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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Aug 01. 2024

그리움도 사치스러운 날 (3)

한걸음 더

김 반장은 종대에게 회사에서 가장 연장자인 봉오 아저씨와 한동안 팀을 이루어 다니라며 작업 지시를 내렸다. 

봉오 아저씨는 점잖으시고 인품도 훌륭한 분이었다. 

제주도가 고향이라고 하셨는데, 이곳 조선소가 생겼을 때부터 계셨던 터줏대감 같은 분이었다. 

김 반장 말로는 자신과 함께 현재의 회사를 설립하신 몇 안 되는 분 중 하나로, 기술 부분을 책임지고 계셨던 분이라고 했다. 

이미 정년이 지나 퇴직해야 했지만, 사장님의 부탁으로 아직도 자문 역할을 맡아 근무하고 계신 분이었다.




기술자가 되면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는 일은 하지 않는다. 

관례상 부사수가 사수의 짐을 대신 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관행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것이지만, 시키는 쪽도 받아들이는 쪽도 그것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뿌리 깊숙이 박혀있었고 종대 역시 문제의식이 없었다.

그러나 봉오 아저씨는 자신의 짐을 절대 부사수에게 맡기는 법이 없었고 그 덕에 종대는 한동안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연세가 많은 분이라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아버지뻘인 아저씨가 등짐을 지고 다니시는 모습이 마치 고향에 계시는 아버님을 보는듯했으며, 그 때문에 늘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어느 날, 종대는 짐을 들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어르신 그거 절 주세요. 제가 들고 갈게요." 종대가 말했다.

"이 녀석아! 언제까지 남의 짐보따리 들고 다닐래? 얼른 배워서 부릴 생각은 하지 않고 정신 차려."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가 생각했던 반응은 그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당황했다. 그 말씀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날부터 종대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점심 식사 후 남몰래 용접기를 들고 홀로 연습을 시작했다. 

비록 용접공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다뤄야만 하는 직업군이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연습을 했던지 용접 화기에 얼굴이 익어 피부가 벗겨지고 빨갛게 변하는 1도 화상의 증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연습을 계속했다. 심지어 2시간마다 주어지는 짧은 휴식시간마저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실력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기초지식이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열정만 가지고는 롱런하지 못한다는 것을 학창 시절 혹은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그도 이미 몇 번이고 경험해 보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과거 일본어를 배우겠다고 몇 권의 책을 사들고 겁도 없이 뛰어들었다가 한자에 막혀 주저앉았던 경험부터 스케이트만 탈 줄 알면 누구나 아이스하키를 할 수 있을 거란 오만함에 빠져 첫날부터 다리가 부러졌던 일들까지 이미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기본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간과했던 것이다.




조선소에서는 비가 오면 그날은 공치는 날이다. 

오전 근무 후 퇴근 명령이 떨어졌지만 종대는 혼자 남아 같은 실수를 하고 있었다.

"야! 퇴근 안 하고 뭐 하냐?" 어느새 등 뒤에서 지켜보던 김 반장이 정신없이 용접 연습을 하고 있던 종대에게 물었다.

“아... 예... 그냥 용접 연습 좀...” 당황한 종대는 뒷말을 흩뿌리며 답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렇게 하면 늘지도 않아! 얼굴만 상하고... 쯧쯧 얼굴이 이게 뭐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측은해 보였는지 혀를 차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뭐가? 배워보겠다고 하는 건데 뭐가 죄송해? 할 줄도 모르면서 꼬박꼬박 남의 돈 타가는 놈들이 죄송한 거지. 이리 와봐!" 종대의 팔을 낚아챈 김 반장이 말했다.

그날부터 더는 숨어서 연습하지 않았다. 

가끔 봉오 아저씨와 김 반장이 이런저런 방법을 알려주곤 했다. 

그런 노력 때문일까 수습 기간이 끝날 때쯤 동기들보다 심지어 먼저 입사한 선임들보다 더 완벽한 기술자가 될 수 있었다.


어느 조직이든 배우고 노력하면 기회는 찾아오는 법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고 두드리면 열린다고도 했다. 

로또에 당첨되기를 바란다면 최소한 로또를 사야만 몇천 몇만 분의 1의 확률이라도 생기는 것이다. 

수습이 끝나는 날 김 반장은 약속했던 200원이 아닌 300원을 인상해 주었다. 

학원장 시절 선생님 월급으로 나가는 돈이 수천만 원이 넘었으니 당연히 벌이도 좋았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소중함을 고작 300원에 느끼고 있었다.

"이 정도면 막내아들 기저귓값은 되겠는 걸 하하하!" 면담을 마치고 나온 종대가 월급봉투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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