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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詩를 잘 쓰는 법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들>을 읽고

by 램즈이어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을 시(詩)로 표현하기는 퍽 어려워 보인다. 생소하고 신비하고 강렬한 마음을 제대로 글로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사랑하는 이는 이미 이 지상의 존재가 아니건만 막상 펜 끝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땅의 소산인 듯 평범하고 궁색하다. 이렇게 답답할 때 셰익스피어 소네트가 좋은 도움이 될 것 같다.

1609년 출간된 시집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들』에는 154수의 소네트가 담겨있다. 1번에서 126번까지는 대부분 화자가 “그대” 또는 “자네”라고 부르는 한 미남 청년을 노래한다. 1번부터 17번까지는 화자가 그 젊은이에게 장가들어 자식두기를 강력히 권하는 내용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남녀 간에 어울리는 온갖 표현을 동원하지만 그 본질은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우정이다. 127번에서 152번까지는 소위 “검은 여인 소네트”로 검은 낯빛의 여인이 등장한다.*

1. 시간을 연적(戀敵)으로 삼아 삼각관계를 만든다.


지고지순(至高至順) 한 사랑은 그야말로 높고 귀한 사랑이라 연적이 있을 수 없다. 초월적인 그 무엇, 시간만이 유일하게 그 사랑을 훼방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이 땅의 옆 집 사는 방해꾼쯤으로 보고 수시로 불러내서 말을 건다. 녀석의 파워를 의식하여 애걸하고 질투도 하다가 돌연 태도를 바꾸어 약 올리고 무시하고 혼을 낸다. 급기야 험담하며(늙은이라고 하면서) 싸우기까지 한다. 결국 시간 네까짓 것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랑은 젊고 영원하다면서, 일방적인 승리를 선포해 버린다.

15편

청춘이 극에 달한 자네가 내 눈에 띄는데,

그 시야엔 파괴적인 시간이 쇠락과 다투면서

자네의 젊은 낮을 더러운 밤으로 바꾸려 해.

또한 자넬 사랑하여 시간과 총력전 펼치며

그가 자네 앗아갈 때 난 자넬 새로이 접붙이네.

19편

삼키는 시간이여, 넌 사자의 발이나 썩히고

대지에게 자신의 예쁜 새끼 삼키라 해.

무서운 호랑이 턱에서 날카로운 이빨 뽑고

오래 산 불사조를 그 피로 태워라.---

사라지는 온갖 고운 것들에게 내키는 건 뭐든 해라,

발 빠른 시간이여,

하지만 극악 범죄 하나는 못 짓게 할 텐데,

오, 내 사랑의 고운 이마 시간으로 조각 말고

그 낡은 붓으로 거기에 아무 줄도 긋지 마라. ---

하지만 최악을 범해라, 늙은이 시간아, 그래도

내 사랑은 내 시(詩)에서 언제나 젊을 거야.

2. 여름날을 언급하고 꽃들을 나무란다.

여름날’은 릴케로부터 시작해서 거의 실패하지 않는 시(詩) 세계의 비밀 병기 같다. 이미 알려진 히든카드일 것이다. 요즈음의 여름날은 좀 곤란하지만, 여름이 무척 후덥지근해지기 전(前), 그저 순수하게 작렬하던 때의 녀석은 눈부신 사랑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했다.

꽃을 등장시키는 것은 식상해서 피해야 하지만 신선한 방법으로는 괜찮을 것이다. 여기서는 혼내키는 것으로 직유도 은유도 아닌 한 차원 높은 비유를 했다.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인 꽃들에게 감히 자신의 사랑에게서 색깔과 향기를 훔친 죄를 묻는다.

18편

내 그대를 여름날에 비하리?

그대는 더 사랑스럽고 온화하여라.

거친 바람이 오월의 사랑스러운 꽃망울을 흔들고,

여름의 기한은 너무나 짧으니. ---

그러나 그대 영원한 시 속에서 시간으로 화할 때,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시들지 않고,

그대 지닌 고움도 잃지 않으며, --- **

99편

일찍 핀 제비꽃을 난 이렇게 꾸중했지.

“예쁜 도둑, 내 연인의 숨결 말고 넌 어디서

그 단내를 훔쳐 왔니? 부드러운 네 뺨을

피부처럼 물들이는 그 자랑스러운 자줏빛은

명백히 내 연인의 핏줄에서 가져왔어.”

난 백합은 그대의 흰 손을, 박하 꽃망울은

그대의 곱슬머릴 훔쳤다고 책망했네.---

나는 더 많은 꽃을 살폈지만, 그대의 향기나

색깔을 훔치지 않은 건 하나도 못 봤다네.

3. 시(詩)와 시인의 힘으로 사랑을 지키겠다고 약속한다.

시와 시인의 진실성, 불멸성, 예언자적 능력에 대한 믿음은 영문학과 서구문학에서 소리 없이 흐르고 있는 하나의 관행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랑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 중요한 이야기는 아꼈다가 맨 마지막에 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연 만물의 예화로 엮어가다가 시와 시인의 영원성이 담긴 사랑의 맹세로 끝을 맺는다.


116편

---

장밋빛 입술과 뺨, 시간의 굽은 낫 안으로

든다 해도, 사랑은 그의 놀림감 아니네.

사랑은 짧은 몇 시간과 몇 주에 변치 않고

최후 심판 끝까지도 견디어 나가니까.

이것이 오류이고 나에 맞서 입증되면

난 쓰지 않았고, 인간은 사랑을 안 했다네.

63편

내 사랑이 시간의 상처 주는 손에 의해--

뭉개지고 심하게 닳았을 때,---

보물 같은 그 봄날이 도둑을 맞는 때,

그럴 때에 대비해 난 지금 파괴적인 노년의

잔인한 칼에 맞서 그것이 내 사랑의

생명은 자를망정 내 고운 사랑의 미모는

기억에서 절대 못 지우게 방비하네.

그의 미모 이 검은 시행(詩行) 안에 보일 테고,

그는 이 시(詩) 안에 살면서 언제나 푸르리라.


18편 후반

죽음도 자기 그늘 속에 그대 방황한다 뽐내지 못하리.

인간이 숨을 쉬고 눈이 보이는 한,

이 시들은 살아서,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라. **

---

* 윌리엄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셰익스피어 전집 10 소네트』 민음사 2016년, 역자 서문 17페이지

** 스프링버드 작가님 매거진 <셰익스피어를 읽습니다>에서 2024년 8월 29일 발행 소네트 18편

https://brunch.co.kr/@mypoplar/256

대문의 그림 사진

<Flamma Vestalis, before 1888> Edward Burne-Jones, oil on canvas, Harvard Art Muse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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