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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Aug 15. 2024

그리움도 사치스러운 날(5)

안전이 먼저였다.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그는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우기로 마음먹었고 그가 노력하는 모습을 오랜 시간 지켜봐 왔던 김 반장의 도움으로 산소절단이라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남들만큼 노력해서는 남들만큼만 성장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성장이 가족 모두에게 보다 안정적인 수입을 약속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노력을 개을리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그의 노력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동기 혹은 먼저 입사한 선배들보다 6개월에서 1년 이상 빠른 시작이었다. 

그 때문에 의도치 않게 시기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잘할 수 있을 거라며 격려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찌 되었든 그는 그렇게 기술자가 되었다. 

기술자가 되고 나면 예상보다 많은 혜택이 따른다. 

시급 인상은 물론 여러 종류의 수당이 생기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된다. 

또한,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하는 번거로움도 줄어들며, 부사수라는 동료가 생겨 수동적인 생활에서 능동적인 생활로 바뀌게 된다.

항상 계획하고 연구하는 삶을 살아온 종대로서는 수동적인 일처리는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로웠었다.

늘 답답함을 느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지적과 잘난척한다는 가시 돋친 편견이 대부분이었기에 섣불리 의견을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보이는데 스스로 작업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시키는 데로만 움직이는 삶이 너무나도 답답했던 그는 이제 일을 계획하고 능률향상을 위해 연구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생겼다는 것은 그야말로 해방감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책임져야 할 부사수가 생겨났으며, 일에 대한 평가가 따라왔고 무한경쟁의 시작이기도 했다.

소이말하는 기술자들은 자신의 기술을 뽐내기 위해 많은 물량의 일을 경쟁처럼 하고 있었고 더러는 품질을 기준으로 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판단이 동료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사명감도 생겼다.

때문에 자신이 잘못된 판단을 할 경우 다른 동료를 다치게 할 수 있기에 안전요원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선배 기술자들은 하나같이 자기주장이 강했다.


그의 첫 부사수는 필리핀노동자 jack이었다.

이곳 조선소의 생활은 종대보다 jack이 훨씬 오래되어 더러는 그를 가르치기도 했다.

환경이 사람을 지배한다고 어디선가 읽은 적 있는데 딱 맞는 표현이었다.

시간이 지속되자 이타심은 사라지고 안전 불감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장마철이 있기 때문에 작업량을 맞추기가 힘들다. 그래서 대부분 작업자는 무리해서 작업을 진행하는데 그러다 보니 안전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기도 한다.

그날도 평소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형아~ 비 온다. 일 안 돼!" jack이 용접기를 서둘러 거둬들이며 말했다.

이미 절단기에 불이 붙은 상황이라 멈출 수 없었던 종대는 하던 일을 마무리 지은 후에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보니 금방 멎을 비는 아닌 듯했지만 그는 무시하고 작업을 강행하였다.

사무실에서 철수명령이 떨어졌지만, 그는 비를 피해 작업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때 jack이 서툰 한국말로 “형 안 가? 가자! 비와 안돼”하며 만류하였지만, jack의 말을 무시하고 작업을 이어나갔다.

사수가 일하는데 부사수 혼자 퇴근을 할 수는 없는 것이라 jack 역시 작업에 동참하였다.

jack은 구시렁거리면서도 잘 따라주었던 좋은 친구였는데 그런 jack이 종대 씨의 오만함으로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사고가 나기 전 몇 차례 전조증상이 보이긴 했지만, 이 역시도 무시했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루면 내일은 더 많은 양을 쳐내야 하므로 작업자에겐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러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마무리해야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종대 씨의 욕심이었고 합리화였음을 본인도 알고 있었다.

jack은 사상 작업과 용접 작업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이미 비 때문에 온몸이 젖어있던 jack이 용접기를 잡는 순간 감전이 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전압이 약한 220v의 용접기를 사용하고 있었기에 큰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차단기가 떨어졌고 근처의 전기가 모두 떨어지며 사고임을 알렸다.

너무 놀라 하고 있던 모든 일을 중지하고 jack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jack이 “아하~! 형아 거봐 안 되지! 위험해 안돼”하는데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종대 씨가 jack을 보며 “jack 미안해 어디 아픈 데는 없니? 병원 가보자”했더니 녀석이 웃으며 “형아 돈 많아?”하며 농담을 건넸다.

그날 jack이 사용했던 용접기가 고압이었으면 모르긴 해도 사망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날 이후 종대 씨의 모든 작업에 변화가 생겼다. 

생산량보다는 안전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으며,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꼼꼼히 살피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훗날 이런 안전습관이 그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직도 조선소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이나 기타 작업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안전사고 대부분은 피할 수 있었지만 안전불감증과 무사안일주의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한 번만 더 살펴보고 조처를 했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종대 씨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하인리히의 법칙에서는 1 : 29 : 300이라고 말을 한다.

300번의 이차사고가 생기면 그중 29번은 경증 사고로 이어지고 29번의 경증사고가 일어나면 1번의 사망사고와 같은 중증 사고가 발생한다고 했다.

비행기 조종사가 말하길, 비행의 안전은 이륙 준비에서부터 착륙 후 점검까지 모든 과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작업자의 작업도 계획에서 시작해서 마무리 정리정돈까지가 아닐까? 작업의 모든 과정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때, 우리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때부터 그는 안전에 관해 눈을 뜨기 시작했고 안전은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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