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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Aug 29. 2024

그리움도 사치스러운 날( 7 )

관리자의 삶 (책임감)

기회란 준비된 자에게 먼저 찾아오는가 보다.

그는 드디어 관리자가 되었다. 

처음부터 그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지만, 짬짬이 준비해 둔 덕분에 한 걸음 내디딜 수 있게 되었다. 

평소 그를 좋은 시각으로 바라보던 동료의 추천이었지만, 결론적으로 그가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런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는 기존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으며, 사고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동안 꿈꿔왔던 변화를 만들 것이라 다짐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마치 공약 전 정치인처럼 타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존재했으며, 자신조차 속여야 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을 알 리 없던 종대는 호기롭게도 관리에는 자신 있어했다. 

지난날 학원장으로서, 아니 그 이전부터 이미 그는 준비된 관리자였다. 

그의 학창 시절이 그랬으며 지금까지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에 두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과거 종대가 학원을 떠난 것은 본사와 지사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본사와 지사 간의 관계 속엔 풀리지 않은 매듭이 존재했었는데, 본사 입장에선 영업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므로 지사를 한 군데라도 더 발굴해야 이익이 되었지만, 지역을 지키고 있는 지사로선 학생 수는 정해져 있는데 계속해서 신규 지사를 늘리게 되면 기존의 원생들을 나눠 가지는 꼴이 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막아야 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였으므로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다만 시일이 언제가 될지만 남았을 뿐, 그런 힘의 싸움에서 약자는 언제나 패배자가 되었고 결국 그는 패자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런 것이 싫어 떠나왔지만, 이곳에서도 갑과 을의 관계는 여전했다. 

다만 한치 건너의 일일 뿐 결과는 같은 것이었다. 

우선 본청과 아래도급의 계약 관계는, 예를 들어 배 한 척당 1,000만 원이라고 쳤을 때, 아래도급은 1,000만 원 중 인건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자신의 이익금으로 보는데, 한 척을 마무리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숙련공과 비숙련공의 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마진율 역시 달랐다. 

그러니 아래도급 입장에선 그날그날 최대한 많은 물량을 쳐내야 마진율이 높아지니, 노동자들의 안전은 적당히 무시되고 작업 능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종대는 중간관리자로서 작업자의 안전을 먼저 생각했다. 

작업자가 1명이라도 빠져나가면 그 자리를 자신이 메꿔야 하므로, 물량과 안전 모두를 신경 써야 하는 구조적 모순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안전을 철저히 지키면 작업자의 안녕을 책임질 수 있겠지만, 물량이 현저히 떨어짐으로 회사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니 중간관리자에게 압박이 가해졌다.

그는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의 직장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곧 현실적으로 무리임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는 그의 기대는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종대는 노동자들의 반발에 직면하면서,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종대는 항상 옳다고 믿었던 선택들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던 그의 진심이 왜곡되어 전해지는 상황에서, 그는 점점 더 깊은 혼란과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그는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끊임없이 고민했다. 

"나는 정말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아니면 이 역시 내 오만이었던 걸까?"라는 질문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마음 한편에는 직장에서의 성공과 안전을 모두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결국 나도 다른 관리자들과 다를 바가 없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는 자신이 꿈꿨던 변화가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하며, 비록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렸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을 다잡으려 노력했지만, 매번 실패의 무게는 그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그렇다고 직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개선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회사로부터 모든 작업자에게 개인 안전 장비를 지급하라고 요청하였으며, 작업자들에게 착용 의무를 지시했다. 

종대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의무적으로 그네식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방진마스크를 사용하라고 지시했지만, 노동자들은 그의 요구를 번번이 무시했다. 

그들은 안전벨트가 작업 중에 걸리적거리고, 무거운 장비를 몸에 착용한 채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방진마스크 역시 호흡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외면받았다. 

특히 무더운 날씨에는 두꺼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다는 불평이 많았다. 

"이렇게 불편한 장비를 왜 착용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며 그의 지시에 반발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일부는 그가 현장 경험이 부족하여 현실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의 지시를 따르는 것을 비현실적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그의 요구가 오히려 작업 효율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느끼며, "이 장비들 때문에 일을 더 느리게 하게 되면 오히려 우리에게 손해가 아니냐"는 불만을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진심 어린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그를 현장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리자, 현실을 모르는 사람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는 무지에서 오는 반발이라고 판단하고 1달에 1번은 의무교육을 시행하였으며, 매일 아침 작업 시작 전 짧은 안전교육을 시행하는 등 나름으로 열심히 노력하였다. 

하지만 작업자 누구도 그를 따르지 않았으며, 회사에서도 그런 그를 곱게 보지 않았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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