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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Apr 03. 2024

시간을 파는 편의점(1화)

시간을 배달해 드립니다.

편의점에 라이더가 들어온다.

둘은 익숙한 듯 눈빛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라이더가 눈썹을 추켜세우며 가볍게 양쪽 어깨를 들어 보이자, 편의점 계산대의 남성이 입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삐죽이 나온 입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휴대전화 케이스만 한 작은 나무상자가 보였다.

라이더가 상자를 받아 들고 남성에게 다가가자, A4용지 한 장과 파일을 열어 사인을 요구했다.

라이더가 익숙한 듯 왼손을 들어 손목시계를 확인한 후 현재의 시간과 본인 서명을 날인하고 파일을 돌려주었지만, 시선은 A4용지를 바라보다 놀란 눈으로 남성을 바라보며 "뭐야! 7살? 이게 맞아?" 하고 물었다.

남성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짧게 몇 번 끄덕이며 "예! 이번엔 7살이네요" 하며 계산대 밑으로 날인한 파일을 밀어 넣었다.

라이더가 또다시 A4 지 속 7살 아이의 신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름: 신 정식

성별: 남

나이: 2017년 4월 6일생

사연: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어요.

금액: 5,000원

시간: 10분

주소: 서울시 성동구 천호대로….

라이더가 남성을 쳐다봤지만, 남성은 라이더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무심한 듯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오늘도 수고하세요" 라이더가 ''하고 코웃음 지으며 편의점을 나와 검은색 오토바이에 올랐다.




라이더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담벼락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사내아이에게 시선을 보냈지만 아이는 라이더를 보지 못하고 아스팔트 위를 걸어가는 개미에게 시선을 빼앗겨 있었다.

그때 라이더가 다가와 "네가 정식이니?" 하고 묻자, 아이가 벌떡 일어서며 "예"하고 대답하였다.

짧게 '예' 하였지만 몹시 흥분된 목소리였다.

"네가 시간을 배달시킨 거야?" 하며 라이더가 묻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예 저예요! 시간 어디 있어요?" 하며 물었다.

라이더가 아이의 눈을 말없이 바라보자, 무언가 생각났는지 아이가 주머니를 뒤지더니 1,000원짜리 3장과 500원짜리 3개 그리고 100원짜리 5개를 라이더에게 건넸다.

아이가 건네는 돈을 받아 든 라이더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라이더의 물음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예"하고 말했다.

라이더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너 이거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 라이더의 물음에 아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요 어떻게 써요?" 하며 되물었다.

"이건 10분짜리 시간이야 이 상자를 열면 구슬이 나오거든 그 구슬을 가슴에 가져가면 구슬이 사라지면서 네가 원하던 시간으로 데려다준단다."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나요?"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오지!"

"예 감사합니다."

아이가 흥분된 목소리로 인사하고 등을 돌렸다.

"정식아! 그런데 거 언제 쓸 거야?"

"나중에 동생하고 쓸 거예요"

"뭐! 동생하고!"

"예!"

"정식아! 미안한데 이건 너만 사용할 수 있어 동생은 안 돼"

"왜요? 왜! 안 돼요?" 정식의 물음에 라이더가 곤란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이건 정식이 네가 구입한 너의 시간이야 다른 사람들은 사용할 수 없어, 음…. 말하자면 1인용! 그래 1인용인 셈이지!"

"그럼 2인용은 더 비싸요? 얼마예요?" 정식이 고개를 떨구며 물었다.

"아니 2인용은 없어 시간은 모두 1인용이야" 라이더의 말에 정식이 울먹이며 자리에 서서 눈물을 흘렸다.

"왜? 왜! 울어? 동생하고 함께 못 가서 울어?" 하며 라이더가 물었다.

"예 동생이 엄마 보고 싶다고 맨날 우는데 동생이 이걸 쓰면 나는 엄마를 볼 수 없잖아요."

"아니야! 처음부터 정식이 네가 산 시간이니까 이건 오로지 정식이 너만 사용할 수 있어" 그러자 정식이 조금은 밝아졌지만 이내 또다시 침울한 표정을 보였다.

"왜? 뭐가 마음에 안 드니?"

