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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빠가 되는 드로잉> 시리즈

by 콩돌이 아빠
<정장과 내복> 35 x 44 cm, 종이에 연필과 수채 2021

챗바퀴처럼 돌아가던 고등학교 시절, 콩돌이 아빠의 귀에는 형에게 빌린 CD Player에 연결된 두툼한 이어폰이 꽂혀있었습니다. 누가 더 많은 마이너 인디밴드를 아는지 침을 튀며 이야기하는 또래들 사이에서 '나도 영미권 음악을 듣는다'는 자부심을 갖기 위해 Queen의 <the Night at the Opera>를 듣고 또 듣기를 반복했습니다.


<the Night at the Opera> 당시의 프레디 머큐리는 특유의 콧수염을 기르고 있지 않았습니다. 돌출된 입과 깡마를 체형을 뽐내며 카랑카랑하게 쏟아내는 목소리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노래임에도 제 마음에 잔뜩 스며들어갔습니다. 그렇게 Queen의 음악과 프레디 머큐리에 잔뜩 취해서 온갖 자료를 뒤지다가 하얀색 민소매옷에 청바지를 잔뜩 올려 입은 그가 웸블리 스타디움의 무대에 선 모습을 보았습니다. 전설의 Live Aid 공연에서 피아노에 앉아 손을 교차하며 본인의 삶이 되어버린 노래가사를 울부짖듯이 부르는 그의 모습에 콩돌이 아빠는 눈시울이 붉혔습니다.


'나도 저런 멋진 콧수염을 갖고 싶다.'


프레디의 콧수염이 어떤 표현이었는지 잘 알지 못했던 때에 그저 동경하는 사람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제 막 솜털이 굵어지려던 시기에 굳이 면도를 하지 않아도 티가 안 나던 고등학생이 아무리 수염을 방치해도 숱이 빽빽해지지 않았지요. 오히려 자세히 보면 얇은 몇 가닥의 털이 정처 없이 길어지며 의도와는 다르게 사극의 간신배와 같아 보여 낙담을 하고 다시 솜털을 제거하곤 했습니다.


아버지, 형을 보아도 수염을 길러서 멋을 낼 정도로 양이 풍성하지 않습니다. 집안 내력을 과시하듯이 저 역시도 열심히 기른 수염이 그저 듬성듬성 솟아오른 황무지의 몇 포기 잡초처럼 보일 뿐입니다. 한창 코로나가 극성이던 시기, 잡초처럼 뾰족뾰족 피어난 수염은 마스크 뒤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어려서 따라 해 보고팠던 프레디 머큐리의 수염과는 눈곱만큼도 닮지 않은 아주 짧은 수염을 내버려 둔 채 아이와 뒹굴며 방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콩돌이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제법 알아들을만 했고, 아이는 저의 입술 근처에 흐트러진 철가루처럼 붙어있는 짧은 수염에 손을 가져다 대봅니다.


"따가워."

"따갑지?"

"개미, 개미, 개미..."


콩돌이는 고사리의 잎사귀같이 안으로 감겨있는 손가락을 들어서 수염들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낯선 아이의 눈에는 무심히 지나칠법한 아주 작은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이 가나 봅니다. 아파트 단지의 보도블록 틈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개미 몇 마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콩돌이에게 아빠의 얼굴에 붙은 아주 작은 것들이 그때의 개미들처럼 보였나 봅니다. 저는 문득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의 얼굴을 타고 오르는 개미떼가 떠올랐고 공포에 질리기보다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개미?"

"응. 개미, 개미, 개미..."

"... 개미 공격!"

"꺄아아!!"


저는 제 턱부근에 상주하던 개미 군단을 아이의 보드라운 뺨으로 진격시키고 실컷 문질러댔습니다. 안개처럼 어렴풋한 어린 시절 기억에 아버지가 짓궂게 괴롭히던 것을 그맘때 제 모습의 아들에게 퍼붓고 묘하게 통쾌한 기분을 느낍니다.


"따가워, 압빠."

"너도 커서 네 아들한테 그렇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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