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는 방식

다음 시험지를 준비하는 하늘 아래

by 세하

남편은 늘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굴렸다.

그건 단지 배려나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더 치열한 태도였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 와인 셀러를 들여놓고, 수제 맥주 기계까지 설치했다.

그 안엔 마시지 않아도 취할 수 있는 그의 마음이 들어 있었다.


그는 늘 나를 위해, 연구하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취향에 자신을 맞추는 일은 보통 피곤한 일이지만,

그는 그 과정을 즐겼다.

아니, 사랑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감동할 단 한순간을 위해

그는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하고, 노력했다.


그의 모든 준비는 늘 몰래 진행됐지만

나의 눈치는 그의 정성보다 조금 더 빨랐고,

감동의 리액션은 그의 예상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은 그런 내 반응이 못마땅했지만,

그의 ‘짜잔병’은 고쳐지지 않는 불치병 같았다.


“다음엔 널 꼭 울리고 말 거야.”


24시간을 함께 붙어 지내는 부부에게

짜잔병은 꽤 곤란한 병이었다.


──


그는 늘 양보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테이블 위에 있어도

내가 젓가락을 먼저 댔다면, 그건 곧 내 몫이 되었다.

내가 한 입 더 먹으면 그는 조용히 젓가락을 놓았다.


“맛있게 먹는 네 얼굴이 더 좋아.”


그 말은 과장이 아니라, 그의 진심이었다.


──


어느 겨울날이었다.

TV에서 맛집 프로그램을 보는데, 대방어 횟집이 나왔다.


“아, 지금 방어철이구나~”


내가 중얼거리자 남편이 한술 더 떴다.


“겨울 대방어는 기름져서 진짜 맛있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주 가던 횟집으로 향했다.

대방어 한 접시를 시키고, 젓가락을 들었다.

한창 수다를 떨면서 먹고 있었지만

접시 위의 방어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왜 이렇게 못 먹어? 당신 방어 좋아하잖아.”


“나 방어 안 좋아해. 당신이 좋아하잖아.”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도 안 좋아하는데. 나는 네가 좋아하는 줄 알고 시킨 건데.”


“나도…”


우리는 방어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위해 시켰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비싼 방어값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날도 있었다.


──


그는 무거운 짐을 들 때만큼은 단호했다.


나는 늘 ‘평등’을 외치는 쪽이라 먼저 들려고 나섰지만,

그는 매번 짐을 낚아채며 말했다.


작은 검은 봉투 하나조차도 그의 몫이었다.


“남편 두고 왜 고생해?”


그건 그의 입버릇이었다.


──


작은 일에도 ‘여보’ 하고 부르면

그는 어디선가 슈퍼맨처럼 나타났다.


그런 그도, 가끔은 지쳤다.


“내가 니 종이야?”


툭, 튀어나온 말 앞에서 나는 얼어붙었다.


알아서 다 잘해주는 그의 태도에

나는 어느새 익숙해졌고,

그런 나의 무심함은

남편의 ‘알아줌’을 바라는 마음과 부딪혀

서운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일로 크게 다툰 날도 있었지만

내가 진심으로 미안함을 전하면

그는 금세 눈빛이 흔들렸고,

몸이 먼저 사과했다.


그게 그였다.

실수보다, 그걸 되돌릴 줄 아는 사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언제나 제일 먼저

그 상처를 들여다보는 사람.


나보다 더 어른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단점은 있었다.


날이 서 있는 삶.

그 날들 속에서 자라며

그는 단단해졌지만, 동시에 날카로워졌다.


성격은 불같고, 예민했으며, 자주 상처받았다.


하지만 그 몇 가지 단점은

그보다 더 많은 장점들 앞에서

조용히 가라앉았다.


──


나는 그의 뾰족한 부분을 이해하려 애썼고,

그의 모서리를 조심히 감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천성을 믿고 기다리는 일이었다.


그가 더 온전한 자신이 되길,

세상을 덜 경계하길,

조금 더 느슨해지길 바랐다.


그건 나만의 사랑 방식이었다.


──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나는 뭐든 해주고 싶었다.


그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세계를

나를 통해 다시 경험하길 바랐다.


그건 그에게 주는 보상이 아니었다.


다만,

그가 ‘나를 만나기 전에도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걸

그 스스로 믿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종종 말했다.

“당신만 생각하면서도 좀 살아.”


그 말에 그는 잠시 웃었다.

이기적인 선택조차

나와 ‘공평하게 나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실천했다.


──


100만 원짜리 물건을 자신을 위해 살 때면

꼭 나에게도 비슷한 값의 무언가를 사주었고,

함께할 수 없는 일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그건 그의 공평함이었고,

그가 말하는 ‘함께’의 방식이었다.


항상 두 개.

항상 같이.


그는 ‘함께’라는 단어를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내는 사람이었다.


──


우리는 그렇게 쉼 없이 달렸다.

지치기도 했고, 싸우기도 했고,

때로는 벽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서로를 놓은 적은 없었다.


우리는 부자가 아니었지만,

서로를 주고받는 데 인색하지 않았기에—

마음만큼은 언제나, 풍요로웠다.


──


두 번째 매장에서 우리는 정말로 일어섰다.

장사가 잘 됐고, 직원도 늘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과 사랑이 동시에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약속.


“우리, 1년에 두 번씩은 꼭 여행 가자.”


그 말은 어느새

우리 부부만의 계절이 되었고,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해주는 숨구멍이 되었다.


‘여행’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잠시 ‘현실’이라는 단어를 내려놓았다.


함께 비행기에 오르고,

낯선 공기를 마시며,

손을 꼭 잡고 걸을 때마다 느꼈다.


이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건—


단지 사랑을 나누는 일이 아니라,

삶을 함께 건너는 일이라는 걸.


──


이따금, 피로가 쌓이고

감정이 헝클어질 때면

우리는 다음 여행을 떠올리며

다시 웃었다.


그 여행은

우리가 견디는 방식이었고,

다짐을 확인하는 의식이었다.


──


그는 사랑을

말로만이 아니라,

기억에 새기고

손으로 전하며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그런 방식에

끝없이 사랑받는 여자였다.


──


사랑이 우리를 구했다면,

그 사랑을 지킨 건 결국

우리 두 사람이었다.


삶은 조금씩 편안해졌고,

햇살 드는 집에서

마음껏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평화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다.


하늘은 언제나 조용히,

다음 시험지를 준비하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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