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하면서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고, 일하다 다쳐도 산재 처리도 못 받고, 마음대로 일자리를 바꿀 수도 없다. 어느 먼 나라 먼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5년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주노동자는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2024년 8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을 통해 필리핀 가사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입국했다. 하지만 이들이 받는 금액은 월 238만 원으로, 30대 가구 중위소득(509만 원)의 절반에 가깝다. 또한 이들은 정해진 날짜에 임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고 파트타임으로 일할 경우 주40 시간 근무가 확보되지 않아 약속된 수준의 급여를 확보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이주노동자는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주노동자의 주거 시설에는 난방시설도, 화장실도 없다. 2020년 12월 경기도 포천에 있는 농장의 숙소용 비닐하우스에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행 씨가 숨진 채 동료들에 의해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속행 씨의 죽음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숙소 문제가 여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는 제대로 된 산업재해 보상을 받지도 못한다. 인권위가 지난 2015년 실시한「건설업 종사 외국인 근로자 인권상황 실태조사」결과, 이주노동자 전체 응답자(337명) 중 17.1%가 건설현장에서 다치거나 병에 걸려도 산재보험으로 치료와 보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건설 현장에서 다친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산재보험 처리를 받지 못한 경우도 67.9%에 달했다. 이에 더해, 산업재해 사망자 수(88명) 중 45.5%(40명)가 건설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였던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도 있을 정도로 이주노동자의 상황은 심각하다.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보장받지 못한다. 현행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은 원칙적으로 이주노동자가 퇴사, 이직 등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사용자의 근로계약 해지, 휴·폐업, 노동조건 위반, 부당한 처우 등 노동자 책임이 아닌 사유로 인해 기존 사업장에서 노동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만 사업장 변경을 허용(외국인 고용법 제25조)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자녀들에게 원활한 삶을 선물해 줄 수도 없다. 이주노동자의 자녀는 '미등록 이주 아동’이라 불리며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 미등록 이주 아동은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정상적인 체류 불가한 상태에 놓여 있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거나,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아파도 병원도 제대로 가지 못한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우리나라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우리나라는 이주노동자를 ‘사람으로’ 수용하고 있지 않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는 핑계로 이주노동자의 의식주는 물론 여러 자유를 침해하고 보장하지 않는 현 실태는 이주노동자를 사람으로 대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2024년 3월에는 한 국회의원 후보가 이주노동자를 사적으로 체포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수사를 받게 된 사건도 있었다. 해당 후보의 유튜브 영상에는 길에서 만난 외국인을 잡아 멱살을 잡고 억류하는 모습이 담겼다. 사법권도 없이 외국인 노동자를 억류한 채 경찰에 신고하고 체류 자격을 확인했다. 이 사건에 대해 해당 국회의원 후보의 행동이 잘했다는 의견이 있었다는 점과, 이 사건 자체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해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주노동자 관련 문제는 더욱 심각성을 띤다.
그렇다고 해서 이주노동자를 무작정 수용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시내 마을버스 운전기사가 부족하다는 서울시는 인력 보충을 위해 외국인 운전기사를 도입했으나 서울시버스노동조합의 반발을 샀다. 서울시버스노동조합은 운전 기사가 부족한 이유는 운전기사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박봉이라며 기존 버스 기사의 처우 개선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기존 산업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아닌 이주노동자 수입을 선택함으로써 근본적인 문제 해결도 하지 못한 채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내국인 노동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친 셈이다. 이제 기존 운전기사들은 노동환경의 처우 개선도 되지 못한 채 외국인 노동자에게 밀려 일자리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외국인 운전기사들은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며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단순히 인력 보충만을 위한 외국인 노동자 수용은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주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우선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 제고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주노동 문제는 단순히 이주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닌, 빈곤에서 비롯된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사람들이 올리는 수입은 가장 가난한 57퍼센트의 수입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12억 명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세상이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왜 굳이 힘들게 남의 나라까지 와서 일하냐고 질타할 일이 아니다. 부가 불균등한 전 지구적 환경에서, 노동자가 임금이 더 높은 타국으로 일하러 와 ‘이주’ 노동자가 되는 것은 사회적 차원의 문제이지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이주노동자가 될 수 있다. 나도 이주노동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 개선과 처우 개선은 당연한 일이다.
법과 정책에 대한 변혁도 필요하다. 우리 헌법 제6조는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에서도, 이주노동자 권리 협약에서도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이 야기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국제법규와 우리나라 현행법이 상충하는 법적 공백으로 인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및 유엔 이주노동자 권리 협약에서는 국적과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한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산재 신청을 하지 못하거나 산재 보험 가입조차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공장에서 일하다 날아온 철판 조각에 눈을 맞은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가 산재 보상 관련 어려움을 겪은 사건이 있었다. 그는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하려다가 사장님에게 ‘산재 왜 신청했느냐’, ‘산재 신청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신청서에 본인 실수로 다쳤다고 써라’ 등의 말을 들었다. 금속 부품 공장에서 일했던 또 다른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는 쇳가루가 날리는 환경 속에서도 회사로부터 면 마스크 한 장을 지급받으며 일해야 했고, 간질성 폐질환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 즉, 국제법상으로는 이주노동자도 내국인과 동일하게 산재 보상을 받아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이주민을 환영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를 배척하는 것이다. –자크 데리다
이 글은 우리나라에서 노동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사람으로서’ 정당한 처우 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다. 또한 정당하게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싶어도 정당하게 체류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비판하는 글이다. 우리나라는 ‘출입국관리법’이나 ‘외국인고용법’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 및 체류와 관련한 법 적 요건이 엄격하여 합법적으로 이주노동자로 정착하기 위한 장벽이 높다. 이에 따라 많은 노동자가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불법체류자가 증가하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내국인 노동자들, 즉 우리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해야 할 때이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이주민을 환영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를 배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주노동자를 수용하는 포용적이고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더 높은 수준의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