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손익계산서

마이너스 관계는 이제 안녕

by 조이

살다 보면 사람 때문에 웃기도 하고 사람 때문에 울기도 한다.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 학교 그만두고 싶다는 한숨 섞인 하소연의 원인은 대개 인간관계 스트레스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닌가. 자연인이 되어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거나 방구석에서 은거하는 히키코모리라도 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살면서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


이러한 '관계'들은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규정하는데 영향을 준다. 친구 관계를 예로 들어볼까. '친구'는 가족 외에 처음 경험하게 되는 관계다. 학생 때는 같은 반 친구들과 일 년 내내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같이 밥 먹고 같이 매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다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포켓몬스터 주제곡처럼 단순하게 '우리는 모두 친구'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같은 반 아이와 진짜 친구는 다르다. 어른들은 '같은 반 친구니까 사이좋게 지내렴.'이라고 으레 이야기하지만 나의 선택과 무관히 그저 같은 반이라는 이유로 친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같은 반 아이' 속에서 나와 잘 맞는 '내 친구'를 찾아가고 인식하는 과정 중에 흐릿하던 자기감이 조금씩 형성되어 간다. 청소년기에는 자기감이 약해서 실제로도 자기가 누군지 잘 모르다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하나씩 경험으로 알게 되므로 또래 관계는 자기감을 형성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가족, 친구, 연인, 직장동료와 먼 친척까지. 관계는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 자기감, 자존감, 개인의 행복도는 물론 더 나아가서 건강과 수명에까지 영향을 준다. 관계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데 문제는 이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관계로 인해 우리는 때때로 깊은 상처를 입는다. 특히 그 대상이 나에게 중요한 상대일수록 그 상처는 더욱 깊고 아프다.




어떻게 하면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덜 받을 수 있을까? 상처가 깊고 깊은 사람들은 히키코모리처럼 사회로부터 아예 물리적으로 고립되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직장생활도 하고 사회 속에 소속은 되어 있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이런 방법들은 상처받을 가능성을 차단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인간은 관계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또 관계로 인해 사랑과 기쁨을 느끼는 사회적 동물이다. 상처받을 가능성을 차단하려다 사람 사이의 온정과 사랑마저 느끼지 못하는 차가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도 상처를 덜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칙은 단순하다. 자신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관계를 맺으면 된다. 나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마이너스 관계는 그만두고, 나 자신에게 득이 되는 플러스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쯤에서 자신의 인간관계를 한번 상기해 보자. 최근에 만났던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죽 떠올린 후,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의 거리가 어디쯤인지 생각해 보라.



[관계의 동심원]


[관계의 동심원]에서 정중앙의 빨간 점은 자기 자신이다. 나 자신보다 나에게 가까운 존재는 없으므로 빨간 점은 오직 자기 자신이다. 나 자신 외에 타인들을 빨간 점 주변으로 내 마음에서 느끼는 거리감에 따라 점 찍어보자. 이 거리는 만난 기간에 비례하지 않아도 되고, 가족이라도 멀리 찍을 수 있다. 알게 된 지 오래 안되었는데 볼 때마다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직장동료가, 10년 지기지만 만날 때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친구보다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할 수 있다.


관계는 다양하다. 나에게 기쁨이나 편안함을 주어서 좋은 관계도 있고, 금전이나 좋은 정보 같은 실제적인 이득이 있어서 좋은 관계도 있다. [관계의 동심원]은 대상이 객관적으로 좋고 나쁜지를 묻기보다 나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는지 마음의 거리를 주관적으로 생각해 보기 위한 도구다. 때문에 같은 대상을 두고서도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라서 대상에 대한 거리감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물질적인 성공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그런 정보를 주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깊고 친밀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서로 마음을 터놓거나 깊게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할 것이다.


빨간 점 근처에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위치한다. 가족 외에 여기에 자리한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영혼의 단짝'일 것이다. 서로를 깊이 아끼고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영혼의 단짝'에 대한 동경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이런 관계는 만들기가 쉽지 않다. 평생에 걸쳐 한 명이라도 이런 사람을 만난다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영혼의 단짝'만이 진정한 관계이고 나머지는 다 스쳐가는 사람으로 치부하지 말고 관계를 보는 관점을 넓혀보면 다양한 사람과 즐거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런저런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더 많아 나를 기쁘게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맛집지도를 알고 있어서 같이 이것저것 먹으러 다니면 즐거운 친구, 회사에서 서로 격려하며 커피 한잔 같이 하는 동료, 운동을 좋아해서 같이 러닝이나 등산을 할 수 있는 친구, 아이끼리 서로 친해서 같이 데리고 놀러 가기 좋은 아이친구엄마. 상대방의 단점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장점에서 오는 기쁨이 더 크다면, 관계의 손익계산으로 봤을 때 흑자다. 나와 꼭 맞지는 않더라도 나에게 크고 작은 기쁨을 주는 플러스 관계는 다양하다.




상처는 어떤 대상에게 내 마음속의 거리보다 지나치게 더 많이 마음을 열었을 때 생긴다. 관계가 주는 내 마음의 거리감에 따라 그만큼만 마음을 열면 관계를 잘 유지하면서도 상처받을 일이 현저히 줄어든다. [관계의 동심원]에서 초록색 원 정도에 위치한 직장동료가 있다고 하자. 서로 협업을 원만하게 잘하고 나를 잘 도와주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는 깊이 나눈 적 없는 직장동료를 불러다 놓고 '영혼의 단짝'에게나 할 법한 크고 깊은 내 개인사를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당황스러워하는 동료의 표정을 보고 아차 싶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호감을 주는 대상이 있다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마음을 한 걸음씩 열어보자. 이제 막 알기 시작한 사람을 영혼의 단짝이라 기대하고 들떴다가 그렇지 않음에 실망해서 상처받는 사람은 관계에 서툰 사람이다. 마음을 열어야 할 사람에게 열지 못하고 엉뚱한 데다 열면 상처를 받는다. 내 마음을 소중히 해 줄 사람에게, 나와 잘 맞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열어야 한다.


