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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Apr 03. 2024

시간을 파는 편의점 3화

짧은 만남

편의점에 전화가 걸려 왔다

그러나 사내는 선 듯 전화를 받지 못하고 깊은 한숨만 몰아쉬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훈이 물었다. 

"전화 안 받아요?" 고개를 들어 제훈을 바라보던 사내가 고개를 살살 흔들더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힘겹게 수화기를 들었다. 

평소와 다른 사내의 행동이 거슬렀던 제훈이 사내 쪽을 응시하며 "왜?" 하고 물었지만, 입 모양과 짧은 어깨의 끄덕임의 표현일 뿐 입 밖으로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내가 송화부를 왼손으로 가리며, "한강녀"라고 말했다. 

한강녀는 편의점의 고객인데 벌써 4번째 시간을 구입하는 고객이었다. 

처음 한강녀라고 불린 건 2번째 배달을 위해 한강을 찾았던 제훈이 처음의 장소와 같다는 이유에서 커다란 의미 없이 붙여준 그들만의 별명이었다. 

대부분의 고객은 한 번만 시간을 구입한다. 하지만 한강녀는 어찌 된 일인지 벌써 4번째 같은 사연으로 시간을 구입하고 있었다. 

방침상 같은 사연으로 시간을 판매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그가 사용했던 시간에 그녀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지 못했고 때문에 한강녀는 유일한 제외 대상자이기도 했다. 

"그러지 말고 이번엔 조금 더 뒤로 가시는 건 어떨까요?" 사내가 한강녀에게 말했다. 

"하는 수 없지요. 그럼, 지난번 그쪽으로 배달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사내가 자기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잠시 천장을 바라보다 금세 되돌아와 라이더에게 말했다. 

"제훈 씨! 배달이요!" 사내의 목소리엔 영혼이 실려있지 않은 듯 건조한 느낌마저 들었다. 

"또 한강이에요?" 이번엔 제훈이 건조하게 물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을 따라 하는 듯한 비아냥처럼 들렸던 사내가 발끈하며 "지금 나 따라 한 거지요?" 하며 물었지만, 제훈은 애니메이션 장화 신은 고양이 속 순진한 고양이 눈빛으로 말없이 고개만 절래 거렸다.

"아유~ 재수 없어!" 순간 사내의 입에서 제훈을 비꼬는듯한 말 이 새어 나왔지만, 그가 들을 만큼 큰 소리는 아니었다. 

"뭐라고요? 지금 욕했지?", "아니에요 하기는 뭐라고 해요", "아닌데…. 분명 뭐라고 했는데...."제훈이 눈을 흘기며 나직이 말했다. 

"이거나 받아요" 제훈을 향해 사내가 시간 상자와 사연 그리고 인적 사항 등이 담긴 쪽지를 건네며 말했다. 

쪽지를 건네받은 제훈이 조금은 짜증스럽다는 듯 "벌써 몇 번째야 이 아가씨 괘나 귀찮게 하는구먼" 하며 투덜거렸지만, 말일뿐  속으론 누구보다 응원하고 있었다. 

"이렇게 조금씩 하지 말고 차라리 뒤로 훅~ 빼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제훈이 말했다. 

"나도 그런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는데 그 이전은 안 된다고 하네요" 사내가 컴퓨터에 조금 전 들어온 배달을 입력하며 말했다. 

"왜?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제훈이 물었다. 

"직접 만나서 물어봐요" 사내가 제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잠언 한강공원에 도착한 라이더가 누에 모형의 벤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미 도착한 은지가 라이더를 향해 가볍게 목인사를 건네며 손을 내밀었지만, 라이더는 시간 상자를 건네기 전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이미 구면이라 그런지 둘의 대화가 서먹하게 들리진 않았다. 

"은지 씨! 이번엔 확실합니까?" 제훈이 물었다. 

"글쎄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확신이 없네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9월 14일인가요? 벌써 4번째인데...."제훈이 뒷말을 흐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날이 선덕원에 어머니가 찾아온 날 이거든요." 

"선덕원이요?" 낯선 이름에 제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예! 저~ 고아예요! 그렇다고 동정 같은 건 하지 마세요. 하하하!" 호탕하게 웃고 있었지만 고아라고 밝힌 후였기 때문에 그녀의 웃음이 씁쓸해 보였다. 

"저에 대한 기록이 그리 많지 않아요." 은지가 말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그 시간으로 가는 것보다 직접 보육원을 찾아가 보시면 되잖아요!." 

"그게…. 보육원에 불이 나서 제 기록이 별로 없다네요." 

