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때 얘기다. 첫 출근 날, 같은 부서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데 바짝 얼어 있는 나를 보며 지나가는 다른 부서 사람 몇몇이 새로 온 신입이 귀엽고 예쁘다며 칭찬해 주었다. 나의 직장은 근속이 길어 신입이 흔치 않기 때문에 신입을 반겨주는 분위기다. 그런데 내 앞에 앉아 있던 선배가 옆사람에게 나를 보면서 귓속말을 하는 거 아닌가. 무시하고 밥을 먹으려 하는데 나와 비슷한 연차의 신입이 그들에게 물었다. "선배님들, 저만 빼놓고 무슨 얘기하세요~" 그러자 내 앞의 선배가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했다. "아니~ 난 얘가 예쁜지 모르겠다구. 그 얘기했지. 호호호."
같은 팀으로 묶여 있어서 나는 그들과 매일 만났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그들과 매일 얼굴을 보고 매일 차를 마시고 밥을 먹었다. 누구 하나 친절하게 업무를 알려주지 않았다. 알지도 못하는 일을 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더욱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나보다 족히 10~20년은 많은 경력을 가진 그들의 수다 속에서 힌트라도 주워가며 일을 쳐내야 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의 비아냥 거리는 말투와 차가운 시선에 노출될수록 나는 더 작아져갔다. 내가 더 열심히 더 잘하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맡은 일 이상의 노력을 했다. 더 많은 일을 맡아서 하고 더 많은 친절을 선사하려 했다. 하지만 예상되는 결말대로 내가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더 많은 것을 뻔뻔히 요구했다. 그들에게 내가 베푼 호의는 호의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호구였기 때문에.
나는 좋은 관계를 만들고자 호의를 베풀었다. 그런데 왜 호의를 베풀수록 관계는 더 어그러졌던 걸까? 호의는 동등하거나 내가 우위에 있을 때라야 호의가 된다. 이등병이 사단장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을까. 신입사원이 사장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을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을까? 위계가 있는 관계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우리는 호의라고 말하지 않는다. 호의는 동등한 관계에서 베푸는 친절이다.
자기들끼리 깔깔대는 그 무리 속에서 한동안 외로움을 느끼던 나에게 다행히 다른 부서의 동년배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찾아왔고, 그 친구들과 가까워면서 나의 외로움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시간이 지나 부서가 개편되면서 차가웠던 부서 사람들과도 멀어지게 되었고 연차가 쌓여가며 좋은 동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학창 시절을 비롯해 여러 집단에 속해 있었던 시간 중 그때만큼 적응하기 어려운 때가 있었나 싶다. 그들은 별로였고 나는 도움이 필요한 신입이었다. 불행은 예정된 것이었다.
누구라도 힘들어할 만한 상황이었다. 지금의 나는 신입 때 만났던 그들이 별로였음을 안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내가 어딘가 부족해서, 즉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들이 나를 그렇게 대한다고 생각하며 문제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로 귀인 했다. 나는 왜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을까? 왜 내가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들이 나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데도 나는 왜 대항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호구가 되기를 자처한 걸까?