이해관계로 나에게 이득을 주지만 그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관계에서는 그 정도로만 마음을 열면 된다. 직장동료로 만나서 업무적인 대화를 원만히 하고 협업을 원만히 할 수 있으면 직장동료로서 너무나 훌륭한 관계다. 마음이 허락하는 거리감을 무리하게 좁히면 부작용이 생긴다. 직장에서 찐친을 만들려다 상처받는 사람을 정말 많이 보았다. 관계는 언제나 자연스러움이 뒤따라야 한다. 만나면 내 마음이 저절로 스르르 열리는 그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면 된다. 만약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면? 심플한 기준이 여기 있다. 어떤 사람을 두고 생각해 보라. 만날수록 좋은지, 아니면 만나면 만날수록 별로인지.




만약 여태껏 만나오긴 했는데 막상 [관계의 동심원]에 놓으려고 보니 어디 두기도 애매한 사람이 있다면? 도저히 초록색 원 안쪽으로는 놓지 못할 정도로 나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관계는 접는 것이 좋다. 관계를 접는다고 해서 어린 아이들처럼 절교선언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적대적으로 다투고 헤어지는 방법은 꼭 필요한 경우엔 그렇게 해야겠지만 리스크가 크고 그 과정에서 피곤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자연스럽게 서서히 멀어지는 '조용한 손절'이 부작용을 줄이면서 멀어질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만약 상대방이 거리둠을 눈치채고 이유를 묻는다면 답을 해줄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마이너스 관계'인데 관계를 끊기 어려운 경우다. 친구나 동네 이웃 정도의 관계라면 마이너스 관계임을 알았을 때 거리를 두거나 단절해 버리는 일이 비교적 쉽다. 하지만 '가족'은 다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관계는 '천륜'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그 무게감이 상당하다. 좋은 가족관계는 내 평생에 힘이 되는 가장 사랑스러운 대상이 되는가 하면, 나쁜 가족관계는 평생을 시달리게 하고도 개선되지 않아 그야말로 관계지옥을 초래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폭력을 일삼던 부모가 자식이 장성하면 저절로 각성해서 착한 부모가 될까? 뼈를 깎는 노력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이 부모는 평생 같은 태도로 일관할 것이다. 어릴 때는 폭력으로, 커서는 물질적이거나 정서적인 착취로 자식을 괴롭게 하는 부모들은 얼마든지 있다. 남편이든 부모든 자식이든 시부모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관계 지옥이라고 부를 정도의 시달림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덫에 빠진 것 같은 가족관계에서 사람들은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동시에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가족관계에서도 나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관계를 맺을 권리가 있다. 반복되는 굴레에서 괴로워하기를 잠시 멈추고 냉정하게 저울질해 보라. 절연을 하든 이혼을 하든 단절하는 게 낫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다. 단절에는 큰 부딪힘이 따르므로 상대의 강렬한 저항과 원망에 대해 단단히 각오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폭언을 일삼는 강압적인 시부모와 절연하려면 이혼을 불사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단절에 따른 스트레스를 견뎌야 한다. 하지만 관계를 단절하는데 필요한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싫고 단절 후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다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고압적인 태도의 시부모가 당연히 싫지만 관계를 끊는 데에는 더 큰 스트레스가 따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관계를 유지하되 최대한 마음의 거리를 두는 방법도 있다. 만나는 횟수를 줄인다든지, 꼭 필요한 대화 외에 말을 섞지 않는다든지, 폭언을 하면 바로 집으로 가버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안전한 바운더리를 지키며 최소한으로만 관계를 맺는 것이다. 제멋대로인 직장동료에게는 업무상 꼭 해야 할 말만 하고 신경을 끈다든가, 자기 필요할 때만 전화해 나를 감정쓰레기통으로 쓰려는 친구의 전화는 무시하고 문자로만 짧게 응답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관계란 결국 내 마음이 편한 관계다. 이것은 결코 이기적이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큰 어려움에 빠져서 슬퍼할 때는 시간을 내서 그 친구를 몇 번이고 위로하고 지지하는 쪽이 마음이 편하다. 그다지 친밀하지 않은 직장동료라도 일이 안 풀려 고생할 때는 간단히 격려라도 건네는 쪽이 마음이 편하다. 폐지가 가득 실린 리어카를 밀고 가는 할아버지와 같은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는 같이 밀어드리는 편이 내 마음이 편하다. 나에게 득이 되는 관계를 추구하라는 말은, 여러 관계속에서 얼마든지 사랑을 주고 나누지만 나쁜 관계로 인해 착취당하고 상처받지 않도록 나 자신을 보호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관계는 어렵지만 어떤 면에서는 또 단순하다. 내 마음이 저절로 열리는 사람에게 천천히 마음을 열고, 내 마음을 닫히게 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닫고 대하면 된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의 마음을 '닫히게' 하는 사람과도 내 마음을 '다치지' 않고 최소한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관계를 끊기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서 간신히 유지만 하기로 한 관계에서는 애쓰지 말고 최소한만 하자. 마이너스 관계에 소모되던 에너지를 아껴서 플러스 관계를 확장하는 데 사용해 보면 어떨까.


내 마음은 소중하다. 내 마음을 소중히 여길만한 사람, 나와 잘 맞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주자. 맛있는 음식 앞에서, 멋진 풍경 앞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음엔 꼭 같이 와야겠다고 마음먹는, 온기 넘치는 인생을 살자.



ⓒAnna, 출처 adobe 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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