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글] 민지
묵찌빠 아저씨를 아는가? 올해 상반기 많은 사람들에게 뮤지컬을 알려준 효자 밈이다. 이밖에도 ‘비싼 자동차 관심없어 최고오급 시가도!’, ‘복화술 밈’과 같은 뮤지컬 밈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밈의 주인공은 최재림 배우다. 그 영향으로 뮤지컬 ‘시카고’ 공연 중 그가 출연하는 회차는 전석 매진되는 등 대중픽의 효과를 톡톡히 드러냈다. 뮤지컬의 대중화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많은 사랑을 받는 것에 비해 뮤지컬 산업은 그만큼의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뮤지컬은 본디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과 봐야 한다는 이미지가 강한 장르였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이 바로 높은 티켓값이다. 2012년 11만원이던 VIP석은 해가 지날 때마다 조금씩 오르더니 그로부터 십년이 지난 2022년에 드디어 15만원을 뚫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이제는 뮤지컬 하나 보기 위해서는 족히 17만원은 필요한 시대다. 뮤지컬의 시대가 찾아왔다고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도 과연 그러할까?
뮤지컬은 타 장르에 비해 한 작품을 여러 번 보는 일명 ‘회전문 관객’이 많다. 이들은 같은 공연이라 할지라도 그날마다 배우의 연기 톤, 움직임 등이 다 다르기에 매번 공연장을 찾는다. 비싼 티켓값을 몇 번이고 척척 내주는 회전문 관객이 뮤지컬 산업에서 반갑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하늘을 치솟는 듯한 가격에도 계속해서 충성도를 보이는 회전문 관객들에게도 마지노선이 있다.
2022년 하반기, 이전까지의 암묵적인 상한선이었던 ‘VIP석 15만원’이 깨졌다. 15만원도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이때까지 소비자가 용납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VIP석을 16만원에 판매하고, ‘물랑루즈!’가 18만원, ‘베토벤’이 17만원을 제시하면서 뮤지컬계에 큰 바람이 불었다. 또한 ‘오페라의 유령’이 VIP석을 19만원까지 올림에 따라 티켓값이 고공행진하기 시작했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한 번 올라간 값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7월 31일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24년 상반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지난해 동기간 대비 3.3% 감소했다. 티켓 1매당 평균 티켓 판매액은 지난해보다 95원 소폭 상승했지만, 공연 1회당 평균 티켓 예매수는 22매 줄어들었다. 티켓 가격의 상승이 평균 티켓 판매액을 증가시켰으나, 고가의 티켓 가격으로 인해 예매 수가 감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게다가 회당 티켓 판매액도 15% 가량 줄었다.
뮤지컬 산업은 공연예술이기 이전에 하나의 사업이다. 그 점을 고려했을 때, 수익성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제작사들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뮤지컬 산업이 잘 되기를 원했다면 이때다 하고 티켓값을 올릴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공연을 더 좋아할지를 고민했어야 했다. 오히려 돈을 더 벌고자 한 욕심이 스스로를 망친 셈이다.
아무리 티켓값이 비싸다 해도 그에 응당하는 공연 퀄리티라면 넓은 마음으로 돈을 지불할 관객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에서는 값이 퀄리티를 보장하지 않는다.
상기한 이미지는 같은 극장에서 다른 시기에 열린 동일 뮤지컬의 좌석 배치표다. 2018년과 달리 2012년은 1층 중앙과 사이드 블록을 나누고 거기서 또 한 단계씩 나눠 VIP석과 R석을 배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18년 공연에서는 1층 VIP석과 R석의 범위를 보다 더 확대했다. 비싼 가격은 물가 상승의 결과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으나, 등급별 좌석의 배치 변화가 필요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작사가 더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한다는 것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관객들은 더 많은 돈을 내고도 더 안 좋은 시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맨 앞자리라고 좋은 것도 아니고, 중앙이라고 좋은 것도 아니다. 결국 좋은 좌석을 결정짓는 것은 각 공연장 내부의 특성이다. 위 사진을 자세히 보지 않아도 둘의 좌석 구분이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공연을 보고 온 사람들이 느끼는 시야는 오른쪽 사진처럼 더 세세하게 구별된다. 2층 맨 앞줄은 VIP석이지만, 난간에 의한 시야 방해가 있다. 관객의 실제 시야를 반영하지 않았기에 동일 등급 내의 다른 좌석에 앉은 사람과 같은 돈을 내고도 아깝다 생각하는 것이다. 뮤지컬 산업이 계속해서 잘 되기 위해서는 관객을 지금보다 더 깊이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방법은 두 가지다. 등급별 좌석의 범위를 줄이거나 티켓값을 내리거나 둘중 하나다.
대극장 뮤지컬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몇몇 배우들이 있을 것이다. 인기 뮤지컬 배우가 다작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고인물 배우들이 무대를 독식한다면 어떨까? 뮤지컬을 1년에 한 두 번 정도 보는 일반 대중은 작품의 인지도와 뮤지컬 업계가 홍보하는 유명 배우를 기준으로 공연을 본다. 이런 흐름에 따라 뮤지컬 업계는 신인 배우를 발굴하기보다 인지도가 높은 배우, 잘하는 배우를 그대로 무대에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뮤지컬 산업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신인 배우에게도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실제로 뮤지컬 시장이 지금까지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2000년을 기점으로 뮤지컬계에 한 차례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다. 당시에는 대놓고 오디션에서부터 ‘세대교체’를 내걸고 새로운 얼굴을 캐스팅하기도 하고, 주연 배우의 언더스터디를 실력 있는 신인에게 부여하면서 무대에 설 기회를 주기도 했다. 과감한 신인 캐스팅을 통해 시장의 5년, 10년을 보장받는 식이다.1)
하지만 현재 한국 뮤지컬 산업의 특성상 신인 배우를 큰 무대에 세우는 것은 부담이 큰 일이다. 한국의 뮤지컬은 대부분 2~3개월간 공연을 진행하는 반면, 브로드웨이에서는 ‘오픈 런’을 한다. 공연 기간을 미리 잡지 않고 관객 평가에 따라 공연을 지속하는 방식이다. 작품이 좋아야만 장기 공연이 가능하다.2) 이와 달리 한국의 뮤지컬은 기간이 한정된 만큼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해야만 한다. 따라서 뮤덕(뮤지컬 덕후)이든 대중 관객이든 모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인기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캐스팅이 공연의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신인 배우 발굴에 힘쓸 제작사는 없다. 업계의 흐름이 이러하니 뮤지컬 세대교체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세계에서 4위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현재 한국 뮤지컬을 향한 기대와 관심은 그 어느 곳보다 더 뜨겁다. 지금 당장은 뮤지컬 업계의 호황기라고 할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조금만 파헤쳐보면 속속들이 문제가 드러난다. 뮤지컬 업계를 먹여살린 회전문 관객이 줄어들고 있고, 높은 티켓값으로 인해 실제 관객의 수 역시 줄어들었다. 스타캐스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신인배우 발굴에 힘쓰며 업계의 지속 가능성을 도모해야 한다.
1) 박정선, 「“유명 배우 원하면서, 뽑지는 말라고?”…뮤지컬 제작사의 딜레마 [뮤지컬 세대교체③]」, 『데일리안』, 2024.03.21., https://www.dailian.co.kr/news/view/1340272/?sc=Naver
2) 양병훈, 「‘멀티 캐스팅’ 도입한 신춘수 감독」, 『한경』, 2017.05.26., https://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7052609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