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라, 죽어라— 하지만

대청소 중입니다, 인생도 마음도

by 세하

내 집마련..꼭 필요한걸까?.


나는 새것을 좋아한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익숙한것보다 새로운것에 흥미를 느낀다.

그래서 음식점에 갔을때 남편과 나의 성향은 확연하게 차이가난다.

나는 한번도 안먹어본 음식, 남편은 늘 먹던거.

나는 새로운 맛집, 남편은 또 간집을 선호한다.


혼자 살땐 집이 지겨워지면 이사를 했고,

일하던 매장이 지겨워지면, 매장을 옮겼다.


그렇게 한가지를 오래 좋아하기 힘는 내게

내 집이 마련은 꿈이 될수 없었다.


그런데 남편의 취미가 집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남편은 내 집 마련이란 목표를 향해 단 하루도 멈춘 적이 없었다.


덕분에 결혼 후, 그는 단 한 번도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

“나는 너랑 노는 게 제일 행복해.”

그 말은 과장도, 과한 표현도 아니었다.


집을 가꾸는 걸 좋아하고,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 월세집은 늘 불만족의 연속이었다.

“내 집이라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바꿀 수 있는데…”

손재주 좋은 남편은 그런 말을 습관처럼 되뇌었다.


“우리 빨리 집 사자. 그래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거야.”



우리는 진짜, 누구보다 열심히 달렸다.

나는 대상포진으로 쓰러지면서도, 울며 가위를 들었고 남편은 응급실에 다녀온 새벽에도 어김없이 출근했다.

절실했고, 간절했다.



어느 날, 고객의 말 한마디로

매장 근처에 신축 빌라가 올라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퇴근하자마자 우리는 빛보다 빠르게 그 집 앞으로 달려갔고,

창 너머로 집을 들여다보며 동시에 말했다.


“이 집… 느낌 온다.”


그다음 날, 우리는 다시 그 집을 보러 갔고

가계약금을 걸었다.

계약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 집에서 살고 있었다.


가전제품 마니아인 남편은

비싼 신발이나 옷 대신 청소기, 세탁기, 냉장고에 설렘을 느꼈다.

내 손은 손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었고,

남편의 손은 핸드폰으로 전자제품 가격을 비교하고 있었다.


물론, 그 집의 절반 이상은 은행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빈손으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왜 아파트 안 사고 빌라 샀어?”

다들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모르는 이야기였다.

낯선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는 일이

아직도 무서운 나를 위한, 남편의 조용한 배려였다는 걸.



새집에 들어간 우리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DIY 인테리어로

삶의 만족도를 채워갔다.


첫 망치질에 설렜고,

새 가전제품들이 어엿하게 자리를 잡을 때면 뿌듯함에 서로 등을 두드렸다.

그리고 광적인 얼리어답터 남편.


“그냥 써도 될 것 같은데…”


“이렇게 하면 더 편하잖아~ 누워서 커튼도 닫고, 불도 끄고. 밖에서 불키고 나왔나 걱정 안 해도 돼.”


어느새 우리 집은 목소리 하나로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는 집이 되었고,

덕분에 우리 집은 전기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집이 좀 지겹다고 느낄때면,

집안의 가구들을 통째로 바꾸거나

방안의 인테리어를 다시했다.


미닫이 문을 슬라이드로,

드레스룸을 파우더룸으로 바꿔가며

새로운 집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보금자리가 주는 안정감은

우리의 삶도, 마음도 고요히 정리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11년의 시간을 채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둘이었다.

“둘이서 노는 게 제일 좋아.”

이건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은 아이에 대한 선택을 오롯이 나의 결정으로 맡겼다.

그리고 가끔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또 누군가를 책임지며 살아가야 하는 게 버겁기도 해..”


나는 사실, 남편을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한번 했었다.


너무 빨리 꿔버린 태몽.

임신테스트기의 선명한 두줄.

예상밖의 임신이라 당황스러웠다.

상황도 마음도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축하 한마디 들을 틈도 없었다.

누구에게 알릴 새도, 고민할 여유도 없이

그 아이는 축복 속에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만이 명확했다.


시어머니는 내 손목을 잡고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한 마디를 던졌다.


“그 아이는 네 아이기도 하지만, 내 손주 이기도 해. 엄마의 몸이 준비된 상태가 아니면 아이에게 안 좋을 수밖에 없지. 나 역시도 둘째 임신사실을 모르고 치과 치료를 받았다는 걸 알았을 때 둘째를 포기했었어.”


지금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속엔, 나를 향한 배려가 없었다.


그 말은 ‘걱정’이라기보다, ‘판단’처럼 들렸고

내 몸과 내 삶을, 마치 자기 결정권 안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 그 모습에—

나는 순간, 말보다 숨이 막혔다.


그리고, 그건 조언이 아니라, 선고였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해 검사를 받았을 때 한번 더 깨달았다.

‘우린 확실히 만날 운명이 아니었구나..’


자궁 외 임신.

주사 한 번으로 모든 것은 사라졌다.


