 달랐다. 

"고마워요, 정말로. 하지만, 과거의 시간을 바꾼다면, 우리가 함께한 모든 순간이 사라진다며…. 그렇다면 난 반대야. 그 순간들이 나에게는 너무 소중해. 당장 죽는다 해도, 그 시간들을 잃고 싶지 않아." 그녀의 말에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는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간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이 자신의 목숨보다 귀하다며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행복한 기억은 살면서 다시 만들면 되지 않냐고 설득도 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싶은 절박함과,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간직하겠다는 그녀의 고집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노력에도 그녀는 끝내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이별을 선택했다. 

그녀는 행복한 추억을 갖게 되었지만, 나는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남은 시간을 최대한 의미 있게 보내는 거야" 효진이의 말에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마법 같은 편의점의 제안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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