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
새 생명이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그 소중한 생명에게 가장 근사한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원 하나도 신중하게 고르기 위해 여러 글자를 펼쳐놓고 고민하고, 다른 이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죠. 작명소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무속의 힘을 빌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만큼 ‘이름’은 한 명의 삶을 결정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합니다. 훗날 본인의 삶을 바꾸기 위해 이름을 개명하는 이들도 있죠. 그만큼 인류에게 ‘이름’을 붙이는 일은 다신 없을 중대사이자 신성한 의식처럼 여겨집니다.
사람의 이름뿐만 아니라 각종 사물, 기관, 단체, 집단, 사회 현상에도 다양한 이름이 붙여집니다. 그러나 세상엔 이름을 빌려, 이름이 잘못 붙여져서, 이름이 붙여지지도 않아서 가해지는 탄압과 부조리 또한 존재합니다. 이름을 통해 어떤 존재는 소외되고 배척당하며,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 불평등과 혐오가 더욱 가시화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번 교지는 그 무엇도 확대되거나 축소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명명하고자 하는 마음을 모았습니다.
86집은 이러한 ‘이름’에 의문을 던지는 호입니다. ⌜당신의 수강신청이 어려운 이유⌟에서는 ‘대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한 국내 대학의 현 세태를, ⌜지금부터 불편한 정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에서는 대학 내 ‘중립’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정치를 혐오하고 인권 자치기구들을 억압하는 학생 사회를 고발합니다.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혐오에 가려져 자꾸만 사랑이란 이름을 잃게 되는 사랑을 다시금 축복하고, ⌜가족, 같은 세상⌟은 좁은 의미의 가족 관념에서 벗어나, 한국에서 더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중받길 바라며 ‘생활동반자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기고 면에선 ⌜‘고감도’ 해부하기⌟는 ‘느좋’이라는 표현어로 이뤄지는 취향의 계급화에 의문을 던지고, ⌜나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고: 자기애의 새로운 바람⌟은 ‘자기애’의 방식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음을 고찰하며, 어떤 시대와 마주하더라도 결국 모든 모습의 ‘나’를 사랑할 것을 강조합니다.
사회 면의 ⌜소멸을 위한 존속⌟은 ‘여자대학교’의 필요성과 의의를 다시금 되새기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착취⌟는 돌봄이라는 노동과 착취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잘못 포장되었음을 지적합니다. ⌜군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국민에게 애국이란 명분으로 국방의 의무를 부여하였으나 그들을 지켜주지 않는 나라를 비판하고, ⌜내일을 바꾸는 거리의 외침⌟은 살아가기 위해, 연대하기 위해 거리에 서는 이들과 그 이유를 다시금 아로새깁니다.
이름은 너무 소중해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기도 합니다. 학창 시절의 우리는 서로의 이름이 적힌 명찰과 스티커를 교환하며 애정을 나눴습니다. 내 이름이 적힌 명찰, 명함, 학생증, 출입증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기억의 증거로 남겨두기도 합니다. 손으로 쓰이고 입으로 불리며, 본인만의 유일하고 온전한 이름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합니다.
동국교지는 이번 호를 통해, 서툴지만 우리의 시선으로 세상의 많은 것들에 다시 이름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혐오가 인정되고, 불평등이 가시화되며, 존재와 해결의 필요성이 다시금 사람들에게 환기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모든 존재가 본인의 옳은 이름을 찾아갈 수 있기를 염원하며 우리는 86집을 펴냅니다. 기억과 의식의 중심에 서있는, 우리가 끊임없이 되새기며 생각할 무언가, 누군가의 수많은 ‘이름’. 그렇기에 우리는 절대 ‘이름은 비워둘 수 없습니다‘.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41대 편집장 이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