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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 Nov 09. 2023

걷고 또 걷다

바보들의 사는 법

,2023년 11.9(목) 오전 4시

탈린 외곽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꽤 큰 호수가 있다.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가다가 한식당을 발견했다. 리뷰가 괜찮다. 떠나기 전 한 번 들를 수 있으려나. 40 여분 걸어 호수에 도착했다. 울름스테(Ulemiste)라는 인공호수다. 탈린의 식수를 공급하는 상수원이다. 펜스로 둘러쳐 있다. 가까이 접근해 사진을 찍고 싶은데 웬걸 접근이 안 된다. 검색해 보면 공원이 있다고 하는데 접근불가다.  호수 둘레의 절반 이상을 돌았다. 확인해 보니 15킬로미터. 울창한 숲과 산책로는 있는데 호수로의 접근이 안 된다.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철저하게 보호하는 것 같다.  하이킹을 제대로 했다. 호수에서 1킬로 정도 거리에 런던아이 같은 대관람차가 보인다.  호수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관람하라는 이야기인가 보다.

사나흘째 비가 오락가락한다. 해를 구경하기 힘들다. 원래 이맘때 날씨가 그런지 어쩌다 그런지는 알 수 없다. 간간히 비도 흩뿌린다.  오늘도 방수 고어텍스가 제 몫을 한다. 정말 이 옷은 가져오기를 잘했다.
숲길과 산책로를 걷고 또 걸었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도 많았다. 펜스 너머로 호수가 보인다. 아쉽지만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돌아선다. 숙소 직원에게 물어봐야겠다.


접근이 불가한 호수.  산책로는 계속 이어진다



가끔 생각해 본다. 물어보고 공부하고 사물을 접하는 것, 그리고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맨 몸으로 부딪히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현명할까?

당연히 과거의 축적된 경험을 숙지하고 가는 게 더 합리적이라 여겨진다.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책을 보면 보통사람들과 다른 특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려고 무작정 동쪽으로 계속 걸어가 결국 출발지로 되돌아온 사람.
실제로 탐험가 마젤란이 이렇게 시도했다.  세상에 이미 나와 있는 발명품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계속 연구하는 발명가, 단어를 자기 만의 방식으로 바꾸어 부르는 사람 등

기존의 관념이나 상식 등에 비추어보면

미련하거나 바보같은 행동이다.  한심해 보인다.   저런 것에 시간을 낭비하다니.
이 사람들은 세상과 단절되어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한다. 고독하고 외롭고 은둔형이다. 한마디로 ‘외골수’들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타인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상식에 의존하며 관습에 의존하며 단조로운 생활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간 것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모두 내가 직접 확인한 사실은 아니다. 누군가가 전해준 지식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짧고 파편적이고 한정된 경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식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존하는 지식은  과연 믿을 만 한가?

뉴스나 누군가가 전해주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은 지식의 전달자가 진실을 말할고 있을 것이라는 신뢰에 기초한다. 그 신뢰의 기초가 무너진다면?  관습은 어떠한가 절대적인가 그렇지 않다. 관습은 특정 시대 특정 지역에서 작동하는 사고방식이다. 관습에만 사로잡힌다면 놓치는 게  많다.  의문을 가지고 다른 방식의 사고나  태도가 있을 수 있음을 의심해야 한다

집은 누가 짓는가?  100년 전만 해도 자기 살 집을 자기가 직접 짓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인들은 자기 집을 직접 만드는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생각 없이 살다 보면 거대한 사회 메커니즘 속에서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부속품이 된다. 물론 이것이 마음에 들고 만족한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내가 직접 부딪혀 가면서 얻어낸 지식, 시행착오의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지식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책으로 얻은 지식은 소중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선택을 결정짓는 기준은 몸으로 체험한 경험일 가능성이 높다.  백면서생은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모두 검색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의 경험이고 시간이 경과된 과거의 지식이다. 나도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지만 정보의 변화 속도가 빨라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지식인 경우가 많다. 유효기간이 없는 지식, 다른 말로 몸으로 체득한 지혜가 필요하다. 현대와 비교하면서  2000년 전 사람들을 보고 무식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쌓아놓은 문명을 보고 지혜롭다고 말한다. 살면서 경험한 모든 것들을 쏟아부은 그들의 유산을 보며 지혜를 배운다.

이른바 ‘맨땅에 헤딩’은 그런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필요한 것은 용감함이다. 그리고 단순함이다. 안 되는 수십 가지의 이유를 찾기보다  한 번, 두 번 직접 달려드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얻어낸 경험을 내 안에 축적한다. 그래서 마침내 성공에 도달한다.  승리의 성취감과 성공의 노하우, 다른 말로 실패의 경험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지혜를 축적하는 핵심비결이다.


사전 지식없이 사물을 대하는 것. 여행을. 즐기는 또 하나의 묘미이다


발트해를 가로질러 헬싱키로 가는 크루즈.

바림이 엄청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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