"그것보다 사연에는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는데 돌아가셨나요?"

"… 그것도…."

"그렇다면 생사가 궁금하신 건가요?"제훈이 의아한 모습으로 은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물론 그것도 있긴 하지만 기억에도 없는 분이라 한 번은 만나보고 싶었어요." 

"만나시면 하고 싶은 말은 있나요?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과거 당신의 모습으로 만나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어머님은 시간여행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알아요. 제가 9월 14일을 고집하는 이유기도 해요. 그 이전엔 너무 어렸기 때문에 돌아간다 해도 어머니와 대화도 하지 못할 것 있거든요. 사실 제가 보육원에 들어온 건 그보다 훨씬 이전이에요. 다만 제가 8살이 되던 해 9월 14일에 어머님이 다녀가셨다는 기록이 있었어요." 

"아~ 그래서 8살 때 어머님이 찾아오셨던 시간으로 가시려는 거군요." 

"맞아요. 하지만 좀처럼 맞추기가 쉽지 않네요." 

"만나시면 하실 말씀이라도…."

"없어요! 그냥 한 번쯤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분인지 궁금할 뿐…. 미련도 없어요. 어린 저를 버렸을 땐 그만한 사정이 있으셨겠지요." 은지의 말에 라이더는 더 이상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시간 상자를 건네며, "이번엔 만나시길 바랄게요." 하며 웃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온 은지가 식탁 의자를 잡아당겨 그곳에 앉았다. 그리곤 손가방에서 시간 상자를 꺼내 들고 그것을 열었다.



밖이 어두웠다.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는 오후 8시라는 것을 알 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이곳에 오기 전 이미 9월 14일 오후 8시의 시간을 구입했기 때문이었다.

벌써 3번이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엔 10분짜리 상자를 구입했다.

보통은 20분이 max라 그것을 구입했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3번이나 시간설정에 실패했기에 구입비용이 부담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아 같은 사연으로 4번씩이나 시간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상자를 여는 순간 누군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토록 찾고 있던 그의 엄마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많아야 20대 중반쯤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진짜 그것이 맞다면 자신을 10대의 몸으로 낳았다는 결론이 생기기 때문에 부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터였다.

그녀의 외모로 보아 어린 소녀가 자신의 엄마일 리 없으니 어쩌면 이곳에 근무하시는 자원봉사자 이거나 복지사 선생님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찜찜한 건 그녀가 그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얼핏 그녀의 얼굴에서 미래의 본인 모습이 스치기도 했었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누구세요?"

그의 물음에 그녀가 더욱 거세게 울었다.

그는 그녀의 우는 모습이 불안해 보였다.

'뭐지!!! 진짜 이 사람이 내 엄마인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 때였다.

그녀가 보육원문을 열고 빠르게 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엄마!" 그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다.

엄마라는 말에 그녀가 멈칫했지만, 더욱 빠르게 달렸고 그가 지나간 하늘엔 눈물이 흩어져 달빛에 반짝거렸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 서둘러 당신의 딸이 미래에서 왔노라고 전해야 했기에 서둘러 그녀가 달리는 쪽으로 함께 뛰었다.

그녀가 보육원을 나와 길 건너 버스 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길을 건널 때였다.

"끼익~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녀가 하늘을 날았지만,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구입한 시간이 종료되었기 때문이었다.

현실로 돌아오자, 그는 미친년처럼 울부짖었다.

"아~ 왜! 왜! 왜~~~"



제훈이 배달을 마치고 편의점으로 들어설 때 사내가 어두운 표정으로 제훈을 맞이했다. 

"뭐야! 왜! 또 심각한 얼굴을 하는 거예요?" 조금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지만, 사내의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뭐야!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이번엔 제법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동안 머뭇거리던 사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한강녀 말이야! 드디어 어머니를 만났다더군!" , "아~ 그래요! 그러면 잘됐네요. 그런데 뭐가 문제예요?" "그게 말이야…. 사고 순간을 목격했는데…." , "사고? 무슨 사고?" , "어머니가 보육원에 찾아오던 날 보육원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셨는데…." , "예!!! 그래서요?" , "다시 시간을 구입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 휴~ 제훈 씨도 알다시피 동일 사연으로 판매를 할 수 없잖아. 더욱이 이번엔 만남이 이루어졌으니…. 더는 기회가 업지." 사내의 말에 깊은 한숨이 섞여 있었다. 

"편의점에서 시간을 처음 판매할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가끔이지만 이런 사연이 들릴 때면 늘 ~ 마음이 무거워…. " 사내가 무거운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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