[관계를 읽는 시간]에서 정신과의사인 저자 문요한은 '바운더리'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그는 바운더리란 인간관계에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게 하는 자아의 경계이자, 관계의 교류가 일어나는 통로라고 말한다. 나의 바운더리는 너무 연약하고 희미했다. 나는 나보다는 남에게 주의를 두고 남을 돕느라 나를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바운더리 이상이 생긴 사람들은 너무 퍼주거나 너무 경계하거나 너무 통제하려 든다. 나의 경우는 너무 퍼주는 타입이었다. 이런 바운더리 이상은 왜 생기는 걸까. 짐작했겠지만 바운더리 이상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 발달해야 할 애착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어린 시절, 가정을 돌보지 않고 밖으로 나도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가 마음에 들리 없었던 어머니는 자주 심하게 다투셨다. 설상가상으로 형편도 넉넉지 못했다. 아버지의 월급은 아버지의 병원비로 상당수 지출되었고 모자란 생활비를 어머니가 뜨개질이나 소품 만들기 따위의 각종 부업으로 충당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먹고살기도 힘든 형편에 장난감이나 책 따위는 사치였다. 엄마는 집안일을 하지 않을 때면 내내 앉아서 무표정한 얼굴로 하루종일 뜨개질을 했다. 표정 없는 엄마의 얼굴 앞에서 나는 놀아달라는 말도, 뭘 사달라는 말도 하지 않는, 아무런 요구가 없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남부끄러워 어디가서 말 못하는 고민을 오직 딸에게만 터놓는 엄마의 친구이자 보호자로 살았다. 엄마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남동생을 돌보는 착한 누나로 살았다. 나는 아이로 살지 못했다. 형제의 부모, 부모의 부모 또는 친구로 살아야 했다. 이런 유년기를 거쳐 어른이 된 나는 어느새 누군가를 돕는 것으로만 존재가치를 느끼게 되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나 자신의 욕구에는 일종의 죄책감 마저 들었다.
신입 때 내가 호구가 되어버린 분기점을 생각해 본다. 그들은 처음부터 친절하지 않은 태도로 나를 대했고 그런 그들과 애정 어린 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들에게 그토록 맞추려 했을까. 나에게 심지어 적대적인 제스처를 보이는 사람에게도 나는 왜 애써 맞추려고 했던 걸까.
어린 시절 성숙한 양육자에게 온정적인 돌봄을 받은 사람은 바운더리가 건강하다. 돕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고 부당한 일은 부당하다고 말할 줄 안다. 그러나 불안정한 양육환경에서는 아이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돌봄을 베푸는 쪽이 되기도 한다. 자기 욕구를 인식하고 충족할 새 없이 다른 사람들의 요구가 끊임없이 밀고 들어오기 때문에 이런 아이들은 자기를 채우는 방법을 점점 잊는다. 그러면서 바운더리가 건강하지 않은 어른이 된다. 이런 관계의 역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되고 이들은 직장이든 사적인 인간관계든 타인의 욕구에 맞추려 한다. 그러다 착취적인 사람을 만나면 완벽한 한 쌍의 페어가 된다. 한쪽은 더 착취하려 들고 한쪽은 더 퍼주고를 반복하다 퍼줄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관계가 끝이 난다.
어떻게 바운더리를 재조정할 수 있을까. 자신의 바운더리가 어떤 상태인지 아는 것부터 출발하면 된다. 바운더리가 희미한 사람은 타인에게 맞추며 지내왔기 때문에 자신을 잘 모른다. 하루 일과 속에서 자신을 관찰해 보고 내가 어느 지점에서 쾌/불쾌를 느끼는지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게 되면 자신의 쾌/불쾌 지점을 알게 된다. 이런 지점은 사람마다 다른 경우가 많으므로 나 자신이 스스로 경험해 보고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불쾌함을 느꼈으면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불쾌함을 느끼면서 남에게 YES를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에게는 NO를 하고 있는 셈이다. 완곡하고 우아하게 거절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직장은 사실 인간관계를 도모하러 온 곳이 아니다. 일하러 왔는데 마음까지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터에서는 일에 필요한 협조를 얻을 수 있는 원만한 관계 정도면 충분하다. 돈을 벌기 위해 안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있는 곳이 바로 직장 아닌가. 직장에서 친목모임이 없어도 괜찮다. 주어진 일을 적당히 해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옥에서 사회성 좋아봐야 나도 악마 된다." SNS에서 떠도는 명언이다. 만약 내가 있는 일터에서 동료 간에 따스함을 느끼기 힘들다면 굳이 관계형성을 위해 노력하지 말고 그 에너지를 자신을 보살피는데 쓰자. 직장의 누군가가 바깥에서 만났으면 가까이하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이라면 딱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동료에게 겉으로는 나이스한 태도를 보낼지언정 내 마음까지 속이려 들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