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매체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콩돌이 아빠가 글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아내의 옆구리를 찔러서 얻은 1명의 구독자가 전부이지만 그래도 책과 친하지 않았던 청소년기를 생각해 보면 큰 발전이라고 느낍니다.
전역을 하고 다짜고짜 미국 유학을 가겠다는 뜬구름 같은 목표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온갖 기행을 벌이며 놀던 1학년때의 성적은 2점대 낙제로 그득했고, 영어시험을 준비하려 펴본 교과서에는 문자 그대로 아는 단어가 'is'외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너무 바보 같다고 느낀 저는 손에 잡히는 대로 거실 선반에 꽂혀있던 책들을 꺼내 읽었습니다. 그리고 고속터미널 영풍문고에서 고른 두꺼운 책을 그저 끝까지 읽어보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생각보다 책은 재미있었고 후반으로 갈수록 저자가 글자로 빚어놓은 세계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저와 칼 세이건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사용하는 이름은 대부분 성경의 인물에서 유래합니다. 콩돌이가 태어난 2019년, 저는 아이의 이름을 오래간 고민하던 중에 TV에서 반갑게 칼 세이건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The Pale Blue Dot: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칼 세이건의 명문이 90년대의 아련한 아날로그 감성으로 음악과 함께 낭독되자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 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 자체입니다."
<창백한 푸른 점> - 칼 세이건
출처: 위키피디아
깊은 밤, 고향으로부터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울려퍼지는 우주를 주제로 한 음악과 지적이고 가슴 따뜻한 과학자의 목소리는 아이의 이름을 결정하게끔 도왔습니다.
저는 '수포자', 다시 말해 수학을 포기한 학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미적분에 진입하자 공부에 대한 의욕이 말끔하게 사라졌습니다. 털끝만큼도 이해할 수 없는 개념과 '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변명으로 삼고 다시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수학교육에 대한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능한 이성을 총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고 단 하나밖에 없는 정답을 도출해내며 자기 확신을 단련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학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느낍니다. 이 말은 곧 저는 무분별하게 느낌을 맹신하며 산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논리와 수학을 돌파해 낸 사람들이 풍기는 아우라에 질투와 동경이 생깁니다.
저는 콩돌이가 과학자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저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따금 효율과 편의를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사람들이 보이는 무자비한 모습을 떠올리면 인간 이성이 드리우는 그림자는 심히 공포스럽습니다.
'가슴 따뜻한 과학자'
이런저런 풍문을 차치하면 칼 세이건에 대한 이야기는 정겹습니다. 그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받은 소년은 수십 년 뒤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는 다큐멘터리를 새롭게 소개하였고, 자신의 롤모델로 가슴에 품어온 과학자에 대해서 그가 지녔던 서슬 퍼런 이성의 칼날보다 비 내리는 겨울의 화롯불과 같던 훈훈한 인류애를 거푸 이야기합니다.
"세건이 어때?
"오, 좋다!"
콩돌이가 곧 태어날 당시 몇 주간의 고민 끝에 Sagan이라는 영어 이름을 한국어 소리로 따와서 '세건'으로 지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아내도 흔쾌히, 대부분 모든 일에 그래주지만, 제 의견을 이해해 주었고 우리는 첫 아이의 이름에 만족했습니다. 누군가가 평생을 들어야 할 말과 소리를 정해준다는 것은 큰 고민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만큼 의미 있고 뿌듯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아주 운 좋게 대한민국 최고의 작명가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어긋나 있는 시차에도 적절히 해가 겹쳐있는 L.A. 오후 6 시즈음 아버지로부터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아버지는 작명가에게 목돈을 지불하고 아이의 생년월일시를 따져 가장 편안하고 성공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글자를 골라오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말귀가 트일 무렵부터 아버지와 특히 어머니로부터 끊임없이 들어오던 '복(福)', '팔자', '귀신' 같은 말들이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안돼, 안돼! 그러면 복 떨어져."
"징징거리지 마, 하던 일도 안돼."
"밤에 피리 불지 마, 귀신 들어와!"
"손발톱은 변기에 버려, 쥐가 먹고 사람 된다."
엄마가 늘 하던 온갖 토속신앙적인 말들, 집 앞 현관문 위에 떡하니 붙어있던 부적과 재운을 틔워준다는 코끼리 조각, 삼족두꺼비, 그리고 행운목 등등. 성인이 되기 전부터 반복적으로 학습된 무속적인 상징과 의미들에 저 스스로도 은은히 잠식되어 있었습니다. 문득 아이의 이름을 한자로 신고했을 때, 그 획수와 조합이 오묘한 운대를 아이에게 전해줄 것 같아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칼 세이건과 대한민국의 작명 일인자 선생님은 치열한 공방을 치렀고, 결국 아이는 과학자의 이름을 딴 영어 이름과 명리학의 가피와 보호를 받은 한자이름으로 각각 미국과 한국에 등록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