"아니요! 동생한테 미안해서요! 매일 엄마 보고 싶다고 울거든요"

"그럼 동생이 시간 사면 되잖아" 라이더의 말에 정식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동생은 돈이 없잖아요" "엄마가 없으면 아빠에게 부탁해 보면 안 될까?" 라이더의 말에 정식이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식의 행동에 의문을 가졌던 라이더가 그제야 정식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지만 정식은 한눈에 봐도 얇아 보이는 라운드 셔츠만을 입고 있었다.

바지는 회색 트레이닝 복장의 하의를 입고 있었지만 신발이 문제였다.

슬리퍼를 신고 있었지만, 슬리퍼라기보다 앞이 막혀있는 욕실화였기 때문이었다.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부스스했고 제대로 먹지 못해 한눈에 봐도 말라 보였다.

라이더는 순간 아동학대를 의심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아이의 사연으로 짐작해 10분 정도의 금액이면 자신이 대신 내줘도 될 법했지만, 고객의 사연에 개입할 수 없다는 조항 때문에 라이더는 참아야만 했다.

라이더가 생각에 잠긴 사이 정식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런 정식의 모습을 라이더는 말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정식이 골목 안쪽으로 사라질 무렵 라이더가 다급히 정식을 향해 소리쳤다.

"야! 야~ 정식아!" 라이더의 고함에 놀란 정식이 고개를 돌려 라이더를 우두커니 바라보자, 라이더가 손짓하며 다가오며 말했다.

"정식아! 정말 미안한데 아저씨 심부름 하나만 해 줄래?" 갑작스러운 라이더의 말에 정식이 눈만 껌뻑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저씨가 배달 다니느라 오늘 하루 종일 굶었거든 정말 미안한데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고쳐야 해서 그러는데 대신 저기 편의점에서 빵 하고 우유 좀 사다 줄 수 있을까? 대신 아저씨가 심부름 값 줄게 어때? 해줄 수 있겠니? 아~ 배고프다!" 라이더의 목멘 소리에 정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심부름을 해 주었고 심부름의 대가로 자신이 시간 값으로 지불했던 금액만큼의 돈인 5,000원을 받았다.

라이더는 정식이 가져다준 빵과 우유를 들고 검은색 오토바이를 몰았다.

오토바이 백미러로 정식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라이더가 미소를 지었다.




라이더가 편의점에 도착할 때쯤 '띵동' 하고 배달 알림이 울렸다.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카운터를 지키던 사내가 라이더에게 잔뜩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또 개입하셨지요? 그러면 계약 위반이에요 아실만 한 분이 이러시면 안 되잖아요."

"뭐! 내가 무슨 계약을 위반했다는 거예요? 물건 잘 전해줬고 사용법 알려줬는데 뭐가 위반이라는 말이지요?" 라이더가 애써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아니! 그러니까…." 사내가 말을 잊지 못하고 '휴~' 하고 한숨만 내뱉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이건 뭔데요?" 사내가 A4용지를 건네며 물었다.

이름: 신 명화

성별: 여

나이: 2019년 7월 20일생

사연: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어요.

금액: 3,000원

시간: 10분

주소: 서울시 성동구 천호대로….

"아~ 아까 그 아이 동생인가 보내…. 그런데 이게 왜요?" 라이더의 말에 사내가 고개를 살살 흔들며 의심의 눈초리로 말했다.

"조사하면 다 나와요" 그 말에 라이더가 "동생도 엄마가 보고 싶은가 보지요.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호들갑은…."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곤 조금 전 정식에게 받은 5,000원을 카운터에 올려놓으며 "이거나 받아요" 하며 말했다.

꼬깃꼬깃한 1,000원짜리와 잔돈을 바라보던 사내가 라이더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물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어휴~ 왜! 이번엔 무슨 사연인데요?"

"사연은 무슨 나도 몰라요! 그냥 배고파서 심부름시키고 심부름 값 준거 말고는 없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일을 시키면서 밥도 안 주고 시키냐! 아무튼 인정머리 하고는…." 제훈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라이더의 태도에 고개를 절래 거리던 사내가 카운터 밑에서 시간 상자를 꺼내 그에게 건넸지만, 라이더는 바로 출발하지 않고 편의점 진열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제훈 씨! 뭐해요?"

"뭐 하긴 물건 사지 손님에게 무슨 말버릇이 그래요! 지금은 손님입니다."

라이더의 말에 사내가 어이없고 귀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절레거렸다….

잠시 후 라이더가 양말과 핫팩 그리고 초콜릿 과자 2봉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계산해 주세요"

"예, 예! 어련하시겠어요."




