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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Jul 25. 2024

그리움도 사치스러운 날 (2)

그리움도 사치가 된다.

종대 씨는 기러기 생활을 한다. 

그가 기러기 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1달이 지났다 하지만 합가를 결정하기엔 하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있다. 

현실적인 문제로는 아이들 전학이 필요했고 집사람은 초등학교 때부터 살던 동내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당장 마련해야 할 집과 과연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야 아내와 아이가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보 노동자에게 경제적 안정이란 사실상 힘든 일이다. 

그들은 특별한 기술이 없기 때문에 소이 몸으로 때워가며 한 달을 버텨내고 있었고 언제까지 그것이 가능할는지 그들조차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버틴다는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언제고 무너질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 말고도 단 한 번도 몸을 쓰며 살아보지 않았던 종대에겐 완벽한 비유였다. 

아주 오래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그가 했던 말 중에 언제고 남자가 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며 떠들어대던 자기 모습을 떠올린 종대는 씁쓸한 하루를 삼켰다. 

"기술을 배워야겠어!" 아내와의 통화를 마친 종대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몸값을 올리는 데는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오랜 경험으로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그날부터 시간을 쪼개기로 했다. 

숙련공들은 한 가지씩 기술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용접을 다른 이는 산소절단을 심지어 외국인노동자들마저도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초보 노동자들에게는 섣불리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기술을 가리키면 안전사고 발생률이 높아서 사업주들은 3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쳐 그들을 평가하고 그들에게 어울릴법한 기술을 조금씩 가르치기도 하지만 대부분 가벼운 청소부터 철근 옮기기와 같은 중노동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고 소이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을 모를 리 없지만 그렇다고 정규코스를 밟기엔 언제 무너질지 모를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남들만큼 노력한다면 남들만큼만 성장한다. 

결코 앞서 달릴 수 없다는 말이다. 

성경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장 7절 말씀이다. 

결국 실행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얻지 못한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날부터 그의 대부분 시간은 쪼개지고 갈라져 카테고리 별로 나뉘었지만, 지향하는 목표는 하나였다.




초보노동자들은 기술자들이 이른 시일 안에 일을 마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런 출동은 긴급상황 발생 시 현장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1순위로 선택이 되는데 조기출근 1시간이면 0.5시간을 추가로 주는 혜택이 주어진다. 그리고 가끔 노동강도에 따라 2배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월급날이면 한 푼이 아쉬운 초보 일꾼에게는 그야말로 보너스 같은 것이었다. 

김 반장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찍 오는 종대 씨에게 초보자치고는 정신력이 대단하다며 수습 기간이 끝나기도 전 시급 200원 인상을 약속했다. 

훗날 그가 약속한 인상액은 팀원들 사이에 좋은 가십거리가 되기도 했다. 

키 175cm 몸무게 55kg인 종대는 남자치고 너무나 약골이었지만 그의 어깨에는 자신만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3명의 아이와 아내가 있기에 결코 약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무너지면 남아있는 가족들이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절대 무너질 수 없었다. 

어쩌면 가장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을 것이다.

저녁 6시면 대부분 노동자는 일과를 마치고 퇴근을 하지만 소수 작업자는 잔업을 하게 된다. 

대부분 의영이 아저씨처럼 처리해야 할 물량이 남았거나 검사 일정이 당겨지면 일정을 맞추기 위해 잔업을 하게 된다. 

오늘도 의영이 아저씨가 자신의 처리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시고 퇴근을 하신 터라 종대 씨와 사수한 분이 남아 잔업을 하게 되었다. 

팀 내 다른 사람들은 물량 소화를 못 하시는 의영이 아저씨를 욕했지만 종대 씨는 고마워했다.

아저씨 덕에 잔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잔업까지 마치고 나면 저녁 9시가 조금 넘는데 잔업 후에는 어김없이 김 반장이 저녁밥을 가장한 소주를 사줬다. 

하지만 그걸 받아마시면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라 그는 번번이 거절했다. 

꼬박 15시간을 태양 아래 일렁이는 철근 위에서 일하고 나면 다리가 휘둘리고 몸은 천근만근 빨리 들어가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는 생각하지 말고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극강의 피로는 사람을 그렇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점심 식사 후 집에 있는 딸아이와 잠시 통화했을 때 너무 그리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지만, 퇴근 무렵이면 그리움조차 사치가 되어버린다.

오래전 어머님의 출상일에, 종대는 버스 안에서 영정사진을 껴안고 잠들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상주였던 그는 늦은 시간까지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꼬박 3일 동안 무수면 상태로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정작 출상일에 버스로 이동하는 2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그런 종대의 모습을 지켜보던 지인들은, 어머님의 빈소를 지켜준 아들이 안쓰러워 돌아가신 어머님이 재워주신 것이라며 애써 포장해 주었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종대의 가슴은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팠다.

결국 그리워하는 마음도 피곤한 육신 앞에선 한낱 사치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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