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상처받은 치유자

상처 입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by 조이

당신은 자신과 친밀한 사람인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던 어느 노래처럼, 한 사람 안에는 여러 개의 '나'가 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멀고 가까움,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나'와의 관계에서도 좋고 나쁜 관계가 존재한다. '나를 보는 나'와 '실제의 나'는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자기 자신과 나누는 대화가 지지하고 수용하는 쪽으로 흘러가는지 힐난하고 채찍질하는 쪽으로 흘러가는지를 보면 자기 자신과 얼마나 친밀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평생 다른 사람을 돌보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잘 돌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불친절하게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흔히 남에게는 후한 평가를 해 줄 만한 일도 자기 자신에게는 유독 엄격한 잣대를 대곤 한다. 가뜩이나 경쟁사회에 내몰려 바쁘게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나마저 가혹할 필요는 없는데도 말이다.



이 세상에서 나와 평생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하기로 단 하나의 존재. 그것은 오직 나 자신이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따뜻한 지지를 받는 사람의 마음은 건강하고 온기가 넘친다. 나도 나 자신을 수용하지 못하고 미워했던 시절이 있었다. 해야 하는 것을 하느라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기를 반복하다, 종국에는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도 잊어버리고 살았던 나. 나는 이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물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다만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에는 에너지를 쓸데없이 많이 쓰지 않으려한다. 힘 줄 데에 힘주려면 다른 영역은 힘 빼고 '대충'하는 완급조절이 필요한 법이니까.


나는 지금은 부모님과 '잘' 지낸다. 안부를 묻고 병원을 동행하며 함께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과거에 비해 달라진 점은 나는 이제 부모님 속의 어린아이를 본다. 나의 부모님은 연약한 사람들이었다. 그분들은 내가 원하는 돌봄과 사랑을 주기에는 너무 불안하고 미숙한 분들이었다.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해 마음이 시린 사람이 타인에게 지속적으로 사랑을 주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폭력과 방임 속의 그 과거에서 나는 나 자신과 함께 나의 부모님을 연민한다. 농사지어 가족들 입에 풀칠하느라 하루도 쉬지 못하시는 할아버지와 나들이 한 번 가본 적 없던 나의 아버지. 휴일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나들이를 가야 된다던 아빠의 그 성화 속에서, 아버지가 그리고 싶었던 가족의 그림을 본다. 아버지와의 끊임없는 불화와 지긋지긋한 생활고 속에서 우울한 표정으로 내내 부업 뜨개질을 하던 엄마의 모습에서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엄마의 의지를 본다. 연약함 속에서 반짝하고 빛을 내던 잠깐의 사랑을 발견한다.


그렇다고 그분들에 대한 연민이 내가 경험한 학대나 방임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아프고 슬픈 과거는 그대로 남아있다. 다만 나는 이제 안전한 바운더리를 두고 그분들로 하여금 그것을 지키도록 요구한다. 부모님의 불쾌한 언사에는 불쾌함을 표현하고 내가 바라는 것을 표현한다. 나를 감정쓰레기통으로 대하려 하면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병원 동행 및 부모님께 필요한 지원은 나 혼자 맡아서 하지 않고 남동생과 나누어서 하고 때로는 동생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부모의 부모나 부모의 친구가 될 필요도, 남동생의 부모가 될 필요도 없음을 아는 지금은 가족 관계에서 훨씬 홀가분하다. 나는 어떤 관계에서든지 나의 바운더리를 지킬 권리가 있다.


어린 시절 학대와 방임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파생된 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었지만 덕분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상처를 입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통제할 수 없었던 불행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흘려버리자. 곰곰이 따져보면 이쪽에서 채우지 못한 것 이상으로 다른 쪽에서 많이 채워졌음을 알게 된다. 나의 소울메이트인 남편과 사랑스러운 자녀들, 소중한 친구들, 좋은 상담선생님은 나의 든든한 지지자며 자원이다. 또, 실제로 뵌 적은 없지만 법륜스님과 임상심리학자 타라 브랙, 정신과의사인 문요한, 정우열 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서적과 영상을 통해 큰 위로와 팁을 얻었다. 개인의 영달을 넘어서서 사람 자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분들의 글을 접하면 그 속에서 따스한 애정이 느껴진다. 가깝고 먼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무엇보다 나 자신의 사랑으로 나의 마음은 조금씩 치유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웃고 울고 즐거워하고 아파하며 살아간다. 저마다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나가는 우리들이 이런저런 모습과 역할로 만나게 되는 오늘 하루가 참으로 오묘하다. 카페에서 커피를 전하며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라는 점원의 당부, 막히는 좌회전 신호에 내 차를 끼워 넣어주는 어떤 차, 만원이 간당간당한 엘리베이터에서 내가 탈 때까지 열림버튼을 눌러주는 어떤 사람의 손. 나는 매일의 순간 속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는 따스함을 느낀다. 따뜻한 말 한마디, 친절한 눈빛 한 번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삶을, 사랑을, 용서를 배우는 연약한 중생일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금 이 순간 평안하기를 빈다.

우리 모두가 지금 여기서 평안하기를 빈다.


'로저 키이스'의 시 [호쿠사이가 말하기를]로 이 글을 마무리해볼까 한다.

호쿠사이가 말하기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
그가 말하기를,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라
그가 말하기를, 보는 것에는 끝이 없다네
그가 말하기를, 늙어감을 기대하라
그가 말하기를, 계속해서 변화하라

그러면 진정한 당신에 더 가까이 갈 것이니
그가 말하기를, 막힌 곳에 이르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흥미가 있는 한 자신을 반복하라
그가 말하기를,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하라
그가 말하기를, 계속해서 기도하라

...(중략)...

삶이 당신을 통과해 사는 것이 만족이다
삶이 당신을 통과해 사는 것이 기쁨이다
삶이 당신을 통과해 사는 것이 만족이며 강함이다
삶이 당신을 통과해 사는 것이 평화이다

그가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사랑하고 느끼고, 삶이 당신의 손을 잡도록 허용하라
삶이 당신을 통과해 살도록 허용하라


ⓒSternfahrer, 출처 adobe 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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