라이더가 정식을 만났던 장소에 도착했지만, 정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 어디 있는 거야?" 라이더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정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적혀있는 주소로 찾아가기 위해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집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정식이 사라지기 전 골목을 기억했던 그가 골목으로 들어가니 막다른 길에 배달 주소가 적혀 있었다.

라이더는 주소를 단번에 찾았지만, 선 듯 벨을 누르지 못했다.

집안에서 새어 나오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술에 취해 노래하는 족히 40은 대 보이는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입구에서 담배를 꺼내 들은 라이더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 물로 하늘을 향해 담배 연기를 뿜었다.

담배 연기에 라이더의 한숨이 섞여 하늘로 올라갔지만, 라이더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잠시 후 노랫소리가 멈추자, 대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두 명의 아이가 밖으로 나왔다.

라이더를 단번에 알아차린 경식이 라이더를 반갑게 맞이하며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옆에 계신 숙녀분이 주문자님이신가?" 하고 라이더가 묻자, 여자아이가 오빠 쪽으로 바짝 다가서며 오빠 뒤로 몸을 숨겼다.

"괜찮아! 나와도 돼 아까 오빠가 말했지, 엄마 만나게 해 준다고, 이 아저씨가 엄마 만나게 해주는 사람이야."

정식이 소개하자 뒤에 숨었던 명화가 밖으로 나오며 물었다.

"진짜 엄마 만날 수 있어요?"

"그럼요 아가씨" 하며 시간 상자를 명화에게 건네자, 명화가 받아들였다.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오빠에게 배우세요" 하며 라이더가 웃어 보이자, 고개를 끄덕이며 방긋 웃었다.

"정식아! 동생 잘 가르쳐 줘라! 할 수 있지?" 라이더가 묻자, 정식이 "예"하고 대답했다.

"이건 정식이가 대신 설명 해준 것에 대한 선물이야." 하며 조금 전 편의점에서 구입했던 물건을 건네주고 라이더는 떠났다.

그가 돌아가고 정식은 명화와 함께 집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기 전 정식이 명화를 자신의 뒤에 세워둔 체 조심스럽고도 침착하게 문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다 잠들어있는 아버지를 확인하고야 안심하고 명화와 함께 들어섰다.

술에 취해 잠들어있는 아버지를 피해 작은방으로 몸을 숨긴 명화의 심장 소리가 거친 숨소리와 함께 방안을 메웠다. 명화가 시간 상자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흔들어보다 정식에게 물었다.

"오빠 이게 뭐야?"

"이건 시간상 자야 엄마에게 데려다주는" 엄마라는 말에 명화가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지만, 정식의 말에 울음을 그 졌다.

"조용히 해! 아빠 일어난단 말이야! 너 엄마 보고 싶다며 엄마 안 볼 거야?"

"아니, 볼 거야! 진짜! 엄마 볼 수 있어?" 명화가 흐느끼며 묻자, 정식이 "너는 언제 적 얼마가 보고 싶어?" 하며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명화가 "음…. 몰라! 밥 먹을 때?" 하며 정식을 쳐다보며 웃다가 "오빠는?" 하고 물었다.

명화의 물음에 정식은 "나중에 알려줄게"하며 말을 아꼈다.




식탁에 모여 앉아 떡볶이를 먹고 있는 명화와 정식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정겹다.

마냥 즐거워하던 명화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며 엄마에게 안겨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보고 싶었어" 조금 전까지 잘 놀고 잘 웃던 명화의 급변한 태도에 당황한 엄마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예가 왜? 갑자기 이래 하하하! 명화야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엄마가 물었지만, 명화는 마냥 울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명화를 말없이 바라보던 엄마가 갑자기 불안한 눈빛으로 정식을 쳐다봤지만, 정식 또한 그런 명화의 태도가 당황한듯해 보였다.

"명화야! 아빠는?" 엄마의 물음에 명화가 "쉿! 조용히 해 아빠 일어날지 몰라!" 하며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명화의 행동에 놀란 엄마의 몸에 한기가 들린 듯 서늘함을 느꼈지만, 엄마는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명화를 따스하게 안아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굳게 닫은 입술 속에서 알 수 없는 다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다음날 정식이 작은방 손잡이를 열었을 때 아침을 준비 중인 엄마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아빠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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