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세요?
그는 지난 2달 동안 한 번도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 식었다던가 애정이 줄었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주말에 근무를 하면 평일보다 수입이 좋았고 한 푼이 아쉬웠기에 당장의 회포보다는 현실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는 지난 2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에 빠져 살고 있을 때였다.
점심시간에 웅성거리는 인부들 뒤로 커다란 공지가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뭐예요? 무슨 일 있나요?" 종대가 인부들 중 누군가에게 물었다.
"휴가일정 발표 났어요" 그가 무심하게 말하곤 관심 없다는 듯 종대의 등 뒤로 돌아갔다.
조선소의 휴가는 대부분의 모든 공정을 일제히 멈추고 모든 근로자가 동시에 휴가에 들어가기 때문에 마치 shut down 되는 듯하다.
물론 계중에는 남아서 뒷수습을 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리 많지 않았기에 그리 보였다.
그 때문에 종대에게도 열흘동안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무엇보다 그를 흥분시켰던 것은 부족함 없이 휴가를 즐길 수 있을 만큼의 두둑한 보너스였다.
그리고 얼마 전 막내가 걸음마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던지라 녀석을 안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막둥이는 얼마나 자랐을까? 딸아이는 또 얼마나 예뻐졌을까? 큰 놈은 여전히 듬직할까? 집사람이 원망하진 않을까? 그는 휴가공지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휴가 당일 작업복으로 환복하는 종대에게 두호가 다가와 물었다.
"퇴근하면 터미널로 바로 가요?" , "예! 그럴 생각이에요." 종대가 두호를 바라보며 답했다.
"그럼 내가 태워줄 테니 나중에 샤워장 앞에서 봐요!" 두호가 웃으며 말했다.
"와~ 그럼 고맙지! 두호 씨 고마워요." 종대가 두호의 호의에 웃으며 답했다.
두호는 통근버스 대신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했기 때문에 기동성이 좋았다.
그런 두호 덕분에 그는 조금 더 일찍 시외버스를 탈 수 있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2시간, 지하철로 또 1시간을 달리면 그토록 그립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그리 먼 거리도 아니지만, 출근 시간에 몰리면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에 집에서의 출퇴근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린 선택이 기러기 생활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결국 본인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원망할 수 없었다.
버스에 올라 이동하는 2시간 동안 그는 상념에 잠겼다. 하지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고온과 분진을 막기 위해 쓰고 다녔던 마스크 속 텁텁한 공기에서 벗어나, 땀에 절어 있던 육신을 맑은 물에 씻어내고 오른 귀성길 시외버스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안도의 마음이 겹쳐 온몸이 나른해졌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육신의 안위가 그리움을 밀어내고 정신마저 지배하는 순간이었다.
종착역에 다다를 무렵, 자리를 내주었던 정신이 조금 더 머물겠다는 안위의 등을 떠밀어 다시 온전한 자아로 돌아왔다.
어느새 도착한 그는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 전 동네 슈퍼마켓에 들려 과자 몇 봉지와 담배 한 갑을 구입했다.
큰아이가 좋아하는 감자스낵과 딸아지가 즐겨 먹던 바나나땡도 잊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마침내 집에 도착한 그가 문을 열며 큰 소리로 소리쳤다.
"어! 아빠다" 방 안에서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며,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아빠~" 제일 먼저 도착한 큰 아이를 번쩍 들어 가슴에 안았다.
등을 몇 번 토닥이고 있을 때 뒤 따라 나온 딸아이가 양팔을 벌리며 자신의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큰아이를 내려놓고 딸아이를 안아줄 생각이었지만 오래간만에 만난 아빠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으려고 팔에서 떨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왼쪽엔 큰아이를 오른쪽엔 딸아이를 들어 올려 안아주었다.
양손에 아이들을 안고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뒤늦게 아내가 막둥이를 안은 체 걸어 나왔다.
이미 자신이 안길 자리가 없다는 걸 알아차린 그녀는 말없이 입을 삐죽 내미는 것으로 반가움을 대신했다.
"고생했어요. 밥은?" 그녀가 물었다.
"아직 안 먹었는데... 당신은?" , "나는 먹었지! 아이들 덕에 나는 잘 챙겨 먹어 그나저나 배고프겠다. 밥 차려줄게 얼른 나와요" 그녀가 나가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막내가 울며 그녀를 따라나갔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그가 막내를 불러봤지만 좀처럼 곁을 주지 않고 쭈뼛거리더니 급기야 울음을 터트린 것이었다.
"주역아! 이리 와~ 왜 그래? 이리 와봐!" 그가 뒤뚱거리며 달아나는 막내를 따라가며 말했다.
밥상준비가 한창인 엄마의 다리를 부여잡고 마냥 울기만 하는 녀석의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다.
"잉! 저 녀석 왜 그래?" 그가 고개를 꺄웃 거리며 물었다.
그녀가 막내를 들어 올려 등 뒤로 가져가자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 등에 짝싹 붙어 마치 코알라새끼가 어미등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치 뭐냐 저 녀석 반갑지도 않은가 봐!" 그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한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막내를 안고 들어온 아내가 자신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막내를 밀어내며 말했다.
"주역아! 아빠야! 아~빠, 아빠 해봐! 아~빠" 하지만 아내의 설득에도 녀석은 좀처럼 아내의 곁을 떠나려 하지도 말을 따라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낯선 사람 취급을 하고 있었다.
녀석의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한 아내가 그의 품에 안기며 녀석의 반응을 보았다.
그러자 막내가 울먹이며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고 엄마를 옷자락을 끌어당기기만 했다.
떨어져 지낸 시간 동안 아빠라는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막내가 아직 그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막내가 원망스럽고 또한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기도 하는 등 복잡한 생각이 스치며 순간 눈물이 흘렀다.
최근 몇 년간 눈시울이 붉어진 적은 있었지만 눈물이 흐른 적은 없었는데 그런 자신의 모습에 그도 당황하며 서둘러 고개를 틀어 모습을 감췄다.
"왜! 그래? 설마 울어?" 아내가 물었다.
"아니야! 울긴 좀 전에 눈에 뭔가 들어갔어." 애써 눈을 비비며 변명했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다만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그가 눈치채면 부끄러워할까 봐 그녀도 마음을 숨겼다.
"당신 휴가기간 동안 아이들하고 많이 놀아줘야겠다."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그래야겠네 앞으론 자주 와야겠어 몇 푼 벌자고 가족을 잃을 순 없잖아." 그가 말했다.
"에이 그건 너무 비약이다 그렇다고 가족을 잃는 건 아니지 않나? 하하하"
"물론 그렇긴 하지만 오늘 막내 반응을 보니 내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
짧은 대화를 나누던 종대가 막내를 엄마품에서 빼앗아 자신의 품으로 데려와 한동안 말없이 안아주었지만 녀석도 그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목적을 잃어버린 느낌이랄까 그는 순간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날이 허무해지는 공허함을 느꼈다.
언젠가 드라마 속 주인공이 바다를 향해 나는 부자가 될 것이다. 라며 소리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당시엔 어린 꼬마가 목표의식이 뚜렷하네 하고 넘겼었는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과정이 그리 곱지만은 않았기에 가닥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것과 다르겠지만 현제의 그는 가족을 위해서라는 미명아래 어쩌면 자신을 속이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