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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의 레시피

<아들이 아빠가 되는 드로잉> 시리즈

by 콩돌이 아빠
<장모님의 레시피 01> 15 x 21 cm, 종이에 펜과 색연필 2022

"인도는 더웠으니까 하루에 두 끼만 먹었다 치고, 80세에 돌아가셨으니까... 37,230 그릇."


밥그릇을 쌓아 올리는 작업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 입덧 때문에 음식 재료를 마주하는 것을 힘들어해서 1년 정도 점심과 저녁 (아침은 간단한 과일과 시리얼로 대체하고)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콩돌이 아빠는 밥 하는 것이 그리 무시무시한 일임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장보고 요리하고 차리고.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이 계속 밥을 준비하고 또 준비해야 했습니다. 아내가 출산을 한 것은 2019년인데 한창 연애를 하면서 함께 즐겨보던 '삼시 세끼'라는 예능프로그램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출연진들이 해안가나 산골에서 자급자족하며 세끼를 차려먹는 일상을 보며 즐거워했는데, 막상 우리 일로 닥치고 제가 요리를 하루에 두어 번 하다 보니 가스불을 켜는 소리와 함께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습니다.


부처님은 29세에 출가하시고 80세에 열반에 드셨습니다. 수행생활을 하시는 동안 부자와 가난한 집의 구별을 두지 않고 그들이 베풀 수 있는 만큼의 음식을 얻어서 끼니를 해결하셨는데, 그 기간과 끼니의 수를 계산해 보니 약 37,000여 번이 되었습니다. 저는 간간히 외식도 했기에 700번이 한참 안될 정도의 밥을 차리고 온갖 투정을 부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의 일생을 생각해 보면서 그들이 삶을 마칠 때까지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일과에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장모님의 레시피 02> 15 x 21 cm, 종이에 펜과 색연필 2022

"어서와, 밥 먹어."

"와-. 정말 진수성찬이네요!"


<사랑의 블랙홀>과 같은 미묘한 기시감을 매주 토요일에 느낍니다. 지난주에 한 말과 그에 이은 대답은 사소한 호흡이나 순서를 바꾸고 똑같이 이어집니다. 장모님은 토요일 점심 무렵 콩돌이를 부탁드릴 겸 들른 저희를 위해 온갖 별미를 차려주십니다.


"이거, 이제 너희 집으로 가져가렴."


곧 이사를 떠날 처갓댁 식구들은 짐정리에 한창이셨고, 책장 선반에 모셔져 있던 책들을 묶어내면서 오래간 잊혀져있던 아내의 노트 따위를 건네주셨습니다. 노끈으로 빠지지 않게 매듭을 짓고 두어 묶음씩 번쩍 들어 올렸는데, 그 무게가 손가락 사이사이로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저와 콩돌이 엄마는 십여 년에서 수십 년이 지난 종이무더기를 넘기며 추억을 들추고 있었습니다.


'* 순두부찌개: 1. 쇠고기 얇게 썰어 갖은양념을 한다...'


무심코 집어 든 초록색 가죽노트에는 이문세의 '옛사랑'의 노래가사와 함께 장모님께서 꼼꼼히 메모해 두신 요리 레시피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지나가듯 이야기했던 '우리 집은 거의 외식을 하지 않았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장모님의 레시피 03> 15 x 21 cm, 종이에 펜과 색연필 2022


미국에서 대학원을 마칠 무렵, 기회를 얻기 위해 엘에이 시내에 있던 큰 미술화랑을 들렀습니다. 로스앤젤레스는 뜬금없이 찾아드는 엄청난 지진을 겪은 뒤 건물의 높이를 낮추고 나무로 짓는 집들이 대부분인, 서울과는 꽤나 분위기가 다른 도시입니다. 화랑이 있던 건물도 그리 높지 않았고 이야기를 들으니 100여 년이 훌쩍 넘은 유서 깊은 빌딩이었습니다.


"Please get on, welcome!"


영화에서만 보던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창을 밀고 닫아 오르기 시작하는 엘리베이터 안에는 방문객이 찾을 층수를 대신하여 눌러주는 할아버지뻘의 엘리베이터맨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도시에서 지내는 여느 사람과는 다르게 해맑은 표정으로 모든 이에게 밝게 인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 엘리베이터 안에서만 40년이 넘게 근무했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삶을 다룬 기사 스크랩을 엘리베이터 벽면에 부쳐서 여유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소개하곤 했습니다. 당시의 저는 보다 좋은 기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고, 사소한 일들을 부여받으면 괜한 자격지심에 기분이 상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그 노인이 보여주던 삶의 만족은 '지나치게 자족적인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가 반복되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최선의 태도라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장모님, 우리 엄마, 그리고 이제 콩돌이 엄마까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 할아버지의 엘리베이터와 같은 한두 평의 공간 안에서 뜨거운 열과 온갖 식재료의 냄새에 후각이 무뎌지며 하루를 보냅니다. 본인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는 선택적 일이 아닌 가족을 위한 의무가 되어버린 밥짓기는 그들을 어디에 도망치지도 못하게 묶어버립니다. 하지만 잘 차려준 음식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속으로 드나드는 모습에 곧장 다음 끼니를 준비하는 힘을 얻습니다.


몇만 그릇의 밥그릇 수를 계산한 후, 깨달음을 얻고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는 부처님만큼 그 밥을 지어 공양하신 공양주 보살님, 할머니, 아주머니, 엄마, 애기엄마, 그리고 밥 지어 가족들을 먹이는 아빠들에게서도 색색의 반찬빛 후광이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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