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산책하거나
여행 가거나
TV, 신문 보지 않거나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면
그 어떤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일에 열중하면
세상사 시름 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도道가 아니라
깨달음이 아니라
그저 물리적 간격이다.
철학하는 자세
과학가의 태도일 뿐이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강 건너 불구경하면
자기 일 아니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큰스님쯤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짜다.
당장 자기 아이가 호랑이굴에 떨어졌을 때도
부처님 미소 지으며
고요히 앉아 있을 것인가?
내 나라가 강대국 침공에 불바다 되었는데
가부좌 틀고 염불이나 욀 것인가?
불법 무면허 운전자가 운전대 잡고 폭주하는데
승객석에 앉아 우아하게 기도나 할 것인가?
사랑하는 그가 알코올 혹은 마약으로
자신 망치고 무너져 가는 것에
가슴 치지 않을 도리 있는가?
지금 경복궁이나 숭례문
소광리 아름다운 금강소나무숲 불타고 있다면
유유자적 이 순간이 즐겁겠는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바보이거나 사이코패스다.
점령군 군홧발에 국토 짓밟히고 있다면
우리 가슴 갈가리 찢기는 게 맞다.
죄 없는 이가 도륙당하고 있다면
자기 일 아니어도
지옥 경험해야 마땅한 것.
나라가 강점되었다면
울분 토하는 게 인간 도리.
전쟁터에서 나 홀로 독야청청하고 있는가?
세상에 전쟁 아닌 일 없다.
말하건대 깨달음은 돌부처 되는 일이 아니다.
그대 사소한 결정 하나가
누군가의 생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내 생각
작심
눈빛 하나가
세상을 낭떠러지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러시아를 보라.
우크라이나는 어떤가.
영국의 EU 탈퇴는 또 무엇인가?
10. 29 참사 때 기동대는 어디 있었는가?
반짝반짝 빛나던 코리아는 지금 어디 있는가?
리더의 태도 하나에 우리
죽기도 살기도 한다.
멀리서 기웃거리기만 하는 ‘너’
자기 삶에만 찰싹 붙어있는 ‘나’
그리하여 서로 만나지 못하는 우리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자.
세상 한복판에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