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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anasu Apr 11. 2024

추세에서 어긋난 듯한 날

2024.4.10 vs. 전남 @수원월드컵경기장


지난 청주전 극적인 승리로 3위를 기록하고는 있지만 경기력에 대한 우려가 많다. 주중 수요일이자 공휴일에 열리는 홈경기에 이전과 다른 기대감을 고양시킬 이유는 없었을 거라고 본다. 다행히 벚꽃 잎이 다 사라지지 않았다. 경기 결과로 안정이 파괴될 수 있는 가능성만 제외한다면 야외의 에너지를 흡입하기에 좋은 날이다. 아니, 기꺼이 그 파괴마저도 감수할 수 있는 따뜻한 봄날이다.


전반 3분 툰가라의 미친 드리블의 끝에서 첫 골이 터졌다. 확인 결과 전남 수비수의 자책골로 기록되었지만 수원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 골을 기록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직 기뻐할 만큼의 예열이 안된 상태라 그런지 응원석은 약간은 어색하게 골의 기쁨을 누렸다.


오늘 경기 쉽게 가는 건가 안심할 찰나 곧바로 전남의 동점골이 터졌다. 많은 수의 수비수에도 불구하고 전남 박태용 선수를 자유롭게 놔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너무나 간결하고 여유롭고 정확한 슈팅이었고 골을 넣은 후 N석의 수원팬들에게 도발하는 모습을 치켜볼 수밖에 없었다.


불안감이 고조되어 가던 순간 전남의 두 번째 골이 터졌다. 수비가 불안하다는 인상을 계속 받아왔던 터라 예견된 일이 벌어지듯 침착하게 슬픔을 감수한다. 전반을 무승부로만 끝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하나의 목표로서 자리 잡힌다. 그런데 한참 동안 경기가 재개되지 않는다. 주심이 VAR실과 확인 작업을 하는 듯했고 이윽고 전남의 골은 업사이드 판정으로 취소되었다. 이 순간이 아마도 이날의 경기 흐름을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거대하고 환상적으로.


후반전에 무려 4골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슈팅을 너무 아끼는 팀이라고 비난해 왔건만 손석용과 이시영의 골은 지체 없는 판단으로 최적의 타이밍에 슈팅을 선택한 결과였다. 올해 처음으로 알게 된 이 두 선수의 멋있는 골이 수원이라는 팀에 큰 의미를 선사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팀이 거듭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시그널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난번 청주전에 팀을 구해낸 김현은 오늘도 머리로만 두 골을 넣었다. 그가 첫 번째 골을 넣기 전 골문 옆에서 여유롭게 물을 마시며 카즈키를 쳐다보는 모습을 지켜봤다. 저렇게 여유 부리다 늦게 합류하지는 않을까 우려했지만 그 이유로 인해 전남 수비수들이 김현을 일찍부터 마크하지 못했고 김현은 불편한 자세에서도 기어코 머리를 갖다 댔다. 두 번째 골도 카즈키의 코너킥으로 출발했다. 두 선수가 무수한 연습을 통해 이 상황을 시뮬레이션해왔을 거라고 짐작하게 된다.


작년 빅버드 무승 행진 속에서 뜬금없이 울산을 이겼던 날처럼 그간의 데이터로는 예상할 수 없는 결과가 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수원이 다섯 골을 넣은 경기를 본 적이 있었던가. 난무하던 백패스와 무기력한 경합에 대해 욕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이것이 하나의 예외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누구나 안다. 다음 경기가 끝난 후 오늘은 기쁨은 잊은 채 이전과 똑같은 비난의 말들을 선수단에게 퍼부울 지도 모른다. 진 경기만큼 이긴 경기에 대해서도 복기할 줄 아는 팀이기를 바란다. 영구적으로 이날을 재현하는 팀이 되려고 애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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