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믿음 위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무너진 채로 걸었다

by 세하

그날, 낡은 재킷을 입은 사내가 들어왔다.

웃음기 없는 얼굴, 마른 손, 싸늘한 눈빛.

그는 서류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여기, 당신들 매장 입구. 우리 땅입니다.”


서류에는 자필 서명조차 없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자릿세를 내던지, 건물을 팔던지.”

이건 협상이 아니라 선전포고였다.


우리 건물주는 괜찮다 했다.

“합의된 구조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하지만 그 ‘신경 쓰지 마세요’라는 말이

우리에겐, 밤잠을 앗아가는 주문이 되었다.



스쿠루지 영감.

우린 그를 그렇게 불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선,

“아직도 장사하시네?” 같은 눈빛으로 매장을 훑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더니,

이제껏 버텨온 성채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린 결단했다.

이곳을 떠나자.

망설임은 없었다.

위기 앞에서 우리 부부는 언제나 환상의 콤비였으니까.

우린 발로 뛰었다. 퇴근 후, 짬날 때마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아버지가 자리 하나 추천하셨어.”



군 복무 시절부터 간간이 연락을 이어오던 시아버지.

그 후로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더니

중국에서 일하고 있던 시아버지는 비자문제로 3개월에 한 번씩 한국에 다녀갔다.

그리고 우리가 분가 한 이후로부터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씩 우리 집에 머물게 되었다.


망설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남편에게 아버지는,

밉지만 그래도 아버지였다.

이혼 전, 세상에서 가장 완벽했던 슈퍼맨.

그 기억 하나로 그는 여전히 아버지를 받아들였다.


시아버지가 추천한 자리는

서울에서 지하철로 여섯 정거장 거리.

경기도.

그 짧은 이동은

마음의 거리로 치면 꽤나 멀었다.

‘밀려난다’는 감각.

하지만 건물은 신축이었고,

3층 코너에 넓은 70평.

남편은 말했다.


“이 정도면… 우리가 꿈꾸던 거,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우린 대출을 받았고, 빚을 더했고,

그리고 새로운 매장을 열었다.


신도시.

좋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자리를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장은 컸지만, 손님은 적었다.

직원은 많았지만, 급여가 빠듯했다.

우리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고,

그 속도로 불안도 커져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6개월 후였다.

가장 믿고 싶지 않았던 일이 터졌다.



남편과,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던 직원 사이에

불편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교통이 불편하다던 아이.

방 한 칸을 내주며

식구처럼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거실에서 웃고,

같은 시간을 나눴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남편을 아빠처럼 대했고

나를 엄마처럼 따랐다.


그날, 나는 심장이 아닌

위장이 먼저 무너지는 걸 느꼈다.

구토처럼 올라오는 감정.

숨 쉬는 일조차 고문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귀를 막았다.

“소문일 뿐이야.”

“지나가겠지.”

하지만 눈덩이는 굴러 떨어지는 돌처럼

순식간에 나를 덮쳤다.


잠들기 전,

그 아이의 발소리가 현관에서 멈출 때마다

나는 이불속에서 귀를 막았다.

화장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 토악질을 했다.


어느 날 밤,

거울 속 내 얼굴이 너무 낯설어서

손으로 뺨을 쳐봤다.

살아 있는지,

정신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려고.


그제야,

이빨을 꽉 깨물고,

주먹까지 꽉 쥔 채,

남편을 마주 봤다.


눈물을 한껏 머금은 내 얼굴,

말하려고 마음먹으니 오히려 숨이 가빠졌다.

남편은 발발 떨고 있는 나를 진정시키려 애썼고,

나는 그동안 들은 이야기들을, 한 줄도 남김없이 쏟아냈다.


“사실을 말해. 전부 다.”


남편은 당황했고, 어쩔 줄 몰라했으며

사실보다 나를 진정시키기에 급급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아이가 날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어.

근데, 그냥...

학교 다닐 때 선생님 좋아하듯이.

그 정도라고 생각했어.

나는 그냥 딸처럼 대했을 뿐이고..

진심으로 그런 말들이 돌 줄은 몰랐어.

그런 더러운 이야기를 듣게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 말을 듣는 순간, 허공을 붙잡고 있던 밧줄이 툭, 끊어졌다.

몸이 아니라 믿음이 먼저 추락했다.

그간의 시간이 모두 허상이었던 것처럼 눈앞에서 흔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옆방에 있던 아이를 불러 삼자대면을 했다.

남편은 일방적으로 화를 냈고,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거듭 사과했다.

나는 말없이, 그 두 사람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들 사이 오가는 눈빛을 바라보며 직감했다.

어쩌면 평생, 진짜 진실은 모를 수도 있겠다는 걸.



나는 모든 걸 정리해야 했다.

머리보다, 가슴보다

먼저 살아야 했기에.


누굴 남길 것인지,

누굴 놓아야 할 것인지—

숨을 쉬기 위해,

다시 ‘선택’ 해야 했다.


나는 결국,

진실보다 나를 택했다.

팩트보다 감정,

정답보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골랐다.


무너지는 나를

끝까지 붙잡아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남편은 여전히 잠든 내 이마에 입을 맞췄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 다정함이—

거짓이든, 진심이든

그 순간만큼은

내가 다시 살아나게 만든

유일한 온기였다.



의심이란 건 타인을 향하는 감정 같지만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는 독이었다.

잠들지 않는 마음이었고,

끝없이 되묻는 자해의 칼날 같았다.

지워지지 않는 질문들 속에서 나는 매번 스스로를 찔렀다.


그래서, 나는 믿기로 했다.

다시 상처받을지라도,

그렇게라도 살아내기로 했다.


──


그리고, 우리는 약속했던 결혼식을 준비했다.


두 번의 상견례,

불균형한 하객 수,

생략된 단체 촬영,

그리고 배려로 꾸며낸 식사형 소규모 결혼식.


기억은 희미하다.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고,

나는 그저 그날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직원은 8명에서 4명이 되었고,

우리는 신혼여행 대신 직원들과 야유회를 갔다.

매장 문을 처음으로 닫고,

2박 3일의 여행을 떠났다.


──


높게 우거진 대나무 숲을 지나,

다케오의 천 년 녹나무 앞에 섰다.

수천 겹의 시간이 감겨 있는 그 거대한 나무 앞에서

나는 아주 조용히, 되뇌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즈음부터 시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매장으로 반찬을 해다 주셨고,

남편은 조용히 두 여자의 사이를 바라보며

늘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새로운 직원 한 명이 들어왔다.


그 아이는 매장에 밝은 기운을 불어넣었고,

우리는 다시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


삶은 언제나 완성된 형태가 아니었다.

늘 어딘가 조립 중인 상태였고,

그 조각들 사이에서 우리는 흔들렸고,

때론 금이 갔고,

때론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시 손을 맞잡았다.

여전히, 함께였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은 다시 믿을 수 없을 것 같아도

결국, 믿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믿지 못할 인간들 틈에서조차

우리는 다시 누군가를 믿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일어섰다. 무너지면서도, 서로를 붙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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