그 이후로, 나는 아이에 대한 생각을 스스로 접었다.

만약 간절히 바라던 아이마저 자궁 외 임신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깊은 절망 속에 빠졌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내 인생을 즐기기에도 바빴다.


우리는 책임과 불안에 휘청이는 미래보다

확실하고 따뜻한 현재를 선택했다.

‘딩크족’이라는 단어보다

‘우리 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우리는

그렇게, 약속했고, 만족했다.



3년 전쯤부터, 남편은

우리 부모님께도 매달 150만 원씩 용돈을 드리기 시작했다.


“늦어서 미안해.

오래전부터 드리고 싶었는데,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드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 거야.

나 믿지?”


“믿지.”


그리고,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어떤 일로든 당신이 나를 먼저 떠나가게 된다 해도,

나는 평생 이 약속을 지켜갈 거야.”


나는 그 고마운 말에도

끝내 “나도, 그럴게.”라고는 답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향해

서운함이라곤 단 1%도 비추지 않는 그의 얼굴을 보며,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졌다.



그러다 어느 날,

그는 이런 말을 꺼냈다.


“장모님, 장인어른 같은 부모가 있는 당신이 참 부러워.

나는 이제, 우리 엄마보다 장모님이 더 편한 것 같아.

날, 당신만큼은 아니더라도

많이 좋아해 주시면 좋겠어.”


그 말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매달 엄마의 영양제를 직접 챙겼고,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단어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엄마 집에 에어컨을 설치해 주는 것도,

TV를 바꿔주는 것도—

그는 나에게 먼저 묻지 않았다.


모든 행동엔 계산도, 허락도 없었다.

오직 마음만 있었다.


그의 진심은,

나를 더 좋은 아내로 만들었다.


그리고 혹여,

언젠가 그 약속이 무너진다 해도 나는 안다.


그것은 그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삶이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웠던 탓이라는 걸.



그 사이, 우리는 또 다른 매장을 열기 위해

쉼 없이 달리고 있었다.

여전히 여행을 다니고,

여전히 서로를 위해 살며.


남편은 이제 술도 조금 마신다.

“너랑 함께 못하는 게 제일 힘들어.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거 다 같이 해주는데,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술을 같이 못 즐겨주는게 너무 미안해." 하면서

맥주 한잔으로 고사를 지내기 시작하더니,

이젠 소주 반 병 정도는 너끈히 비운다.


비슷한 일상을 살지만, 생각은 조금씩 다른 우리.

우리는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부부다.

드라마 하나를 보고도,

맛집 하나를 가도,

반나절씩 감상과 감탄을 공유하는 사람들.


매해 새로운 취미가 생겼고,

남편은 더 이상 어머니의 방식대로 살아내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을 미루고,

말 한마디조차 조심하던 지난 시간을 지나—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누구의 기대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는 나를, 철부지 공주처럼 아끼며 보듬었고

나는 그가 작은 것에도 행복할 수 있도록

마음이 둥근, 아이언맨으로 키워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 서로를 길러냈다.

사랑으로, 시간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법을 함께 배워가며.



나이가 들수록 여성호르몬의 공격은 거세지고,

그때마다 지나간 기억 조각들이 토네이도처럼 휘몰아친다.


마음 깊은 어딘가에서 낮고 어두운 목소리가 일렁이며

죽어라, 죽어라— 하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무너질 수 없다.


소리 없는 눈물을 심장 밑으로 눌러내고,

한숨 열 번을 토해낸 뒤

다시, 새 숨을 들이쉰다.



오늘도 우리 집은 누수 공사 중이다.


집을 지을 때 사용한 배관 부품 하나가

전체 불량이었다고 한다.


하자 보수 기간이 끝나자

다섯 동의 빌라 전체에서 문제가 터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 윗집 배수관은 유독 심각하다.


아침에 거실에 나가 보면

바닥은 마치 계곡 같고,

천장에선 폭포가 떨어진다.


특히 옷방에서 물이 떨어지는 날엔

아침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덕분에 우리는 일곱 번째 천장을 뜯고,

세 번째 바닥을 갈아엎는 중이다.


더 이상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있는 듯하지만,

우리는 1년에 두세 번씩

이사의 모양을 하고 살아간다.


내 집이 아니었다면

두번째 천장이 터졌을때,

당장이라도 뛰쳐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킬수 없는 우리 집.

심지어 잘 팔리지도 않는다는 빌라.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웃으며 말한다.


“이번 참에 대청소한다 생각하자.”



이게, 삶인 것 같다.

예측할 수 없고,

흘려보낼 수 없는 하루하루.


좋은 의미를 부여하면

모든 게 우리 편이 되고,

나쁘게만 보면

이보다 불행한 인생은 없다.


살아내기로 결심하면

정말 살아진다.

사랑을 하고,

일을 하고,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살아간다.


앞으로 10년 뒤,

나는 또 뭘 하고 있을까?


정답은 아직 없다.

그냥,

나는 오늘을 살고 있다.

처음처럼.

우리가 둘이라는 사실만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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